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보영 May 27. 2019

'슬럼프'가 기억나지 않는 슬럼프

 뭐라도 쓰자는 마음으로

참 이상하지.



기록에 남길 만한 부침을 겪는 중이다. 도무지 글을  쓰겠더라. 지금  문장도  번이나 고치고 지우며 이어가는 것이다. 남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보통 나의 ‘자기 검열 마치 요정 같은 존재가 모기처럼 따라붙으며 종알거리는 톤으로 들리곤 했는데, 요즘은 삼인조 대법관이 지엄한 목소리로 꾸짖는  같다. 마흔이 코앞이면서 여전히 스스로 대법관을 만들고 스스로에게 혼난다는  놀라울 따름이다. 글을 쓰다 말고 지우기를  차례. 도망치는 정신을 붙들기 위해 아침에 몸을 볼모 삼아 노트북 앞에 앉히고 생각의 흐름대로 우다다  장을 채웠다.  유의미한 헛소리였다...



요즘은 단어가 딱딱 떠오르지 않는다. 사실 맨 앞에 ‘부침’이라고 쓴 것은 '그 영어 단어'가 생각나지 않았기 때문...까지 쓰다가 지금 떠올랐다. 슬럼프!! 슬럼프라는 단어가 기억나지 않아서 슬럼프라고 쓸 수 없는 슬럼프를 겪다니. 지독한 슬럼프의 트랩에 걸린 기분이 들어 슬퍼진다.



무기력은 무능력을 데리고 오는지, 하루 동안 식칼에 손등을 살짝 베었고 칫솔에 폼 클렌져를 짰고 한밤중에 인이어 낀 채 피아노를 꽝꽝 치다가 스피커에도 동시 출력이 됐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이럴 때마다 내 무능력을 맹비난하거나 지나치게 불쌍히 여기고 싶어 몸이 단다. 그렇지만 나는 오늘 무려 [김밥]을 잔뜩 만들어서 가족과 친구들과 나누어 먹으며 능력자로 한껏 칭송받았다. 김밥 앞에서는 삼인조 대법관도 군침만 삼켰는지 조용했다. 글에 대한 칭찬은 흘려들으면서 김밥에 대한 칭찬은 온몸으로 흡수한 나도 솔직히 잘못하긴 했다. 능력은 외부의 평가에서 오는 게 아니거늘. 올라갔다 내려갔다 널뛰기하는 자신감에 대해 상상해본다. (그런데 너 지금 누구랑 널뛰는 거니?)



내가 노벨문학상을 타길 애타게 기다리시는 아빠가 내 독립출판물을 사러 인천의 북극서점에 가겠다고 하셨다. 그것을 읽고 아빠는 꿈을 접으실까, 아니면 확장하실까. 성인이 된 후 느낀 가장 강력한 충동은 아빠를 반하는 것이었다. 그 책이 아빠의 반대편에 있기를 내심 바라는 중이다. 아빠와 나 사이에서 경계를 발견하시면 좋겠다. 꼬깃한 꿈을 당신 쪽으로 불러들이면 좋겠다.



요즘 작가가 무엇인지 자주 생각했다. 문학을 전공하고 운 좋게 등단도 하고 책도 몇 권 냈으면서 여전히 작가가 되길 바라는 마음을 발견했기 때문. 생각이 여러 갈래로 흩어져 뻗어갔다가 되돌아왔다. 그리고 “쓰는 사람이 작가”라고 알려주었다. 그래서 쓴다. 맞는 단어가 도무지 기억나지 않는 이 상태 그대로. 지긋지긋한 무기력을 김밥에 돌돌 말아버린 날을 기념하면서. 슬럼프는 이제 좀 슬렁슬렁 떠나가 주길.










뭘 쓰려고 해도 잘 풀리지 않아서 '잘 풀리지 않음'에 대해 일단 써보았습니다. 덕분에 오랜만에 업로드하네요.

글에서 언급한 김에 제가 최근 출간한 독립출판물을 소개합니다. (사실 출간한 지 두 달쯤 되었습니다.)


아무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지만 동시에 누구에게라도 보이고 싶은 그런 조심스러운 창작물이 있잖아요. 제게도 있거든요. 직접 쓴 시, 기묘한 꿈 이야기, 만화 같은 것들이요.

믿을 수 있는 친구와 학예회를 하며 온전한 내 편이 주는 격려와 박수를 경험한 뒤로 그것이 너무 좋아 학예회 형식으로 책을 만들었습니다.

저의 빛과 그림자를 이 작은 책에 담으며 즐겁고 괴로웠답니다. 하나에서 열까지 혼자 해내야 했으니까요. 어찌 보면 독립출판 제작 과정 자체가 하나의 외로운 학예회 같기도 합니다.

흥미를 느끼셨다면 아래 링크를 눌러 참고해보세요. (초판 한정) 행운권 추첨 번호까지 들어있습니다.



https://smartstore.naver.com/justorage/products/4466965422



제주에서 북 토크와 '나만의 노래 만들기' 소규모 워크숍도 진행했어요! 놀이공원 다녀온 것처럼 설레고 신나면서도 몸이 축나는(!) 시간이었지요. 정말 행복했어요. 서점 대표님이 글에 써주신 <'엄숙하고 유쾌한' 그림자들의 친구>라는 표현이 마음에 쏙 듭니다. 당분간 이 말에 기대어 눕고 싶네요.


https://blog.naver.com/untitledbookshop/221545414486







입고된 서점입니다.



제주 '무명서점'https://www.instagram.com/p/BwoB7pJl1BD/?igshid=1tuy5p79h8rcr


인천 '북극서점' https://www.instagram.com/p/BwjKWdClyT6/?igshid=132ge0vyxsoe6


서울 '스토리지북앤필름' https://www.instagram.com/p/BxjlV9kjYKW/?igshid=izah89ju0584



매거진의 이전글 아이의 용서를 받는 부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