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2월, 아루샤 지역에서 태권도 대회가 있어 우리는 버스를 타고 10시간을 넘게 아루샤로 갔다. 탄자니아뿐만 아니라 케냐, 르완다의 여러 태권도 클럽이 참가했고 이틀 간의 대회에 걸쳐 우리는 좌절을 맛봤다. 팀 간 실력을 떠나 타 팀의 코치들이 경기 심판을 겸했고, 말도 안 되는 판정으로 우리는 당황했고 억울했다. 항의가 통하지 않아 우리 팀 선수들과 이야기 끝에 대회를 보이콧했고 그대로 짐을 싸 경기장을 떠났다. 이 날을 위해 준비한 게 있으니 후회 없이 끝내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공정하지 못한 경기를 포기하면서 우리 팀이 깨닫는 것 또한 많을 거라 생각했다.
내게도 심판 제의가 있었지만 애초에 팀 코치 자격으로 간 거였고, 나 또한 그 상황에서 공정할 수 있었을까 하는 마음에 착잡했다. 돌아오는 길에 얘기했다. 우리는 이기지 못했지만 진 것도 아니라고. 공정성이 무너지면 실력으로 눌러 버리자고. 그러니 너무 상심하지 말라고 얘기했다. 정작 나는 코치 역할이 부족했던 것에, 언어의 한계에, 내 팀을 지키지 못했다는 것에 적잖이 상심했고 미안했다.
2월 1일, 다레살람 지역에서 태권도 대회가 있었다. 우리는 아루샤의 기억을 잊지 않고 매일같이 열과 땀을 쏟아내며 운동했다. 아침 8시에 훈련을 시작하면 자기들끼리 아침 7시까지 나와 몇 번이고 마을을 뛰어다녔다. 그렇게 최상의 컨디션으로 대회를 맞았다. 심판이 내키지 않았지만 경기를 운영할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했고, 우리 선수가 경기를 뛰면 점수를 매기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수락했다. 마음은 코치로 있으면서 선수를 북돋고 함께 소리 지르며 기뻐하고 싶었지만 마음을 누르고 내 할 일을 했다.
결과는 압도적이었다. 스무 명이 안 되는 인원이 참가해 모든 종목에서 금메달 12개, 은메달 8개, 동메달 9개로 종합 우승을 차지했다. 태어나 처음(아마 두 번은 없을) 헹가래도 받고 너희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며 내가 여기에 와 이런 짜릿한 경험을 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싶었다. 12월에 상처 받고 울었던 만큼 우리는 기뻤다. 나 또한 우리 선수들에게 얼마의 마음의 빚을 덜며, 두 번째 대회는 그렇게 막을 내렸다.
어떤 분야든 매한가지겠지만 적어도 스포츠에 있어 공정은 늘 중립이어야 하고 그것이 한쪽으로 기울었을 때 선수들의 노력은 물거품이 된다. 한국도 그랬고, 지금도 해결되었다고 말할 순 없지만 이 곳 대륙의 사람들도 이 사실은 꼭 알고 있어야 한다. 누군가의 욕심에 상처 받는 건 언제나 땀 흘리는 선수라는 것을.
이번 대회는 탄자니아 팀만 참가했고, 샴페인을 따기엔 아직 일렀다. 갚아주기 위해 다시 나아가야 하고 물론 이번 주는 온전히 쉬기로 했다. 스포츠에서 목표를 설정하는 건 무엇보다 중요하며, 노력의 모토가 된다. 자만하지 않게끔 옆에서 이끄는 게 여기에 있는 동안 내가 할 일이다. 져도 괜찮은 건 나뿐이고, 우리 팀은 앞으로도 쭉 많이 이겼으면 한다. 경기에 지거나 이기거나 여전히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있어 오늘 나는 정말로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