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빌꿍 Dec 10. 2019

5. 아마도 마지막이 될 태권도

  매주 평일 아침 그리고 저녁, 지긋지긋한 더위와 싸우며 태권도를 가르치고 있다. 지금 일하는 기관은 다행히 코이카에서 지은 태권도장이 있다. 태권도장은 크고 넓지만 바람이 잘 통하지 않고 양철지붕은 아프리카 대륙의 태양열을 그대로 전해줘 가끔은 사우나에 있는 것도 같다. 음식 가리는 것 없이 뭐든 많이 먹음에도 불구하고 얼마 전 몸무게를 확인하니 3kg가 조금 넘게 빠져서 당황스러울 따름이다.


현지 경찰을 대상으로 태권도를 가르치고 있다. 처음엔 언어가 자유롭지 않아 하나하나 직접 몸으로 뛰어야 했고, 환경에 적응하는 게 쉽지 않아 퇴근하면 씻자마자 침대로 들어갔다. 4개월 차인 지금은 언어도 제법 입에 붙었고 수업 커리큘럼이 잡혀 조금 더 효율적으로 일을 하고 있다. 아침에는 태권도 선수단을 지도하며, 8월에 케냐에서 열린 태권도 대회에서 적지 않게 메달을 땄고 12월 탄자니아의 북쪽, 아루샤에서 대회가 있어 곧 먼 길을 떠날 예정이다.

저녁에는 선수가 아닌 학생들을 지도하며 주기적으로 심사를 해 태권도 실력 향상에 주력하고 있다.


처음은 8살 때였다. 기억은 안 나지만 당시 몸이 약했고 또래에 비해 덩치가 작아 집에서 날 태권도장에 보냈고 어쩌다 보니 이걸로 대학까지 진학했다. 대학에서 유도와 용무도를 배우며 그렇게 열심히 한 것도 아닌데 지날수록 몸이 안 아픈 데가 없었다. 운동으로 밥 벌어먹고 살 생각도 없어 일찍이 운동을 그만뒀다. 그리고 어쩌다 보니 아직도 도복을 입고 있다.


후회했었다. 지난날 입시를 준비하며 진득하게 공부해 본 적 없으면서도 운동보다 공부가 훨씬 쉬울 거라 확신을 했고, 제대 후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마음가짐도 잠시 원하는 직종에 서류에서 번번이 고배를 마시며 '내가 체대생이 아니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하곤 했다. 인정하려 들지 않고 핑곗거리를 만들어 자기 방어하기 바쁜 나날이었다.


다행이었다. 지난날 걸어온 길 덕분에 대학생 시절 몽골에서, 그리고 지금 탄자니아에서 봉사를 할 수 있었다. 배운 게 운동인 체대생이라 한국의 무도인 태권도를 가르칠 수 있었다. 잘 닦인 길은 아니었지만 주저 않지 않아 걸어올 수 있었다. 길의 곳곳에서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아마도 나에게 태권도는 이번 탄자니아의 1년을 끝으로 마지막일 것이다. 인생 2막에서는 또 어디를 걷고 있을지 확신할 순 없지만 여전히 좋은 사람들을 만나 웃을 일이 많을 것이다. 내 인생 파이팅 : )

매거진의 이전글 4. 12월, 여름의 김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