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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 Dec 30. 2019

디저트가 있는 시간

행복한 식탁-잉여는 창작을 낳고

     

행복한 식탁


-잉여는 창작을 낳고


    송복련


음식의 내력을 알게 될 때는 또 다른 즐거움을 얻는다, 여기까지 흘러오는 동안 어떻게 다른 문화와 섞이고 또 새롭게 태어났는지 아는 순간 맛은 배가 되기 때문이다. 생명을 이어가는 한 그 면면한 흐름은 멈추지 않으리라. 



포르투갈 여행에서 만난 에그 타르트가 그랬다. 리스본의 ‘제로니무스’ 수도원을 둘러본 뒤 근처에 있는 ‘파스테이스 드 벨렘’이라는 베이커리에 들렀다. 







수녀원으로부터 에그타르트의 레시피를 전수받아 1837년부터 만들어온 전통의 맛을 보기 위해서다. 소문과 달리 나지막하고 작은 가게 안으로 들어갈수록 방들이 많았다. 좁은 통로를 기웃거리며 앉을 자리를 찾아 둘러보는데 포르투갈 특유의 장식과 문양이며 소박한 옛 건축의 느낌이 좋았다. 노란 에그타르트를 한 입 베어 무니 입에 착 달라붙었다. 세계적인 맛집에서 처음 먹어본 에그타르트는 낯설었지만 촉촉하고 달콤했다.







미리 둘러본 ‘제로니무스’ 수도원은 포르투갈이 해상 제국으로 발돋움하는데 공을 세운 ‘바스코 다가마’를 기념하기 위해 세워졌다고 한다. 그곳 수녀들은 옷에 풀을 먹일 때 달걀흰자를 사용했다. 내가 여고시절 갈분으로 깃을 세우던 것과는 달라 뜻밖이다. 유난히 희고 빳빳한 수녀의 두건을 경외의 눈으로 바라보았던 때가 떠오른다.


알뜰한 수녀들은 남는 노른자를 활용해서 에그 타르트를 만든 것이 발명의 동기가 되었다. 유럽 전역이 혁명의 물결에 휩싸였을 때 성소인 수녀원은 운영이 어렵게 되었고 교회의 자금 마련을 위해 이를 팔게 되었는데, 먹어본 사람들의 입소문이 퍼져나가 세계적인 디저트로 이름을 얻은 것이다. 잉여가 창작을 낳는다고 할까. 유럽의 타르트가 여러 나라로 퍼져나가 나라마다 독특한 맛으로 명소들이 생겨나고 여행객들을 부른다.



 어떤 재료를 얹느냐에 따라 초코타르트, 블루베리타르트, 애플타르트, 호도타르트 치즈타르트 등 서로 다른 빛깔은 보기만 해도 식탐을 부추긴다. 얼마 전 잠실에서 에그타르트를 사려고 줄을 섰다. 프랑스 정통의 맛집에서 한참 기다린 끝에 겨우 맛볼 수 있었다. 별다른 장식이 없이 노릇하게 구운 순수한 에그타르트는 바싹한 페이스트리의 느낌과 함께 부드러운 감촉이 혀끝에서 녹아들었다. 입안을 커피로 갈무리하자 다시 입맛이 당기는 걸 보면 커피와 궁합이 잘 맛나보다. 일행과 행사 뒤풀이로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세트로 넣은 작은 상자 속의 에그타르트는 금세 바닥이 났다.







에그타르트의 껍질인 페이스트리*는 소꿉놀이 그릇 같다. 놀이를 하다가 그릇째 먹는 재미라고나 할까. 손은 참 묘해서 못하는 게 없다. 포크나 나이프 같은 도구를 사용하기 전에는 무엇이든 손으로 만들고 손으로 먹고 했으니 소박하기 그지없다. 요리 연구가들은 오래 전 화덕에서 페이스트리의 기원을 찾는다. 빵을 굽기에 온도가 알맞은지 알기 위해 반죽을 조금 떼어 화덕에 넣어서 익어가는 과정을 보고 불을 조절했다고 한다. 이렇게 발전한 페이스트리가 디저트의 바탕이 된 셈이다. 국수를 써는 엄마 곁에서 자투리를 얻어 구워 먹던 일이 생각난다. 


부엌과 함께한 주부들은 남는 시간과 재료로 새로운 음식들을 만들어 왔다. 잉여는 새로운 가치를 만들고 원형을 비틀어 새 옷을 입은 디저트들로 식탁은 풍성해졌다. 부엌과 점점 멀어지는 요즈음이다. 간편화고 쉽게 구할 수 있는 인스턴트로 대신하다보면 부엌을 잃어버릴 지도 모른다. 오지 여행 프로그램에서 화덕에 둘러앉은 가족들의 평화로운 모습은 따뜻해 보였다. 만드는 이의 정성과 사랑이 있는 식탁에서 위로받고 함께 나누는 즐거움이 있는 행복한 식탁을 잃고 싶지 않다.













*페이스트리-밀가루와 유지에 물을 섞어 바싹 구운 과자 또는 빵을 일컫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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