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레의 가출> -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아이로 살아가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울 것 같다.
갓 태어나 옹알이하는 아기에게는 누구나 방긋 웃으며 말을 붙인다. 그러다 말문이 트이기라도 하면 엄청난 칭찬과 관심을 한 몸에 받는다. 하지만 말이 완전히 트여 온갖 참견과 질문이 늘어나면 반응이 완전히 뒤바뀐다.
쉿! 조용히 해! 나 좀 조용히 있고 싶어. 응?
아기가 스스로 뭘 집으려고 하면 부모는 신이 난다. 숟가락으로 혼자 이유식을 떠먹으면 감탄을 한다. 손가락 근육 발달을 위해 작은 장난감도 산다. 그러다가 아이가 주변 환경에 무한한(정말 무한하고 에너지 넘치는) 호기심과 관심을 보이며 집안 살림을 하나하나 정복해 가면 또 상황이 바뀐다.
안 돼! 만지지 마! 건들기만 해 봐. 그러다 깨져! 그러다 다쳐!
처음에는 아이가 성장하며 스스로 뭔가를 성취하는 것이 기쁘지만, 이제 슬슬 질서를 깨뜨린다는 생각이 들면 잔소리가 저절로 나오기 마련이다. 잔소리는 일종의 가이드라고 볼 수 있겠으나 아이의 입장에서는 이런 건 하지 말아라, 저기로 가면 안 된다, 그걸 만지면 아저씨가 '이놈'하실 거다 같은 레퍼토리의 반복.
어디선가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부모도 아이의 말썽과 투정과 어리숙함을 인내하며 용서하지만, 아이는 그보다 훨씬 더 자주 부모를 용서한다고. 그래야 사랑과 안정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이 역시 부모를 엄청나게 사랑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부모와 자식 관계도 사람과 사람의 일이다. 허물은 양측 모두에게 있고, 관용도 마찬가지다. 끊임없는 제한과 꾸중, 훈육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상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아이는 본능적으로 부모를 용서하고 관계를 지켜나간다.
어린 시절, 만일 강요나 강압이 아닌 아량과 관용으로 나를 대하는 어른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그 누군가가 나로 하여금 용서하는 법을 배우도록 천천히 기다려 주었다면 얼마나 따뜻했을까? 나는 그런 어른이 되어가고 있나? 생각해 본다.
<펠레의 가출>의 주인공 펠레는 오늘 아침 일어난 일로 무지무지 화가 났다. 얼마나 화가 났는지 집을 나가버릴 생각까지 했다. 대체 무슨 일이냐고?
"펠레, 너 또 내 만년필 가져갔지?”
아빠는 펠레의 팔을 꽉 붙들고서 물었습니다. 펠레가 가끔 아빠 만년필을 빌려 간 적은 있었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아니었어요. 만년필은 옷장에 걸린 아빠의 갈색 윗도리 안에 꽂혀 있었지요. 펠레는 아무 잘못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아빠는 펠레의 팔을 그렇게 꽉 붙잡았던 겁니다. 엄마는요? 물론 아빠 편이었죠. 이젠 끝이에요! 펠레는 집을 나갈 생각이었답니다.
평소 전적(!)이 많은 말썽쟁이 아이는 꼭 이럴 때 가장 먼저 오해를 받는다. 하지만 펠레는 무고했고, 그래서 더욱 억울했다. 게다가 엄마도 내 편이 아니다. 펠레는 집을 나가 어디로 갈지 고민하다가 마당에 있는 '하트 하우스'에서 지내기로 마음 먹는다. 원래는 아프리카에 가고 싶었지만 거긴 너무 머니까!
하트 하우스는 문에 하트가 그려진 아주 작은 집이다. 아마도 아이의 놀이용으로 갖다놓은 오두막일 것이다. 펠레는 평소 아끼던 공, 하모니카, ‘산딸기 숲속의 한스’라는 책, 그리고 양초 하나를 챙긴다. 이틀 뒤 크리스마스에 펠레는 하트의 집에서 혼자 양초에 불을 붙여 축하 파티를 할 생각이다. 하트 하우스에 있으면 집 안이 들여다 보이기 때문에 엄마가 얼마나 근심하고 슬퍼하는지 지켜볼 수 있다.
펠레는 가방을 들고 엄마가 계신 부엌을 굳이 통과해서 나간다. 엄마가 벌써 놀러나가냐 물어도 대답하지 않는다. 엄마는 펠레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는 걸 발견하고 걱정스레 묻는다.
“펠레, 얘, 왜 그러니? 어디 가는 거야?”
“이사가는 거예요.”
“어디로?”
“하트의 집으로요.”
펠레가 말했습니다.
“펠레, 너 진심은 아니겠지! 거기서 얼마나 오래 살 건데?”
“영원히요.”
그러면서 펠레는 문손잡이를 잡았습니다.
“이제 아빠는 고물 만년필이 없어지면 누구 다른 사람을 야단치셔야 할 거예요.”
