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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보영 Nov 07. 2021

오늘도 소오름!

‘근데 있잖아’가 이끄는 편지


단늘 작가와 교환편지 매거진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아래 링크 게시글에 이은 답장입니다 :)


https://brunch.co.kr/@joyswife/86







아이 재우다 같이 잠들고는 악몽을 꾸다가 번뜩 잠이 깼어. 여전히 떨리는 손을 더듬어 습관처럼 휴대전화를 찾았지. 그리고 눈을 찡그리고 잠금화면 알림창을 보는 순간, 마음이 스르르 풀어졌어. 네게 메시지가 와 있었거든. 찬찬히 일어나 작업실 불을 켜고 네가 먼저 보내준 편지를 열었어. 한 줄 한 줄 읽어 내려가니 악몽의 기억은 연기처럼 희미해지고 조금씩 웃게 되더라고. 답신에 넣고 싶은 말들이 쑥쑥 떠올라서 어서 대답하고 수다 떨고 싶은 마음에 후다닥 컴퓨터를 켰어. 대충 자고 일어나 찌뿌둥하고 나쁜 꿈에 등골이 오싹했던 조금 전의 나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어, 네 편지 덕분에.





우리의 대화에는 항상 ‘소오름!’ 포인트가 있잖아. 서로가 연결된 지점을 발견할 때 말이야. 오늘은 일단 제목부터 ‘소오름’이었어. 왜냐하면, (놀라지 마) 나 아까 ‘크리스마스를 생각하니 벌써 설렌다. 올해에는 꼭 트리를 세워놓고 싶은데 할 수 있을까?’라고 말했었어!! 상대가 먼저 물어본 것도 아니고 그냥 차 타고 가다가 혼자 문득 생각나서 먼저 꺼낸 말이야. 꽤 유의미한 순간이었어. 평소 나는 크리스마스를 적극적으로 기다리거나 뭔가 꾸며볼 계획을 세우는 편은 아니거든. 정말 오늘따라 그런 마음이 들었던 거야.


그러니까, 네가 나에게 <미리 크리스마스>라는 글을 쓰며 트리를 닮은 나무에 대해 적고 있을 때 나는 크리스마스트리를 떠올리며 누군가에게 얘기를 꺼냈던 거야. 저녁 9시에 말이지.

어때? 이 정도면 너도 ‘소오름’ 돋았을 거라고 나는 확신해.



트리를 세워놓고 싶다고 말한 건, 그동안 집에 제대로 된 트리를 놓아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야. 보통은 벽에 거는 장식을 사용했거든. 아, 여기에도 너와 관련된 기억이 있어. 너의 예전 집에 놀러 갔었을 때 네가 앵두 전구를 벽에 트리 모양으로 달아놓은 게 어찌나 돋보이고 예뻐 보이던지 나도 집에 와서 냉큼 따라 했었거든. 하지만 너처럼 센스 있게 달지는 못하고 진짜 우스운 모양새가 됐어. 매년 새로 시도해봐도 만족스럽도록 예뻐 보인 적은 없었어. 난 손재주가 꽝인 것 같아.





네 편지를 읽고 나도 생각해 봤어. 제주에서 크리스마스트리 닮은 나무를 봤었나? 아마 있을 거야. 많을 거구. 하지만 트리는 내 관심사가 아니었고 설령 그런 나무를 봤다고 해도 ‘음, 저 나무는 꼭 크리스마스트리 같네?’ 생각만 하고 금방 잊었을 거야.


근데 있잖아, 이제는 달라. 너와 트리에 대해 이야기를 한 이후의 나는 앞으로 나무들을 눈여겨보게 될 거야. 숲을 지날 때, 혹은 너른 들판에서 뛰놀다가 문득 나무들의 생김새를 의식하고 관찰할 거야. 그러다 정말 크리스마스트리 모양으로 생긴 나무를 발견하면 씩 웃으면서 사진을 찍겠지. 그걸 너에게 전송하며 첨언은 하지 않을 거야. 너는 내가 보낸 사진만 봐도 바로 알아챌 테니까. 그렇게 우리 사이에 ‘트리’는 새로운 의미를 가질 거야. 사계절의 어느 때라도 우리는 동시에 아주 잠깐 크리스마스에 머무를 거야. 그 순간이 크리스마스보다 더 설렌다고 한다면 믿을 수 있겠니?




우리가 실제로 만나는 건 많아야 일 년에 한두 번이지. 이미 지난여름에 만났으니 다음은 언제일지 기약하기 어렵겠고. 하지만 그럼에도 다음번을 생각해 봤어. 다음에 너를 만나면 꼭 공원을 산책하고 싶어. 그리고 되도록 솜사탕을 간식으로 먹고 싶어. 요즘에는 편의점에서도 솜사탕을 판다? 밀도 높은 솜사탕을 컵 모양 용기에 담아 파는 건데, 이런 게 있다는 걸 나도 최근에 알게 됐어. 우리 집 6세 사람이 솜사탕을 너무 좋아하거든.



네가 솜사탕을 생각하며 할아버지 앞에서 침을 꼴깍 삼켰을 때 나도 어디선가 인내를 배우고 있었을 거야. (너와 난 나이차가 약간 있지만 너는 장녀이고 나는 막내이니 대충 비슷하지 않을까 싶어서ㅋㅋ)

내가 처음 인내를 배운 적은 언제였나 생각해 봤어.


