雪, 슈톨렌 파이
#. 럼에 절인 건과일, 마지팬
바싹바싹 말라 가는 나무와
바래진 나무껍질.
잎사귀에 둘러싸였던 순간은
날카로운 겨울바람과 함께 사라지고
앙상한 나뭇가지만 남아
흔들거리는 나무.
매서운 찬바람, 시린 코 끝,
이따금 찬 공기를 들이쉬면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하얀 입김,
어느새 맞이한 마지막 계절 겨울
거리를 걸을 때마다 만나는
반짝이는 전구와 크고 작은 트리,
커다란 루돌프와 마른 가지를 엮어 만든 리스.
상점 안 곳곳 자리한 오너먼트.
적막하고 짙은 겨울밤
따뜻한 온기를 느끼게 해주는
부지런한 사람들의 손길.
찬바람이 불던 초겨울.
대전에 갔던 언니가 사 온
큰 제과점의 슈톨렌.
오랜만에 본 슈톨렌에
처음 먹었을 때 기억이 떠올랐다.
입에 넣자마자 가득 퍼지는
짙은 럼향과 진한 단맛,
중간중간 씹히는 건과일 그 속에
건포도, 오독오독한 견과류,
큼직한 마지팬, 끝에 남는 향신료의 맛.
진한 단맛과 럼향, 곳곳에 함정처럼
씹히던 건포도가
내겐 너무 어려웠던 맛이라
생생히 기억나는 첫 슈톨렌.
강렬했던 첫 기억 탓인지
약간의 걱정과 함께 먹었던
몇 년 만의 슈톨렌은
은은한 럼향과 많이 달지 않아서
부담 없이 먹을 수 있었고,
건포도가 들어가 있지 않은
새콤한 건과일들이 취향에 맞는 빵이었다.
하루마다 조금씩 잘라서 먹은 슈톨렌은
며칠 새 금방 사라졌고, 생각보다
맛있었던 빵에 크리스마스전에
만들어봐야겠단 마음이 들었다.
처음은 클래식 슈톨렌을 만들 생각으로
시작했지만, 빵보다는 슈톨렌 맛이 나는 과자를
작업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독특한 슈톨렌을 만들고 싶어졌다.
무스나 케이크로 작업하기엔 무거운 맛이
어색하게 느껴질 것 같았다. 내가 좋아하면서
즐겁게 작업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 제일 좋아하는 파이가 떠올랐다.
슈톨렌 특유의 눈 덮인 언덕 같은 모양과
은은한 럼향, 럼에 절인 새콤달콤한 건과일믹스,
쫀득한 마지팬 같은 좋았던 부분을 담고,
나의 취향을 섞어 슈톨렌 파이를 만들어 보자 하곤
몇 번의 수정 끝에 레시피와 디자인을 구성했다.
먼저 슈톨렌을 만들기 2주 전쯤
건과일을 럼에 절여 두었다.
(건포도 대신 듬뿍 넣은 크렌베리,
오렌지 필, 반건조 무화과
두 가지 제스트, 바닐라빈을 럼에 절여
과일믹스를 만든다.)
건과일믹스, 유기농 완도 유자로 만든
향긋한 유자 꽁피,
고소한 헤이즐넛과 호박씨를
아몬드크림에 넣고
잘 섞어 파이크림을 만들고
파이지 위에 짜준다.
구운 아몬드와 슈가파우더로 만든
마지팬과 밤 조림을 크림 위에 올리고
원하는 모양으로 성형 후
밑면이 노릇해질 때까지 구워준다.
슈가파우더와 버터, 바닐라빈을 넣고
휘핑한 크림에 다크 럼을 소량 넣어
은은한 럼버터 크림을 만든다.
식힌 슈톨렌 파이 위에 올려 샌딩 후
크리스마스 오너먼트를 떠올리며
좋아하는 스프링클을 뿌려 마무리한다.
알록달록 크리스마스
추운 겨울날과 잘 어울리는
보네 雪, 슈톨렌 파이
21.12月
크리스마스 슈톨렌 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