사태를 파악한 엄마는 펠레를 꼭 안아주면서 가지 말라고 부탁한다. 우리(아빠와 엄마)가 잘못도 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널 무척 사랑한다고 고백도 해 준다. 그래도 펠레는 화가 풀리지 않는다. 펠레는 엄마를 뿌리치고 꿋꿋이 마당에 나가 기어이 하트 하우스에 자리를 잡는다.
처음에는 아늑하고 좋았다. 부엌에 있는 엄마에게 들리도록 이따금 하모니카로 ‘이제는 안녕, 내 사랑하는 고향’이란 곡을 연주하기도 한다. 펠레는 크리스마스가 와도 집에 돌아가지 않을 생각이다. 선물을 받지 못한다는 건 아쉽지만, 자기에게 억울한 누명을 씌운 사람들에게 선물을 받다니! 당치도 않은 소리다.
시간은 느리게 흘러가고 펠레도 바깥 사정이 궁금해진다. 부모님이 슬퍼하며 울고 있진 않을까? 당당히 가출을 선언하고 나왔으니 집에 들어가 보려면 명분이 필요할 것이다.
펠레는 재빨리 문을 열고, 마당을 가로질러 집으로 들어가는 계단을 걸어 올라, 아니, 뛰어 올라갔습니다. 엄마는 아직도 부엌에 있었습니다.
“엄마.”
펠레가 말했습니다.
“나한테 크리스마스 카드가 오면 우체부 아저씨한테 내가 이사갔다고 얘기해 주실래요?”
이 정도면 훌륭한 명분이다. 펠레는 엄마의 승낙을 듣고 다시 마당 쪽으로 돌아서지만, 발걸음이 천근만근 무겁게 느껴진다. 엄마가 자기를 붙잡아주길 기다리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때 엄마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펠레를 부른다. 크리스마스 선물은 어떻게 할 거냐고. 펠레는 단호히 거절하고, 엄마는 아주 슬픈 목소리로 말한다.
"오, 펠레, 정말 슬픈 크리스마스 이브가 되겠구나. 크리스마스 트리의 양초에 불 붙여 줄 펠레도 없고, 산타 할아버지에게 문 열어 줄 펠레도 없고… 펠레가 없으니 모든 게…….”
엄마가 말했습니다.
“다른 아이를 데려오면 되잖아요.”
펠레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절대로 안 되지!”
엄마가 말했습니다.
“펠레 아니면 누구도 안 돼! 우리가 펠레를 얼마나 사랑하는데.”
엄마는 부드러운 말로 펠레의 마음을 녹여준다. 장난치지 말고 당장 집에 들어오라며 강요하지 않는다. 혹은 '그래 그래 미안했다' 정도의 말로 섣불리 화해를 시도하지도 않는다. 누구보다 엄마 아빠를 사랑하는 펠레는 엄마의 말에 마음이 흔들린다. 사실 깊은 속마음은 그렇지 않으니까. 따뜻한 집에 돌아와서 부모님과 함께 크리스마스를 맞이하고 싶으니까. 게다가 엄마는 펠레보다 더 속상해 하며 슬퍼하고 있지 않은가.
“아빠랑 나는 여기 앉아서 크리스마스 이브 내내 울 거야. 촛불도 하나도 안 켤 거야. 우리는 펑펑 울 거야.”
그러자 펠레도 부엌문에 머리를 기대고 울었습니다. 가슴이 찢어지는 듯, 아주 큰 소리로, 뼈에 사무치듯 흐느꼈지요. 아주 서럽게 말이에요! 엄마 아빠가 너무 불쌍했거든요. 엄마가 껴안자 펠레는 엄마 목에 얼굴을 파묻고 더 많이, 더 크게 울었습니다. 그 통에 엄마는 흠뻑 젖어 버렸죠.
펠레 없는 크리스마스를 맞이할 엄마 아빠를 생각하니 펠레는 비로소 진정으로 마음이 녹는다. 엄마 아빠가 너무 불쌍하니까! 그리고 흐느끼는 사이 사이 몇 번이고 말한다.
용서해 드릴게요
엄마는 고맙다며 안아준다.
이 글을 쓴 린드그렌은 정작 억압과 폭력으로 얼룩진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하지만 성인이 되어 동화를 쓰면서 그 때의 꼬마, 자기 자신을 데려왔다. 그리고 상처 받았던 어린 자신에게 이번에는 아주 따뜻한 말들을 들려준 것이다. 아이가 충분히 화 낼 수 있도록, 그리고 스스로 화를 풀고 돌아오도록 기다려 주는 용납의 목소리.
우리 모두에겐 이런 목소리가 필요하다.
나도 펠레가 되어 이야기 속의 목소리를 듣는다.
그래, 화가 많이 났구나.
너는 나에게 소중한 존재야.
나를 용서해 주겠니?
용납을 받고 또 배웠으니 이제부터 나도 좀 더 넓은 어른이 될 수 있을까?
아이의 용서를 받을 수 있는 부모가 되고 싶다.
'삐삐 롱스타킹' 시리즈의 작가로 유명한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단편집 <난 뭐든지 할 수 있어>(창작과비평사, 2010)에 수록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