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나, 누구나 평등한 진료를 받을 수 있는 가능성
눈으로 전신질환을 보려는 연구를 구글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국내 스타트업이 더욱 앞서 나가고 있습니다. 바로 인공지능 벤처 기업인 메디웨일입니다.
메디웨일은 안저 사진을 통해 눈의 질병을 진단하는 것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안저 검사로 심장의 관상동맥 질환을 진단하는 닥터눈(Dr. Noon)을 개발했습니다.
닥터눈은 딥러닝 기반의 안저 판독 인공지능인데요, 안저 촬영 후 3분 만에 각종 안질환과 심혈관질환을 예측할 수 있습니다.
닥터눈의 예측율은 안질환 95%, 심혈관질환 83%로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참고로, 2018년 미국 FDA에서 의료기기로 허가받은 IDx사의 당뇨망막병증 진단 인공지능은 경우 87%의 정확도를 기록했습니다.
정확도보다 놀라운 것은 진단할 수 있는 질환의 범위가 넓다는 것입니다. 우선 안질환의경우 당뇨망막증뿐 아니라 황반변성, 녹내장을 비롯한 다른 망막질환도 진단할 수 있습니다. 덕분에 구글 안과 인공지능의 책임 연구자가 메디웨일에 협업을 요청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인공지능 기술로 망막 영상을 관찰해 심혈관질환 위험을 예측할 수 있는 것은 ‘관상동맥 석회화 지수(이하 CACS, Coronary Artery Calcium Score)’와 연관됩니다. 관상동맥석회화지수는 심장혈관 내 노폐물이 얼마나 쌓였는지를 점수화한 것으로, 수치가 높으면 높을수록 동맥경화와 같은 심혈관질환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최근 미국에서는 수많은 임상자료와 미국심장협회의 가이드라인을 통해 CACS가 절대적인 심혈관 위험인자로 자리잡았습니다.
심혈관질환을 예측하는 진단표준이자 가장 정확한 바이오마커**인 CACS를 파악하려면 심장CT 촬영이 불가피했습니다. 이에 따라 CT장비 도입과 영상의학과 전문의의 판독에 따른 비싼 검사비용, 방사선 노출 문제가 있었습니다.
** 바이오마커: 몸 안의 변화를 알아낼 수 있는 여러 지표
인공지능을 활용하면 비용과 방사선 부담없이 CACS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망막영상 자체가 CACS를 파악하는 바이오마커가 되어 심혈관질환 위험도를 판단할 수 있게 된 것이지요.
안저사진만으로 CACS를 파악할 수 있었던 것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우리나라만 눈과 심장CT 자료를 함께 보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의 건강검진센터에서는 대부분 심장CT 검사를 시행하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메디웨일은 국내 검진센터에서 수집된 12만 장의 안저검사 이미지와 함께 세브란스병원 건강검진센터의 ‘안저 사진+심장CT 판독 결과+검진수치’ 데이터 세트 5만 건으로 딥러닝시켰습니다.
메디웨일은 이 연구를 눈과 전신질환 연구의 세계적인 석학인 싱가포르의 웡 티엔 교수와도 함께 했습니다. 높은 정확도와 현재 국내 여러 병원은 물론 인도에서도 임상시험이 진행 중이고, 싱가폴과 베트남, 필리핀에서도 곧 임상이 시작될 예정입니다.
심장CT로 심혈관질환을 진단하고 있는데 왜 굳이 인공지능을 사용해야 할까요?
여기에서 의료 인공지능의 또 다른 가치가 드러납니다.
심장CT 검사 비용은 우리나라에서는 20만원 대, 미국은 100만 원 가까운 비용이 소요됩니다. 다른 나라에서도 비싸긴 마찬가지이고요. 게다가 방사선 노출 위험이 있어 연 2회 이상의 촬영은 지양하라는 의사들의 권고가 있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안저 촬영을 통한 심장검사는 1~5만 원 가량의 진료비면 충분합니다. 덕분에 CT에 비해 경제적이고 안전합니다.
진단비가 낮아지고, 검사가 간단해지면 취약계층에 대한 의료 접근성이 높아지는 것은 당연히 높아질 것입니다.
헌데, 안저 검사는 평소에는 좀처럼 하지 않는 검사입니다. 당뇨환자의 1/3, 50세 이상 고령자의 1/7이 안질환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건강검진센터나 내과에서는 안저 검사를 하지 않는 것이 현실입니다. 안저 검사뿐 아니라 안과 검사를 좀처럼 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지요. 안과 전문의를 따로 두지 않는 한 판독하기 어려우니까요. 매년 하는 건강검진도 시력검사로 끝나기 일쑤, 안경을 쓰는 분들은 안과보다는 안경점에서 시력검사를 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내과나 건강검진센터에 닥터눈과 같은 인공지능이 있다면, 그래서 망막병증이나 심장질환처럼 전문의의 치료가 시급히 필요한 환자를 인공지능으로 선별할 수 있다면, 아마도 기존보다 훨씬 간단한 방식으로 같은 품질의 서비스를 보다 낮은 비용에 제공받는 환자의 수가 증가하게 될 것입니다.
의료의 문제 중 하나는 항상 공급 대비 수요가 많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공평하지 않지요. 국가에 따라, 사는 지역에 따라 공평함의 정도는 또 달라집니다. 국가가 의료보험 제도를 운영하는 우리나라에도 전문적인 의료 서비스가 공급되지 않는 취약지역이 많습니다. 하물며 제3세계로 가면 어떨까요?
의료 서비스가 공평하지 않은 것은 시설의 문제와도 연결됩니다. 검사와 치료를 위해서는 환자와 의사가 만나고 검사장비와 수술장비를 갖출 공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하지만 의료 인공지능은 대부분 소프트웨어 형태로 제공되므로 공간의 제약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습니다. 그래서 필요한 지역에서 즉각적으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해줄 수도 있습니다. 가격과 공간이라는 의료의 고질적인 진입장벽을 넘어설 수 있다면 의료는 혜택을 받는 이들은 당연히 늘어나게 될 것입니다.
사회경제적인 조건에 구애받지 않고 누구나 필요한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세상은 여전히 요원합니다. 하지만 아마도 의료 인공지능이 의료 서비스가 평평해지는 모두를 위한 세상을 향한 방향과 방법을 찾는데 속도를 내게 하는 액셀러레이터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메디웨일 최태근 CEO
포항공대에서 공부했으며, 안과질환으로 전신질환을 예측하는 인공지능 스타트업 메디웨일의 CEO(Chief Executive Manager, co-founder)입니다.
에디터: 최예지, 이명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