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회, 간부, 운영진을 통틀어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이어온 완장 생활. 모르는 사람들에게 말 걸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게 되었다. 노력하지 않아도 n 가지의 스몰토크 주제가 머릿속에 탑재되어 있고, 한 번 물꼬를 트면 온갖 주제로 이야기를 뻗어갈 수 있다. 순전히 분위기를 풀어주기 위해 시작한 말 걸기는 아니었다. 구석에서 아무도 울게 두지 않기 위해 둥글게 만들어졌다는 지구처럼, 혼자 있는 사람을 잘 보지 못했던 '관심 줌자'로 살아온 탓이다.
짝지가 바뀔 때마다 새로운 친구를 무리에 끼곤 했고, 내 친구 무리 인원은 14명을 웃돌곤 했다. 그때는 몰랐고 지금은 아는 사실은, 내가 그들의 성벽이 허물어지는 순간을 사랑했다는 것. 떠들썩한 친구들의 활발함을 좋아하지만, 쉬이 자신의 곁을 내주지 않는 친구들의 곁에 다가가는 순간은 사랑했다. 누군가의 페이지라도 펼쳐보고 싶었고, 그의 역사를 톺아보며 공통점을 반겼고, 차이점에 신선함을 느꼈다.
마지막-이라는 핑계로, 연말이면 친구들에게 롤링 페이퍼 콘텐츠를 강요했다. '평소에 잘 표현해서 할 말 없는데' 하던 친구들도 펜을 드는 순간 진지한 표정의 얼굴을 하고, 진지하지 않은 포즈로 일필휘지 글을 써 내린다. 언젠가 한 번은 그런 문장을 받았다. '처음에 왔을 때 낯을 많이 가렸어, 어쩌면 말 한마디 걸어줬던 게 계속 동아리에 나온 이유인 거 같아.' 그때의 한마디가 대단했을 리는 없었을 거다.
나의 한마디는 한 문장으로 돌아와 두고두고 꺼내 볼 작은 낙원이 되었다. 타인의 성벽 허물기는 이제 내 전공이기도 하지만, 기꺼이 무장해제 해준 사람들의 애정은 여전히 귀히 여기고 있다. 언제까지나 그 성 속에 살 수 있도록 웃음과 따스함을 월세로 답례를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