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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빌꿍 Dec 03. 2019

4. 12월, 여름의 김장

엄마를 생각하며.

  계절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계절을 하나 꼽으라면 내겐 단연 겨울이다. 첫눈, 크리스마스와 캐럴, 누군가의 손에 들린 케이크 상자에도 짐짓 들뜨곤 한다. 전기장판 깔린 이불에 들어가 귤도 왕창 먹을 수 있는 계절. 겨울이 좋은 이유를 얘기하자면 끝이 없지만 어릴 적 친척들이 모여 하루 종일 김장을 하던 기억도 한 몫한다. 대학생이 되고는 고향에 자주 내려가지 못해 이맘때가 되면 김장봉사를 찾고는 했다. 갓 담은 김치와 김이 모락모락 나는 수육이 그리웠던 건지, 오순도순했던 어린 날 기억이 그리웠던 건지.


김장, 겨우내 먹기 위하여 김치를 한꺼번에 많이 담그는 일.

혼자서 김장을 한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지만 한국 소식을 듣다 마음에 바람이 불어 주말을 빌려 김장에 도전했다. 탄자니아의 12월은 매일 30도가 훌쩍 넘는 여름이고 보관할 수 있을 만큼의 적은 양이지만 그래도 김장이라 정했다.

전날 시내에 나가 배추와 재료를 사 와 눈 뜨자마자 배추를 씻어 소금에 절여놓고 양념을 만들었다. 추석 때 한국에서 받은 고춧가루와 설탕, 깨소금과 피쉬 소스를 넣고 마늘과 생강을 갈아 파와 함께 섞었다. 그리고 절인 배추를 물에 헹궈 배추 속 겹겹이 양념을 버무렸다.

이제껏 해왔던 것 중 가장 짧고 심심하게 김장 종료. 내가 알던 김장은 아주머니들 틈에 끼여 누구네 딸을 소개해 주니 마니 떠들며 지지고 볶던 거라 조용함이 낯설었다. 조금 덜어 근처에 사는 봉사단원 선생님한테 가져다주고 왔다. 그리고 돼지고기를 사 와 수육 뚝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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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엔 엄마가 하루 종일 허리 굽혀 김장을 하고는 다른 집에 줄 것들을 따로 넣고 있는 모습을 보며 '왜 저렇게 힘들여서 만들고 이곳저곳 나눠줄까. '싶었다. 그리고, 이제는 그게 어떤 마음이었는지 알 것도 같다. 주고받는 마음도, 주기만 해도 그게 얼마나 기쁜 일인지. 지금 내가 여기 있는 것도, 내 봉사의 이유도 그때 엄마의 마음과 다르지 않다는 걸.


회사를 그만두고 봉사를 하러 먼 길을 간다고 했을 때, 가까운 사람이 아니고는 이해를 하지 못했다. 그리고 이유를 물을 땐 듣기 좋은 대답을 하고 대화를 끝냈다. 사실 나조차도 그 질문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그냥 단지 내가 좋아서, 조금이라도 어릴 때 하고 싶은 일이라서. 그러다 정말 어이없게도 오늘, 혼자 집에서 김치를 담그다 알았다. 내가 엄마를 닮아 지금 여기에 있구나.


그 부재가 불편할 때가 있었다. 학생 시절 아르바이트를 그만둔다고 했을 때 사장은 엄마가 안 계신 걸 언급하며 돈을 벌어야 하지 않냐고 했는데 지금 돌아보면 참은 게 대단했다. 어떤 기업의 면접을 볼 때는 면접관이 엄마가 왜 안 계신지, 병명까지 물어보길래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도대체 내가 일하는 것과 엄마의 부재와 병명이 무슨 상관관계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이따금 그런 사람들을 겪으면서 다른 사람에게 굳이 말할 필요가 없겠다고 생각했었다. 사람들은 그걸 약점인 양 나를 흔들어댔고 나는 흔들렸었다.

 내게 엄마는 자랑이며 다른 사람에게 따뜻하고 나눌 줄 아는 사람이셨다. 한국에 돌아가서는 예전처럼 불편하지 않을 생각이다. 잘못된 건 내가 아니라 그 사람들이니까. 12월의 여름에 김장을 하다 문득 엄마를 생각하고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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