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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 Aug 04. 2019

마카롱, 슬픔을 감추다



마음이 외롭고 쓸쓸한 날에 이런 상상은 어떤가. 달콤한 디저트와 만나듯 사랑에 빠져보는 건 즐겁지 않은가. 분위기 좋은 디저트 카페에서 꿈꾸던 연인과 마주하는 순간은 온통 마카롱빛깔처럼 황홀하리. 두 사람의 눈길이 만나 불꽃이 튀는 순간이 오고, 서로의 아우라에 끌려 덥석 물어버린다면 바삭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감칠맛 나게 녹아드는 사랑이 오리라. 운명적인 만남은 2.5센티의 마카롱 껍질처럼 가볍게 무너지고 무장해제 되는 소리를 듣는다. 

 

 영화 <마리 앙투아네트>에서 프랑스 궁중의 디저트를 볼 수 있었다. 오스트리아의 공주 마리 앙투아네트가 어린 나이에 프랑스의 황태자 루이 16세와의 정략결혼을 하면서 이야기는 전개된다. 베르사유 궁에 입성하여 펼쳐 보이는 장면들은 무게감과 화려함이 동시에 느껴졌다. 품격 있는 형식들 속에서 화려한 의상과 풍성한 식탁은 프랑스 귀족문화에 빠져들게 했다. 이름도 알 수 없는 케이크와 파이, 마카롱까지 모양과 빛깔이 눈이 부셔서 예술에 가까웠다.


 마카롱 카페 <메리 제인>에 들어섰을 때, 온실에 들어선 듯 풍성한 꽃들이 먼저 반겼다. 진열장을 들여다보니 벌써 빈 자리가 많다. 요즈음 마카롱의 인기가 높아서 일찍 매진되는 모양이다. 주문한 것들은 파스텔 톤의 꼬끄 위에 달콤하고 짭조름한 오레오와 프래즐 과자를 얹은 것과 딸기와 부루 벨리로 장식한 것이다. 2단 접시에 담아내오니 생일축하라도 받는 듯 호사롭다. 꽃향기에 음악이 묻어오고 차와 마카롱을 오감으로 느끼니 아늑하고도 편안하다. 


 원래 마카롱은 프랑스의 오래된 전통과자로 달걀흰자와 설탕, 그리고 아몬드 가루를 배합해서 만든 고급 디저트로 알려졌다. 이탈리아에서 프랑스로 건너갔다고 전하는데 지금처럼 두 개의 꼬끄 사이에 속을 넣어 쫀득하고 달콤한 맛을 내기까지는 재료와 모양을 달리하여 진화를 거듭해 왔다. 시간을 관통하며 희로애락이 깃든 마카롱을 곱씹어 본다.


 디저트의 대중화와 화려한 변신에는 설탕의 대량생산이 큰 몫을 차지한다. 단맛을 내던 꿀은 너무 비싸 서민들이 구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꿀 대신 조청으로 단맛을 내었던 것처럼 오래 전 인도는 사탕수수에서 단맛을 얻었다고 한다. 전쟁을 겪으면서 유럽으로 퍼져나간 귀한 설탕은 앞 다투어 식민지에 사탕수수를 심기 시작했고 값싼 노동력으로 설탕을 얻으려고 혈안이 되었다. 영화에서 본 노예선이나 하와이로 이민을 갔던 이들이 사탕수수밭에서 고생하던 장면이 떠오른다. 세계가 설탕생산에 열을 올리는 동안 빈부의 격차가 심각해지고 요동치는 각축전으로 빛과 그늘을 드리웠다. 아름다운 휴양지로 소문난 모리셔스에서도 그런 기억과 마주할 수 있다. ‘노예의 길’을 따라가면 ‘르몽산’의 가파른 절벽과 만나게 된다. 노예로 잡혀가지 않기 위해 도망가다가 더 이상 갈 곳이 없어 죽음을 택한 많은 영혼을 위로하는 십자가가 그곳에 세워져 있었다. 비취빛 아름다운 해변은 그때를 기억하고 싶지 않은 듯 무진장 아름답게 펼쳐졌다. 오래된 설날의 기억 속에는 설탕을 귀한 선물로 주고받았는데 이제는 흔하게 되었을 뿐 아니라 비만 때문에 멀리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 또한 아이러니가 아닌가.  


                                                      -리더스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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