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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빌꿍 Dec 30. 2019

8. 강제 미니멀 라이프

작은 행동에서 커다란 변화로

  여행을 간다는 내게 코워커는 모자를 선물했다. 천과 가죽을 덧댄 챙이 달린 모자는 현지인에게는 맞지만 안타깝게도 동양에서 온 내 머리에 전부 들어가지 않았다. 여행 내내 쓰고 다니다 마지막 날 금호타이어 로고가 박힌 모자를 쓰던 가이드에게 선물했다.

이곳에 오고 얼마 안 돼 휴대폰을 잃어버렸다. 새로 산 휴대폰의 케이블을 찾아 돌아다니는 나를 보던 동기 선생님은 자기가 쓰려고 한국에서 가져온 케이블을 내게 선물했다. 어쩌다 보니 한 번도 쓰지 않았고, 이번 여행 때 혹시나 해서 가지고 다니다 케이블이 없어 곤란해하는 한국인 여행객에게 주고 왔다.

 

물건에 대한 애착에 하나도 버리지 못하고 쌓아두곤 했었다. 나이를 먹으면서 몇 번의 이사를 거쳤다. 용인에서 서울의 좁은 집으로 이사하면서 매트리스가 들어가지 않아 버려야 했고, 괜히 이사를 도와주던 친구들에게 심술을 부렸던 날도 있었다. 그렇게 물건 버리는 방법을 알아갔다.

내가 샀건 누군가에게 선물을 받았건, 처음에 느꼈던 감정을 결코 잊은 게 아니었다. 단지 살아보니 갖가지 이유로 손에서 놓은 것뿐이었다. 내게 있으면 언제까지고 먼지 쌓인 채로 있을 물건이지만 누군가에겐 꼭 필요한 물건일 수 있을 테니, 그러라고 만들어진 물건일 테니 말이다. 아직도 한국의 옷장에는 몇 년째 걸어만 놓은 옷이 한가득이지만 돌아가면 그마저도 비울 수 있기를 바란다.

미니멀 라이프, 불필요한 물건이나 일 등을 줄이고, 일상생활에 꼭 필요한 물건만으로 살아가는 생활방식.

몇 년 전에 냉장고 없이 사는 부부의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불필요한 소비와 버려지는 것을 줄이는 삶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당시 나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고 전혀 생각지도 못한 삶의 방식이었다. '언젠가 꼭 한 번은 저렇게 살아봐야지.' 하고 막연히 다짐했었다. 그 후 까맣게 잊고 지내다 탄자니아의 작은 집에서 강제 미니멀라이프가 시작되었다.


오늘 저 자그마한 냉장고로 살고 있다. 집을 구할 때 냉장고가 딸려 있었으며 금방 다른 걸 사야지 마음먹었던 게 가격이 비싸 중고를 알아보다 이제는 저기에 적응해버렸다. 물과 음료 하나, 작은 김치통과 조미료를 넣으면 꽉 차는 양이지만 그런대로 살아지고 있다. 퇴근길 그 날 먹을 만큼의 식재료를 사 그때그때 요리를 하고 이따금 냉장고에 달달한 간식거리를 채워둔다. 남김이 없으니 음식물쓰레기가 거의 나오지 않고 위생과 냄새 걱정이 없다. 나름 괜찮은 삶이다.

요즘 일주일에 한두 번은 정전으로 하루 온종일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다. 그럴 때마다 생각한다. 저기 있는 냉장고가 커다랬다면 나는 얼마만큼의 음식을 채워뒀을 것이며 또 얼마만큼을 버려야 했을 것이며... 상상만 해도 짜증이 밀려온다. 다행히 버릴 게 없어 안도하며 생각은 꼬리를 문다. 불필요한 소비를 줄여 생활비를 절약했으며 냉장고를 사지 않음으로써 전기 또한 아낄 수 있다. 쓰레기를 만들지 않았고 냉장고에서 발생하는 프레온가스를 줄였으며 이로 인해 조금이나마 지구가 건강해지길 바란다. '나 하나쯤이야.'가 아니라 '나 하나로부터.' 개인의 절약으로 시작한 작은 행동은 분명 커다란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다.


하나라도 더 가지려고 갈구하는 세상에서 자그마한 냉장고 하나로 내려놓음을 배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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