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솥밥, 먹고살아요

by 김보경

매번 똑같은 재단, 똑같은 풀칠, 똑같은 도배를 하면서도 봉사지마다 모든 과정이 새롭다. 똑같은 길이의 벽지를 자를 때도 집이 좁으면 벽지를 접어서 잘라야 하고, 짐이 많거나 실내에서 재단이 힘든 집이라면 야외 재단을 해야 한다. 좁디좁은 집에 엉겨가며 재단을 하거나, 30도의 뙤약볕 아래 논 사이에서 재단하거나. 모두 똑같은 봉사지만, 결국 똑같은 날은 하나도 없는 거다. 같은 벽지에 바르는 풀이라도, 계절과 날씨, 그리고 봉사 속도에 맞춰 풀 농도를 조절해야 한다. 이렇듯 봉사의 상황은 시시각각으로 바뀌지만 한 가지 변하지 않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봉사지에서 먹는 점심이었다.


집수리 봉사활동의 꽃이라고도 할 수 있는 집수리 로드는 8박 9일 동안 3개의 지역을 다니며 9개의 집에 희망을 선사하는 뿌듯하고도 힘들었던 여정이다. (8박 9일의 봉사활동이 길게만 느껴지겠지만, 이전 기수들은 무려 14박 15일이었다고 한다..) 다들 로드 얘기를 하면 고생한 만큼 추억들이 쏟아진다. 그날의 햇볕, 그때의 집, 실수.. 하지만 9일의 봉사 중 가장 힘들었던 것은 다름 아닌 내내 똑같은 구성의 점심 도시락이었다.


김치, 콩자반, 양식소스

밥, 생선까스 or 돈까스, 떡갈비


힘든 봉사 중에도 점심시간이 기다려지지 않은 이유다. 9일 동안 똑같은 메뉴를 먹는다는 것은 산해진미를 먹는다고 할지언정 마다할 일이다. 일주일에 한 번 있는 봉사에서 똑같은 메뉴를 먹는 것도 지겨운 일이었는데, 로드 내내 한솥 군단이 된 이후 맞이한 점심시간은 치가 떨렸다. 물론 얼른 먹고 다시 일하기 위해 꾸역꾸역 도시락을 씹기는 하지만 말이다.


고된 봉사를 같이 하는 만큼, 봉사를 함께한 친구들과는 전우애가 쌓이기 마련이다.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도 같이 봉사한 친구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자면, 집의 특징들과 서로의 실수까지 모두 기억하고 있다. 그만큼 매 순간순간의 집에 최선을 다하고, 온 정신을 몰두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집중하다 보니 종종 점심이 뒷전이 되기도 했다. 그렇게 시기를 놓쳐 허겁지겁 먹는 밥은, 질려버린 도시락일지라도 환상의 맛이다.


지금은 함께 웃으며, 땀 흘리며 함께 하는 친구들도 하나 둘 장판길을 떠나 자신의 길을 걸어가겠지. 훗날 봉사의 '봉'자조차 도배의 '도'자조차도 기억하지 못할 때가 와도, 둘러앉아 한솥밥을 먹으며 맡았던 한솥 도시락 냄새는 절대 잊지 못할 것만 같다. 떨어져 있더라도 우리는 함께 한솥밥을 나눠 먹던 전우이자, 가족이었음을 영영 기억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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