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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보영 Apr 15. 2018

너희들 세상의 조연

이왕이면 따뜻한 어른이 되고 싶다




새 학기 첫 수업 날이었다. 가로로 긴 단층 건물, 한 학년이 한 반뿐인 작은 학교다. 복도 천장이 낮아 내가 거인이 된 것 같은 느낌도 든다. 봄기운이 바람을 타고 찾아온 교정 여기저기에서 통통 튀는 아이들 소리가 들린다. 나는 작년부터 이 학교에서 글 쓰기와 책 읽기 수업을 해왔다. 학교에 오면 언제나 깨끗하고 환한 힘을 새로 받는 기분이 든다. 특히 새학기를 맞은 학교는 그 자체만으로 커다란 생명체 같다. 긴 잠에서 깬 뒤 봄을 호흡하며 왁자지껄 노래하는 건축물. 그 안으로 출근할 때마다 기분이 좋다.


 


지난 겨울의 교정과 딸아이





그럼에도 수업에 임하는 마음은 사실 좀 복잡하다. 재미있게 이끌어야 하지만 그렇다고 호락호락해 보이면 안 된다. 따뜻한 말로 시간을 채우고 싶지만 분위기를 흐리는 학생에겐 단호해야 한다. 함부로 아이를 평가하고 싶지 않지만 학교 수업에는 평가가 꼭 필요하다. 아이들은 사랑스럽고 소중하지만 순식간에 내 속을 벅벅 긁어놓기도 한다. 엄중한 기준과 포용력 있는 태도 사이의 균형을 나는 여전히 배우고 있다.



첫 수업에는 대체로 엄하게 말하는 편이다. 우리가 앞으로 재미있게 수업을 하려면 서로 어떤 약속을 지켜야 하는지 이야기 해준다. 그리고 주의를 줄 때는 웃음기 없이 눈을 똑바로 응시하고 배에 힘을 주어 굵고 강한 목소리로 말한다.

그날도 그랬다. 방금 전까지 밖에서 뛰어놀던 2학년 아이들이 모여들었다. 당연히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그날은 교실 바닥에 돗자리를 깔고 동그랗게 앉았는데 역시 몸을 비틀며 바닥을 긁고 몇몇은 드러눕기까지 했다. 몇 번 주의를 주어도 금방 자기들끼리 낄낄 웃으며 장난을 친다. 그대로 둘 수 없어 결국 누웠던 아이들을 일으켜 그 자리에 세웠다.

쭈뼛거리며 선 2학년 영욱(가명)이는 이미 학교에서 유명한 말썽꾸러기다. 어떤 지시가 있어도 잘 따르지 않는다. 잠시 눈치를 볼뿐, 슬금슬금 몸을 움직이고 소리를 내며 보란 듯이 통제를 벗어난다. 이번에는 몸을 굽혔다 펴고 다리를 벌리며 왔다 갔다 움직이기에 결국 교실 뒤에 세웠다.



3분 정도 뒤에 부드럽게 말을 건넸다.

"영욱아, 바른 자세로 앉을 수 있겠니?"

그랬더니 아주 착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금세 들어와 앉는다.

아무리 장난꾸러기들이라 해도 그림책을 읽는 동안에는 신기하게 잘 집중한다. 사실 이 맛에 수업을 한다. 장난꾸러기 영욱이도 숨죽인 채 흥미롭게 이야기를 따라왔다. 감상을 나누며 분위기가 어느 정도 잡혔다고 생각했을 때 영욱이가 곤란한 얼굴을 보였다.

"저, 화장실 좀..."

10분 뒤면 수업이 끝난다. 조금만 참을 수 있는지 물었는데 표정이 좋지 않았다.

"그래. 1분 내로 얼른 다녀와!"

아이는 자기 책가방을 무겁다는 듯 질질 끌고 나갔다. 가방이 무거워서 이따 갖고 나가기 편하게 미리 문가에 놓는 것이라고 했다. 그때 눈치챘어야 했는데 다른 아이들이 흐트러지기 전에 곧바로 수업에 몰입하느라 눈여겨보지 못했다.



5분이 지나도 영욱이가 돌아오지 않았다. 뭔가 이상한데? 문제가 생긴 건 아닌지 걱정이 되어 문가를 봤더니, 세상에! 가방이 보이지 않는다. 아이들이 저마다 자기 생각을 말한다.

"도망친 거예요."

