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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 Nov 01. 2019

디저트가 있는 시간"혀끝에 감기는 얼음 맛

디저트가 있는 시간

혀끝에 감기는 얼음 맛 


송복련      



땡볕이다. 목이 타는 푸성귀들은 모조리 고개를 수그린 채 축 늘어졌다. 질식할 것만 같은 권태로움에 사지가 풀어지고 조금만 꿈지럭거려도 땀이 찔찔 배어나왔다. 대청마루에 큰대자로 누워 잠이라도 청하면 더위를 잊을까 싶어 누워보지만 바람 한 점 불지 않았다. 활활 부채질하고 있으면 팔만 아플 뿐 영 신통찮았다. 소금꽃이 핀다는 염천이니 온몸에 소금이 돋아날 것 같아 와작와작 얼음이라도 깨물어 먹고 싶던 오래전 여름날이다.


골목 어귀에서 메아리처럼 들려오는 ‘아이스~케키이~, 아이스케키 사~려어~’ 여운이 길다. 파란 사각 통에 얼음 氷자만 봐도 군침이 도는데 아이스케키 집을 하는 친구는 좋겠다. 달콤하고 시원한 아이스케키를 실컷 먹을 수 있으니. 우리들은 어깨에 아이스케키 통을 짊어진 소년에게 우르르 몰려갔다. 이빨이 안 들어갈 정도로 딱딱하다. 조금씩 핥으며 베어먹다 보면 팥물이 흘러내렸다. 흐물흐물 귀퉁이가 녹아 흐르다가 막대에서 한 덩이가 툭 떨어져나가면 그렇게 아까울 수가 없다. 요즈음도 아이들과 얼음과자를 고를 때 수많은 빙과류 속에 비비빅을 찾는다. 옛날 입안에 감돌던 차고 달콤한 그 맛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칠성사이다나 새우깡이 아직도 높은 판매고를 올리는 걸 보면 많은 사람들이 오래된 향수를 사는 셈이 아닌가. 







여름의 백미는 빙수라고 하겠다. 것도 팥빙수가 으뜸이다. 빙수기가 돌아가면서 하얀 눈을 펑펑 쏟아내면 그 위에 통팥을 얹어 내온다. 금방 이가 시려오고 소름이 돋을 정도로 시원해진다. 요즈음은 사람들의 입맛에 맞추어 얼린 우유를 갈아 팥이나 콩가루를 고명으로 얹어 변화를 주거나 저마다 개성적으로 빙수 개발에 열을 올린다. 빙수의 전성시대라고 할만하다. 빙수가 진화를 거듭해오는 동안 우리 것만을 고집하지 않았다. 소문난 빙수 집으로 사람들이 몰려가 줄을 선다. 쏠림현상은 어쩔 수 없나보다. 현란한 자태로 뽐을 내며 나를 유혹한다. 







며칠 전 행사를 마치고 문우들과 헤어지기 아쉬워 빙수 집을 찾았다. 주문한 ‘망고 인절미 빙수’가 나왔다. 설산에 푸른 소나무 한 그루가 서 있는가 싶었는데 코로 가져가니 로즈마리 향이 은은하게 전해온다. 눈이 녹아내리듯 시럽이 흘러내리고 망고 조각들은 바위덩이처럼 듬성듬성하다. 눈으로 보는 맛이 좋다. 취한 눈으로 눈 한 스푼을 떠 넣으니 입안에 사르르 녹아든다. 시원한 감촉이 후덥지근한 열기를 걷어가 상쾌하다. 망고의 달달한 기운이 입 안 가득 고이고 우리들의 대화는 점점 화기애애해진다. 함께 나누어 먹으니 둥그런 두레상에 둘러앉은 가족처럼 오순도순하다. 닝닝한 사이라면 빙수를 놓고 마주 앉아 보면 서로 사랑할 수 있는 거리로 좁혀볼 수 있겠다.





딱히 여름이 아니라도 먹는 달콤하고 시원한 아이스크림을 빼놓을 수 없다. 아이스크림이 처음 나올 무렵에는 일부 귀족층들만 누렸다는데, 찰스2세 혼자만 맛봤다는 아이스크림은 그날 만찬코스에 딱 한 접시만 나왔다고 한다. 17세기 말에는 상당히 고급 음식으로 귀했던 모양이다. 19세기에 들어와 제조업과 운송업이 발달하게 되고 얼음 산업이라는 것도 생겨났다. 새로운 아이스크림 제조기며 귀하던 설탕이 저렴한 가격으로 공급되면서 서민들도 길거리에서 아이스크림을 살 수 있게 되었다. 요리사들은 다투어 다양한 크림과 푸딩을 얼리는 등 개발에 열을 올렸다. 젤라토 아이스크림도 19세기부터라고 한다. 







