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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빌꿍 Apr 06. 2020

16. 멋지게 인사하는 법

오늘 2주 간의 자가격리가 끝났다. 수납박스에 넣어둔 옷을 하나 둘 꺼내 먼지를 털고, 적당히 먼지 쌓인 집을 청소하고, 가져온 짐을 정리했다. 한국과 탄자니아는 떨어진 거리만큼 시간 밀도도 다른지 2주는 훌쩍 지나가버렸다. 그리고 조금 전, 저녁을 먹다 메시지를 받았다.


갑작스럽게 한국에 돌아왔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순식간에 전 세계로 퍼졌고, 내가 속한 단체는 서둘러 귀국 결정을 내렸다. 귀국이 결정되고 나에게 남은 날은 일주일이 채 되지 않았다. 짐을 싸고, 기관에 출근해 사람들과 인사하고, 주변을 정리했다. 급한 나머지 감정 잡고 슬퍼할 틈도 없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종식될 때까지 대피하게 되었고, 내 봉사활동 기간은 세 달 남짓 남아 아마 다시 못 돌아오게 될 거라 어림짐작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내가 당연히 돌아올 거라 믿었고 나도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 편해 그러기로 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아쉬움도 슬픔도 덜했다. 마침 기관 휴가 기간이라 모두와 인사하지 못하고 문을 나섰다.

탄자니아를 떠나는 날, 코워커를 비롯해 학생 몇 명이 공항에 배웅을 나왔다. 현지의 옷과 모자, 스카프 등을 챙겨주었고 내가 들어갈 때까지 몇 시간을 같이 기다려줬다. 마음이 먹먹해졌지만 다른 봉사단원 선생님들과 함께 있어 겨우 억눌렀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며 줄 게 없어 가지고 있던 내 태권도 띠를 학생에게 건네주고 비행기에 올랐다. 다시 만나자고 약속하며 탄자니아를 떠났다.


다시 오늘, 2주 간의 격리가 끝났다. 집에 머무르는 내내 뉴스를 찾아봤고 탄자니아로 다시 돌아갈 수 없다고 단정 지었다. 떠나올 때부터 알고 있었지만, 인정하고 나니 기분이 이상했다. 그러다 저녁을 먹고 있는데 종종 안부를 묻고 지내던 학생으로부터 메시지를 받았다.

제대로 인사하지 못했다. 바쁜 와중에 짐 싸는 일도 버거웠고, 감정도 짐이라 막연하게 코로나가 끝나면 돌아오겠다고 사람들한테 얘기하고 떠나왔다. 마음 한 구석이 계속 무거웠고 오늘 저녁, 메시지에 마음이 와르르 무너졌다. 나는 저 메시지가 다시 못 만날 사람에게 하는 인사 같아 지금 마음이 너무 아프다.


멋지게 인사하고 싶었다. 승단 시험을 봤고, 태권도 단증과 한국에서 주문해 기다리고 있던 태권도복, 는 내 손으로 매어줘야겠다 생각했었다. 함께 같이 땀 흘리며 운동하던 내 사람들과 일일이 인사하고 싶었다. 수업이 끝나면 덥고 피곤하다는 핑계로 곧장 집으로 가버렸다. 내 뜻대로 일이 되지 않으면 화부터 냈다. 아직 몇 개월 더 남았으니 오늘은 여기까지. 이 모든 게 아쉽다.

분에 넘치게 사랑받았다. 일찍이 알았고,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알고만 있었다. 자주 멍청하게 굴어 하나부터 열까지 나를 도와줬다. 비슷한 나이 또래인데도 태권도를 배웠다고 늘 예의를 갖춰 대해줬고, 수업이 끝나면 친구, 형제처럼 맞아줬다. 태권도에 대한 열정이 강해, 내가 미처 못 따라갔다. 피부색도, 종교도, 생각 하나하나도 다르지만 그저 한 사람으로 대해줬다. 인생에 확신은 금물이지만, 앞으로 어디를 가서도 이만큼이나 사랑받지 못할 거란 걸 알아 씁쓸하면서도 행복하다.


탄자니아에 있는 동안 함께 있어줘서 고마웠고 행복했으며 무척이나 사랑했다. 마음을 가득 채워 한껏 사랑했던 탄자니아를 떠난다.  봉사단원으로 탄자니아는 여기서 끝나지만, 지긋지긋한 코로나 바이러스가 끝나면 다시 여행을 가 못다 한 인사와 이야기를 마저 할 생각이다. Kwaheri,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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