"걔 아까부터 수업 오기 싫어했어요."

"놀이터에 갔을 거예요. 잡아올까요?"

창문 너머를 보니 가방을 멘 영욱이가 환희에 찬 얼굴로 웃으며 뛰어간다.


당했다.



이제 와서 수업을 관두고 아이를 잡으러 나갈 수도 없고, 누군가를 시켜서 데려오라고 내보낼 수도 없다. 이 학교는 주택가와 거리가 멀어서 부모님이 데리러 오시거나 스쿨버스를 타야 하교할 수 있다. 그전까지 아이들은 운동장과 놀이터에서 뛰어논다. 교문에는 지킴이 봉사자 분이 계시니 괜찮을 것이다. 기가 막혀서 자꾸 헛웃음이 나오려는 걸 애써 참아가며 소란한 아이들을 진정시키고 수업을 마무리했다.



매일매일 장난치며 놀고만 싶은 나이. 통제 같은 건 보란 듯이 무시하면서 신나게 공을 차고 모래를 뿌리고 싶은 아이의 마음을 생각해 보았다.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면서 기똥차게 말대답을 하고 혼이 쏙 빠지게 뛰어노는 삐삐 롱스타킹이 떠올랐다. 나는 삐삐의 심정으로 그 책을 읽으며 해방감을 느꼈지만, 현실의 나는 삐삐에게 된통 당하는 학교 선생님이 된 것 같았다. 동화의 독자로서 주인공 아이에게 감정이입을 해서 그런지 조연으로 밀려난 걸 실감하지 못했던 것 같다. 정신이 확 들었다. '보호자', '관리자', '감독자', '교육자'처럼 딱딱하고 재미없고 정이 안 가는 이름들이 이제 내 것이다. 역할이 정해졌다면 어떤 색깔과 온도로 그것을 감당할지 선택할 수 있다. 나는 이왕이면 괜찮은 조연, 따뜻한 어른이 되고 싶었다.



수업을 마치고 놀이터에 가니 과연 영욱이는 놀이터가 제자리인 듯 잘 놀고 있었다. 본성을 꾹꾹 누르며 4교시까지 참았는데 방과 후 수업이라며 또 앉아 있으려니 힘들었겠다. 이해는 하지만 그래도 이러면 안 되지. 나는 영욱이에게 다가가 말을 건넸다.

"너 화장실 간다며? 거짓말했던 거야?"

"아니, 화장실 진짜로 갔다 왔어요. 근데..."

말을 잇지 못하는 걸 보니 변명거리는 미처 준비하지 못한 것 같다. 나는 원칙을 말했다.

"어머니께 말씀드릴 거야."

그러자 갑자기 영욱이의 눈이 번쩍 빛나더니 이내 약 올리는 표정으로 바뀐다.

"에이, 저희 엄마 번호 모르잖아요."

"허! 다 알거든?"

나는 천천히 돌아섰다. '그럼 말해봐요!' '나한테 보여줘 봐요!' 같은 말들이 등 뒤로 들렸지만 안 들리는 척하고 걸었다. 이 정도면 '일 대 일' 상황으로 만든 것 같았다.  




일주일 뒤. 다시 만난 영욱이는 아주 밝은 얼굴로 말했다.

"엄마가 하기 싫은 방과후는 빼도 된대요. 그래서 이제 컴퓨터랑 미술만 하기로 했어요!"

 



일 대 일이라니 꿈도 컸지. 내가 졌다. 조연이 거기서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나. 저 아이의 삶에서 아마 나는 엑스트라, 그러니까 '선생 11' 같은 역할에 불과할 것이다. 아이들의 인생에 뭔가 큰 영향력을 주고 싶다거나 거창한 의미를 남기고 싶은 욕심이 아주 없던 것은 아니지만 이제 바뀌었다. 요즘은 총천연색으로 가득한 아이들의 세계에서 그저 눈에 잘 띄지 않는 가는 회색 기둥 정도가 되고 싶다. 튀어 오르는 빛깔들이 쉬 무너지지 않도록 얄팍한 힘이라도 지탱해주는 존재. 책이 얼마나 재미있는지 알려주는 조연. 함부로 삶에 끼어들지 않되, 언제든 마음을 열게 하는 넉넉한 그림책을 보여주며 적절히 질문하는 사람이 되려고 나는 내일 또 학교에 간다.





1학년 학생들이 책을 읽고 그린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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