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의 변

by 김보경

주말 아침부터 팔자에도 없는 봉사활동을 하노라면 갖가지 변(變)이 닥치기 일쑤다. 지난 6년 간 집수리 봉사를 하면서 마주하는 변은 다음과 같다.


- 장비통 안에 칼심통은 7개가 들어있었지만, 빈통만 챙기고 정작 칼 심은 하나도 없었던 것.

- 도배가 다 끝나고 난 뒤 미닫이문을 닫았는데, 문 뒤에 낡은 벽지가 남아있었던 것.

- 풀을 풀기 위해 필요한 드릴이 고장 나서 손으로 풀을 풀었던 것.

- 여러 종류의 벽지를 챙겨주어, 방마다 색깔이 달라진 것.

- 벽지를 자를 때 필요한 1m짜리 알루미늄 자가 없어서 수혜자분의 빨래판에 대고 벽지를 자른 것.

- 열심히 풀어놓은 풀을 화장실 뒤편에 두고 잊어버려 풀을 다시 사 오게 된 것. 그리고 봉사가 끝나고 풀을 찾은 것.


지난 봉사활동을 떠올려 보면, 문제없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던 봉사가 드물 정도로, 당황스러운 일은 매번 있었다. 하지만 이런저런 일들은 여러 사람의 머리가 모이고 몸이 조금만 더 고생하면 해결할 수 있는 일이다. 가장 큰 변(變)은.. 봉사지에서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봉사의, 봉사자의 변(便)이다. 주거 취약 계층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봉사다 보니, 머릿속에 떠오르는 <깔끔하고, 물이 잘 내려가는 변기가 있는, 문이 잠기는, 휴지가 풍족한> 화장실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화장실의 상태가 깔끔하다고 해도, 풀을 풀거나 장비를 씻으며 봉사자가 오가는 공간에 향을 풍기는 것 또한 아찔한 일이다.


대략 배가 아프기 시작할 때면, 작업 속도가 매우 빨라진다. 특히나 벽지를 재단하거나 풀칠을 할 때면 다리를 쪼그리고 앉는 것이 기본자세. 시간을 지체할수록 수명이 짧아지는 느낌이 든다. 식은땀이 흐르고 칼조차 제대로 들지 않는다.


그렇게 더 이상 참지 못할 때 벌떡 일어나서 집 밖으로 나선다. 여기서 '참지 못할 정도'라 함은 적어도 옆 건물 까지는 갈 힘이 있지만, 낯빛이 적당히 어두워 모두가 빨리 떠나라고 할 때를 말한다. 이 변기를 향한 여정을 떠나는 길목에서는, 거사를 위한 준비물이 필요하다. 보지 않고서도 깔끔한 화장실을 알아보는 면목, 세상에서 제일 선해 보이는 표정과 말투. 힘든 봉사를 하고 있음을 티 낼 수 있는 풀 묻은 옷, 그리고 봉사자의 표식 조끼까지.


순전히 친구들이, 그리고 이 봉사활동이 좋아서 하는 일이었기에, 스스로 좋은 일을 하고 있다는 자각을 하고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 순간만큼 ‘내가 좋은 일을 하고 있구나’ 깨달을 때는 없다. 100이면 100의 확률로 화장실로 가는 직행 코스를 알려주시는 귀인 분들의 뒤에 비치는 후광을 볼 수 있다. 이렇게 큰 봉사의 변(便)을 해치우고 나면, 가벼운 발걸음으로 어떠한 봉사의 변(變)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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