맛있는 음식을 입에 달다고 한다. 맛은 종국에 가서 ‘달다’에 도달하는 것이 최고가 아닐까? 맹물이라고 하는 물에도 맛이 있다. 철분이 많아 끈끈한 맛이 있나하면 새콤한 맛과 닝닝하면 차라리 낫겠지만 이 맛도 저 맛도 아닌 맹한 맛도 있다. 하지만 깊은 산에서 솟아오르는 물맛을 최고로 꼽아야 하지 않을까. 시원하게 속을 씻어 내리는가 싶다가도 입안에 감도는 뒷맛은 단맛이 감돈다. 어느 커피 전문가의 말을 우연히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던 적이 있다. 커피 맛은 그 토양에 가장 적합한 신선한 품종을 가지고 뽑아내었을 때 단맛이 입안에 감돈다고 했다. 오랫동안 좋은 커피를 얻기 위해 시간을 투자한 그의 말이 그물망처럼 모든 음식으로 번져간다. 지금은 지나치게 달콤한 맛이 지배하는 시대가 되었다. 인위적으로 맛을 내기 위해 설탕을 과다하게 쓰는 바람에 음식 본래의 맛을 잃어버리는 게 안타깝다.







오늘은 석촌호수를 바라보며 빙수 맛을 즐기기 위해 ‘설빙’을 찾았다. 메뉴판에는 다양한 빛깔과 모양으로 눈길을 끌어서 어느 것을 고를까 망설였다. 수박화채를 담아낸 듯 하거나 푸른 메론 텐트 속에 들앉은 설빙도 궁금하였지만 오늘의 분위기에 맞는 빙수로 정해야겠다. 벗을 위해 고심한 끝에 녹차가 들어간 빙수를 골랐다. 녹차밭에 들어온 듯 온통 초록이다. 하얀 얼음 산 위에서 막 공굴리기를 시작하려는 듯 탁구공만한 녹차덩이 두 개가 얹혔다. 찰떡 몇 점은 가끔 기분전환을 위해 쫀득함을 즐기라는 배려인가. 벗과 앉아 흰 눈을 한 삽 뜨듯이 한 스푼을 입안에 떠 넣으니 고소한 우유 맛이 여운으로 남는다. 이제 녹차덩이를 공격할 차례다. 설빙이 그 속에 하얗게 제 모습을 드러낸다. 녹차밭에 한참 뒹굴다 온 듯 우리들의 대화도 싱그러웠다. 어느새 서늘하다.


더위를 피하는 방법은 실로 다양하다. 오래전부터 궁중에서는 음식을 석빙고에 갈무리해왔다. 양반가에서는 보리수단, 수정과 식혜를 만들거나 이열치열이라고 해서 보양탕을 만들어 먹느라 여름날 마당을 돌아다니던 개와 닭들이 죽어나갔다. 삼베로 옷을 지어 입고도 등에 땀이 흐르면 뒤꼍으로가 엎드려 등목을 하거나 저녁 먹은 뒤에 개울가에 목욕하러 나선 것도 옛날 일이 되어버렸다. 더위를 날리는 부채종류들은 또 얼마나 많으며 천렵을 나서고 약수터로 물 먹으로 가는 일이 연례행사처럼 치러졌다. 냉방 기기들의 지나친 사용으로 냉방병이 걸리는 요즈음과는 딴 세상 이야기나 다름없다.







빙수를 먹거나 냉탕온탕을 오간 이야기들은 결국 피서의 한 방법이다. 옛날 귀족처럼 아니 그보다 더 고급스럽게 진화된 빙수 맛으로 달콤한 행복감에 젖어본다. 더위를 더위로 달래던 우리들은 이제 더위와 맞장을 뜨면서 더위를 무릎 끓게 했다. 비록 몸은 냉해를 입은 채소같을지라도 이 무더운 여름을 견디려면 혀 끝에 감기는 얼음 맛을 밀어내려고 손사래칠 수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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