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봉사활동을 시작했을 때, 나는 어떠한 기술도 제대로 알지 못했다. 어떤 업무든 처음에는 ‘뚝딱거리기’ 마련이라는 것도 몰랐다. "처음에 나는 이 일과는 적성이 맞지 않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참 바보 같은 걱정이었다. ‘적성에 맞다’라는 말도 이제는 와닿지가 않는다. 세상 어떤 사람도 자기의 적성에 맞는 일을 찾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그저 나의 적성에 맞을 때까지 Just do it 하는 법밖에는 모르는 지금. 잘하려고 발버둥 쳤던 내가, 잘 도배한 벽 하나에 일희 하며, 어려운 천장 하나에 일비 하던 그런 내가, 가엽고 기껍다.
그 모든 벽이 있었기에 방 하나를 혼자 해내는 내가 되었고, 그 모든 실수가 있었기에 실수하지 않는 방법을 아는 내가 있다. 어떤 기술도 자신 없던 나는, 이제 모든 도배 과정의 박애주의자가 되었다. 풀칠을 하며 뻐근해지는 어깨를 사랑하고, 깔끔히 발려진 벽지의 팽팽함에 기뻐하고, 더러워진 손을 보며 뿌듯하고, 감사함을 느끼는 수혜자의 얼굴에 감격한다.
힘들고, 잔뜩 더러워지는 이 일을 사랑했던 이유는 단순하다. 일을 이겨낸 나를 사랑했고, 함께 하는 친구를 사랑했다. 그렇기에 나는 여전히 어떤 일이든 사랑하고, 일을 사랑하는 나를 다시 사랑한다. 무언가를 사랑하는 일은 내게 아주 쉬웠다. 순간에 취하고, 오늘을 사랑하며, 내일을 기대하는 게, 내 일이었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힘이 언제나 날 움직인다. 힘듦에도 불구하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해냈기에. 그럼에도 사랑하기에. 그렇기에 봉사하는 우릴 보며 '좋은 일 한다'는 주위의 반응에 동의하면서도 부정한다. 사실 이 모든 활동은 ‘나에게’ 좋은 일일 뿐이다.
사실 어떤 일이든 좋아할 준비가 되어있는 내게, 집수리가 아니었다면, 봉사가 아니었다면, AweSome이 아니었다면. 그런 생각이 든다. 이토록 과몰입할 수 있었을까? 펜을 들어 이 모든 순간을 써 내렸을까? 필연처럼 운명처럼 내게 친구들과 맞닿았으며, 모든 친구들에게 ‘최애 친구’라고 말하곤 했음을 이제야 고백한다. 나는 모든 순간과 스쳐간 사람들을 사랑했던 박애주의자로소이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