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베인지도 모르는 사이에 흐르고 있는 피,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이마를 적시는 땀, 그리고 의도치 않게 흘려버린 눈물이 내가 스쳐 간 집들에 스며있다. '봉사짬'이 차는 만큼 횟수도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봉사 지는 다칠 곳 투성이다. 날카로운 가위와 칼, 언제부터 자리했는지 모를 나사못, 미끄러운 풀 바닥, 천장을 도배하기 위해 사용하는 우마 사다리. 그리고 이 모든 것보다 가장 큰 천적, 벽지!
우리 집수리 봉사의 시작인 밑작업과 재단. 벽지 재단을 빨리 마쳐야 일이 진행될 수 있다는 생각에 재단은 늘 서두르게 된다. 손을 급하게 놀리는 만큼, 마음도 급해진다. 그러다 보니 일을 할 때는 상처를 의식하지 못하다가, 벽지에 묻어 나오는 피를 볼 때가 되고서나 적신호를 발견한다. 참 이상한 것이, 아픈 줄도 모르던 상처는 발견하자마자 급격히 아파온다는 거다. 풀과 실리콘, 본드로 고치가 되어버린 손은 상처를 찾기 더욱 어렵다. 일을 해냈다고 생각하며 손을 씻을 때 깨닫는다. 물이 닿는 순간 숨길 수 없는 따가움!
오늘은 안 다치고 넘어가나 했다.
8박 9일 집수리 로드를 갔을 때도 엄청나게 다쳤다. 그것도 모든 손가락을! 우리 조의 유일한 '재단 경력직'이라는 이유로, 9일 내내 재단은 내 몫이었다. 평소 봉사보다 벽지 수도 많고, 집 난이도도 어려웠다. 거기다가 마감 시간도 급박하다 보니 손가락을 내주는 건 예삿일이었다. 그러다가 아주 바보 같은 일로 오른손을 모두 내어줬다. 맨땅에 헤딩도 아닌, 애꿎은 '맨땅에 주먹질'. 벽지가 잘 붙지 않는 나무나 구멍을 메우는 데 사용하는 실리콘 입구를 칼로 자르다가, 힘 조절을 잊은 채 콘크리트 바닥을 내려쳤다. 아픔이 곧장 올라오는 동안 그런 생각을 했다.
"나.. 힘만 센 바보였나?"
9일 동안 열 손가락. 그렇게 조장이 챙겨 온 100개의 예비 밴드는 고스란히 내 몫이 됐다.
여름 중 가장 더운 날, 한국에서도 가장 더운 곳을 찾아 봉사를 다니다 보니, 땀을 흘리는 건 기본이었다. 평소 봉사를 할 때는 앞머리를 필사적으로 사수했기 때문에, 선크림은 항상 눈썹 밑으로만 발랐었다. 대참사가 다가올 것은 알지 못한 채.. 쏟아지는 땀과 햇볕에 앞머리를 옆으로 넘겨 버리고는, 뙤약볕을 그대로 맞아버렸다. 그렇게 5일 차가 지난 뒤에는 이마만 새까맣게 그을렸다. 햇볕에 타지 않으려고 선크림을 바르고, 쿨토시를 하고.. 그런 발악의 결과는 결국 웃기게 살을 태운 것. 9일이 지난 뒤에 까맣게 된 것은 이마와 재단을 할 때 쓰는 오른손뿐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우습기도 하지만, 조장을 맡고부터는 그렇게나 눈물이 많아졌다. 잘하고 싶다는 책임감 때문일지, 잘 끝내지 못했다는 죄책감 때문일지. 8명의 조원이 내 판단 하에 움직인다는 게 부담스러웠다. 어영부영 봉사를 끝내고 나서 술을 먹을 때면 눈물이 났다. 힘들기도 힘들었고, 잘 끝내지 못한 것 같아서. 그렇게 몇 날 며칠 눈물을 흘리고 나니 의연해졌다. 잘하려는 강박 없이도 충분했다는 것을 알았고, 우리 봉사는 잘하지 않아도 의미 있다는 걸 알았다. '피, 땀, 눈물' 없이도 봉사는 어떻게든 끝나겠지만, 잘 끝내고 싶은 마음은 여전히 내 피, 땀, 눈물을 쏟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