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봉사활동을 하는 우리는 모두 범인(凡人)이다. 숭고한 마음가짐을 품고서 기꺼이 희생하는 성인이 아니다. 가진 돈이 충분해서 오블리제를 실천하는 노블레스는 더욱 아니다. 남들이 할 수 없는 전문적인 기술로 도배하는, 도배의 달인도 아니다. 혼자서 1톤짜리 장판을 번쩍 들 수 있는 장사도 아니며, 필요한 벽지를 보자마자 암산해 내는 영재도 아니다. 우리 모두는 범인이기에, 그래서 계속 함께한다. 한 푼 두 푼 모아 봉사에 필요한 장비를 구비하고, 서로에게 가르쳐주고 배우면서 깔끔하게 도배하는 법을 알아가고, 손을 모아 낑낑거리며 무거운 장비를 나른다. 누군가는 혼자 장판을 들 수 있고 누군가는 집 전체 도배를 혼자서 끝마칠 수 있지만, 소수의 비범인보다 범인이 많은 우리는 그렇게 함께한다.
잘 해내야만 하는 세상에서, 함께 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는 것. 봉사활동을 시작하기 전에는 몰랐다. 마음 한구석에서 항상 잘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씨를 뿌려, 완벽하지 못할 거란 불안이 싹을 틔웠다. 항상 잘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랬다. 나를 너무 믿었던가, 나를 너무 못 믿었던가.
잘 못할 걸 알면서도 해야 하는 일을 마주할 때면, 미루고 미루다 최소한의 노력으로 해치워 버렸다. 못하는 것이 아니라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고 합리화하면서. 시작이 반이라는 데, 그 시작이 참 어려웠다. 엉성한 작업물이 손에서 떠날 때면 아쉬움보다 시원한 마음이 더 컸다. 최선을 다하지 않았기에 아쉬움을 남길 명분도 없었으니. 지레 겁먹기보다 일단 시작하고 후회하는 게 낫다는 걸 이제는 안다. 잘못 붙여진 벽지는 떼고 다시 붙이면 그만이니까.
매 학기 동아리에 새로운 신입 부원이 들어온다. 새로운 사람들과 함께하는 봉사는 더디고, 다치는 사람이 생기기 마련이다. 누구나 공평하게 하나부터 열까지 배워야 한다. 하지만 몇 번의 봉사가 지나고 나면 신입은 그저 함께할 평범한 동아리원이 될 뿐이다. 결국 누구나 공평하게 하나부터 열까지 할 줄 알게 된다. 평범한 사람들이 모여 특별한 일을 해낼 수 있다는 것. 집수리 봉사활동을 끊을 수 없는 마력이다. 모두가 평범하기에 질문이 부끄럽지 않고, 가르침이 부담스럽지 않다. 그저 언제나 배우고, 언제나 가르친다. 그렇게 베테랑 봉사자가 되어갈 때면, “왜 이렇게 했지!” 하고 스스로를 꾸짖는 회개 장터가 된다.
우리는 모두 범인(凡人)이기에, 누구나 범인(犯人)이 될 수 있다. 멀쩡한 벽지를 찢어먹고, 풀을 막걸리 농도로 만들어버려 못 쓰게 만들고, 기껏 챙겨 온 장판 길이가 모자란다. 봉사지 사전 답사와 장비 챙기기, 모든 봉사 준비 과정은 늘 여럿이 함께하는 덕분에 완전 범죄는 불가능하다. 사건의 범인이 공표되고 나면 뒤풀이 자리에서는 물론, 이어지는 봉사에서도 전과범으로 남고 만다. 뭐 때문에 봉사가 늦게 마쳤다더라, 뭘 안 챙겼더라 하면서. 만약 실수를 했다면 그 누가 알아차리기도 전에 몰래 처리해내야만 한다. 들통나지 않을 완전 범죄를 꿈꾸며. 사고를 수습하고, 또 사고를 예방하며 그렇게 성장한다. 내일은 범인이 되지 않으리라 다짐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