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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빌꿍 Dec 15. 2019

6. 나는 그만 정신이 아득해졌다.

말라리아 생존기

  탄자니아에 사는 동안 꾸준히 나를 위협하는 세력, 말라리아에 걸려 시름시름 앓던 이야기를 간략히 소개한다.


2019.09.10

여느 때와 같은 평일 저녁, 갑자기 머리가 쑤셨다. 숙취에서 오는 고통과 비슷했는데 최근 술을 입에 댄 적이 없었고, 같은 템포로 머리 안쪽에서 바깥으로 때리는 느낌, 그와 동시에 머리에서 둥둥 북소리가 울렸다. 두통 말고는 다른 증상이 없고 자고 일어나면 괜찮겠지 싶어 억지로 잠을 청했다.


2019.09.11 아침

긴 밤 두통으로 온전히 잠을 자지 못한 아침, 하늘은 먹구름으로 가득했다. 오전 수업이 있어 마친 후 병원에 가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보통의 경우엔 숙취든 그 밖의 두통이든 땀을 흠뻑 흘리고 나면 잦아들곤 했다. 그리고 수업을 마쳤는데 잦아들기는커녕 더 심하게 두통이 일었다. 코워커와 함께 기관 내에 있는 Dispensary(보건소)로 가서 의사를 만났다. 마음 한 켠에 한국에서부터 가지고 왔던 걱정 한 가지가 다시금 스멀스멀 기어 올라왔다. 말라리아 검사를 했고 조금 뒤, 말라리아 양성 판정을 받았다. 의사의 무덤덤한 말들에 나는 전혀 무덤덤하지 못했다. 약을 받아 복용법을 메모하고 코워커와 근처의 식당에 가 손에 잡히는 대로 음식을 집어삼키고 곧바로 첫 번째 약을 먹었다. 그 사이 먹구름은 비를 쏟아 내리고 있었다.


2019.09.11 저녁

물과 주스를 많이 마시라는 의사의 말에, 마실 것을 왕창 사 집에 도착했다. 부쩍 마음이 피곤해져 낮부터 잠에 들었다. 그리고 눈을 떴는데 이미 해가 진 저녁. 종일 피곤했던 탓일까 약 기운 때문이었을까 눈을 뜨고 여긴 어디인가 한참을 생각했다. 그리고 이내 기억을 찾았다. 나는 오늘 지구 반대편에서 말라리아에 걸렸고 깜깜한 방에 혼자 누워 있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억누르고 있던 마음나사가 풀려 나는 그만 정신이 아득해졌다. 탄자니아에 함께  동기에게 전화해 다행히 도움을 받았다.


그리고 그 후
먹을 것을 잘 챙겨 먹고 약도 꼬박꼬박 먹었다. 며칠 집에서 쉬는 동안 코워커는 내가 약 먹어야 할 시간에 째깍째깍 전화해줬고 학생들은 주말에도 먹을 것을 가져다준다 했지만 마음만 받았다. 사람들의 걱정과 관심에 고마울 따름이었다. 토요일 시내의 병원에 가 피검사를 했고 말라리아 기생충이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그 말에 기쁜 나머지 의사를 와락 끌어안을 뻔했지만 악수만 청했다.

이후 무엇 때문인지 피부가 뒤집어져 적잖이 스트레스를 받지만 건강에는 문제없다. 주기적으로 말라리아 검사를 하고 있고 작은 두통만 생겨도 괜히 불안해 이후로는 필요 이상으로 술을 마시지 않고 있다.


말라리아는 모기가 옮기는 풍토병이며 기생충이 몸에 들어와 두통, 근육통, 발열, 오한 등 여러 증상을 초래한다. 일찍이 발견하고 치료하면 괜찮지만 그러지 못한 경우에는 100% 사망에 이르는 무서운 질병으로 알고 있다. 코이카 봉사단에 합격하고 이곳에 오기까지 가장 큰 고민이 바로 말라리아였다.


이 주제에 대해 글을 써도 될까 싶어 한참을 고민하다 이제야  쓴다. 내가 일하고 있는 다레살람 경찰학교는 2015년 코이카 봉사단원 고 오종세 단원이 말라리아로 돌아가셨던 곳이다. 이 곳에 오기 전 정보를 찾아보다 그 사실을 알게 되었고, 안타까웠으며 무서웠다. 내가 같은 상황에 처했을 때 잘 대처할 수 있을까, 잘못되면 어떡하지. 아픔을 상상할 수 없었다.

지금 있는 태권도장은 그가 떠난 후에 그의 이름을 빌려 지은 곳이다.

나는 그를 만난 적은 없지만 그가 앞서 걸었던 길을 가고 있다. 지금 그는 없지만 여전히 이곳에는 그의 흔적들이 있고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 곳에 오기 전까지 그런 사연은 알지도 못했고 지금도 우리는 모를 것이다. 다만 누군가는 알아줬으면 해 고인의 사연을 글에 담았다.

그가 있었기 때문에 오늘날 내가 여기에 있고 앞으로도 다른 누군가가 이 자리를 대신할 것이라 믿는다.
진정으로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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