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루샤 지역에서 일정을 마치고 모시 지역으로 건너왔다. 내 지역과는 달리 선선하고 맑은 공기에 6개월을 꼬박 기다려온 첫 휴가임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5박 6일 일정으로 아프리카 대륙 중 가장 높다는 킬리만자로 산에 오르게 되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1일 차
6일에 걸쳐 산을 오르내리는 일정이라 고도에 적응하는 게 필요했다. 내게 가장 높았던 산은 2,000m가 채 안 되는 한라산이라 모든 게 낯설었다. 여행사 사무소에서 가이드, 요리사, 포터를 만나 짐을 챙겨 산으로 향했다. 첫날부터 하늘에서 비가 퍼부어 내심 걱정이 되었지만 울창한 숲이 비를 막아줘 편히 산을 오를 수 있었다. 3,000m가량에 위치한 Hut에 도착해 저녁을 먹고 책을 끄적이다 잠에 들었다.
킬리만자로 산 입구
2일 차
아침 일찍 일정을 시작하며 가이드에게 처음 보는 식물을 이것저것 물어보았고 이름만 이해할 수 있었다. 오전 내내 부지런히 산을 오르니 일찍이 다음 Hut에 도착했다. 같은 시기에 온 사람들 중에 스와힐리어를 할 줄 아는 외국인은 나뿐이라 현지인들이 굉장히 신기해하며 친절히 대해줬다.
3일 차
전날 밤 너무 추워 잠을 뒤척였고, 아침부터 몸살에 미열이 있었다. 다행히 오늘은 고도에 적응하는 날이라 일정 고도까지 올라갔다 다시 돌아오는 게 전부였다. 이곳저곳 수소문해 해열제를 구해다 먹고 일정을 소화했다. 쉬고도 싶었지만 몇 개월을 기다려온 여행이었고 비용 또한 봉사단원의 생활비로는 어마어마해 이번에 꼭 올라가겠다고 다시 마음을 부여잡았다.
구름 위에서 맞는 아침
4일 차
킬리만자로 산 바로 밑 4,700m 고도의 Hut까지 올라왔다. 탄자니아에 와서 매일 아침저녁으로 운동을 했고 그 때문에 다리는 전혀 피곤하지 않았다. 마음 같아서는 더 빨리 산을 오르고 싶었지만 가이드는 말했다.
'Pole pole, haraka haraka haina baraka. '
'천천히 해라, 빨리빨리 하는 건 행운이 없다. '
탄자니아의 오랜 속담이고 한국인인 나는 내심 답답했지만 순순히 말에 따랐다. 다음날 새벽부터 일정이 있어 저녁을 먹자마자 눈을 붙였다.
5일 차
아침에 킬리만자로 산 정상에 도착하기 위해 자정부터 출발했다. 태생이 잠 깨는 게 힘들어 제일 마지막에야 어기적거리며 출발했고 같은 곳을 오르는 여행자들을 만날 때마다 서로 파이팅을 외쳤다. 춥고 졸렵고 산은 이전까지와 달리 가파랐다. 킬리만자로 등반의 꽃이 오늘이겠거니 생각하며 산을 오르다 보니 5시간 반 뒤에 5,895m, 정상인 우후루 피크에 도착했다. 5일간 걷는 내내 탄자니아에서 겪은 일과 앞으로의 일을 생각했고 나아갈 방향을 찾을 수 있었다. 산을 내려오는 길에 미국에서 온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를 다독이는 걸 보며 함께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그저께부터 앓던 몸살과 미열이 남아 있어 하루 일찍 산을 내려왔다.
킬리만자로 산은 사계절이 다 존재한다고 들었다. 산을 오르는 동안 더위와 추위에 적응하지 못해 앓았고 5일간 제대로 씻지 못했지만 이상하게 피부는 더 좋아졌다. 산을 오르는 일은 다른 누군가와 경쟁하는 게 아닌 자신과의 싸움이었고 천천히 걸었기 때문에 주변의 꽃과 나무를 만날 수 있었다. 오르는 내내 언젠가 또 올 수 있을까 생각했다. 다음에 다시 오게 되면 누군가와 함께 오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