장녀도 차녀도 아닌 ‘삼녀’쯤 되면 장녀와는 다른 종류의 인내를 배우지. 바로, 순서를 기다리는 것. 나는 늘 세 번째였어. 우리 엄마는 자매간 위계를 중요하게 생각하셨거든. 동생이 언니를 맞먹고 싸우는 걸 마치 천륜을 어기는 것처럼 여기셔서 평소에도 서열을 무척 강조하셨지. 밥상에 밥공기를 올릴 때도 순서대로, 세뱃돈을 받을 때도 순서대로, 하물며 과자를 받을 때도 순서대로 받았어. 아마 두 명 중 막내였다면 내가 끝번이라는 의식을 자주 하진 않았을 거야. 하지만 셋은 달라. 세 번째 아이는 항상 말도 안 되게 얼룩 많고 구겨지고 보풀이 난 옷을 물려받거든. 밑창에 구멍 난 신발을 물려받은 적도 있어. 이게 얼마나 서러웠던지 열 살이 되었을 때 처음으로 엄마에게 강하게 항의했어. 다른 아이들처럼 새 옷 입고 싶다고 말이야. (당시 엄마의 충격받은 표정이 지금 다시 그려지는 듯 해.) 엄마는 그날 나를 데리고 쇼핑센터에 가서 마음껏 옷을 고르게 해 주었어. 나는 양쪽 주머니에 각각 분홍색, 하늘색을 천을 덧댄 아이보리색 반바지를 골랐어. 그 옷을 가장 좋아했거든. 그래서 아직도 기억이 나.

인내를 처음 배운 날은 딱 떠오르지 않아도, 십 년 인내의 결실을 받은 이날은 또렷하게 생각나. 물론 그 후에도 옷은 계속 물려받았지만, 더 이상 서럽지는 않았어. 그날 한을 풀어서 그랬나 봐.





근데 있잖아, 너는 내가 아는 사람 중에서 잘 참는 걸로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사람이야. 누가 뭐라 해도 일단 참고 그 상황과 사람을 이해해야 할 이유를 찾는 것 같아. 너무 능숙하게 말이지. 인내의 장인이랄까.

그래서인지 네가 ‘더 이상 참지 않는’ 모습을 보이면 난 너무 반갑더라. 언젠가 네가 ‘홧김에’ 말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홧김에’라니! 너와 이렇게 먼 단어가 또 있을까?) 나에게는 언제든 홧김에 말해도 돼. 갑자기 ‘홧김’라는 말이 너무 좋아져서 사전 찾아보니까 ‘화가 치미는 날카로운 기세’라는 뜻이네. 정말 너와 대척점에 있는 단어 맞구나. 더욱 마음에 든다. ㅎㅎㅎ





근데 있잖아, 그냥 생각난 건데 ‘인내’와 ‘억누르는 것’의 차이는 뭘까? 겉으로 보이는 반응은 둘 다 비슷해서 말이야.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어. 인내는 더 나은 미래나 이상을 바라보며 참는 것이고, 억누르는 건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채 당분간 외면하는 거라고. 실은 억눌렀으면서 인내한다고 생각하면 결과는 어떻게 될까? 인내가 필요할 때 억누르기만 했던 건 아닐까? ‘잘 참는 사람’은 어떤 면에서 ‘잘 누르는 사람’이기도 한 걸까?


어쩌면 이 둘은 서로 다른 반응이 아니라 한 과정을 이루는 순서에 불과할지도 몰라. 우선은 억눌러야 인내할 수 있는 거지. 화가 나지만 당장은 참고, 거시적으로 생각해 본 뒤에 ‘그래, 지금은 인내할 때야!’ 결정한달까? 아니면 인내를 훈련하는 방식이 억누름이라 할 수도 있겠다.


인내하는 사람은 에너지가 확장되고, 억누르는 사람은 에너지가 소모되는 건 아닐까 생각도 했어. 인내는 결심의 결과이고, 억누름은 회피의 결과 아닐까 하고.



어차피 세상 살다 보면 참아야 할 순간들이 많고, 너나 나나 성격상 할 말을 다 못할 때도 많잖아. 이런 일이 반복되면 마음의 병을 얻을 수도 있고. 그럴 때는 인내와 억누름을 구별하는 게 낫겠다 싶어.


-인내하겠다. 하지만 참지 않겠다.


이렇게. ‘차가운 핫초코’ 같은 소리지만ㅎㅎ 인생을 넓게 보면서 현재는 인내하며 살기로 결정하고, 다만 참기 어려운 순간이 올 때 그냥 누르진 말아야겠어. 무엇으로라도 풀어내는 거지. 말을 하든 글을 써서든 말이야. 나는 인내와 억누르기를 동시에 하다가 큰 마음의 병을 얻은 적이 있어. 그게 좀처럼 해결되지 않더라고. 그때 알았어. 무작정 억누르지 않고 어딘가에든 풀어내야 인내의 긴 시간을 버틸 수 있다는 걸 말이야. 바로 지금 너처럼. 넌 아주 잘 하고 있어!





아, 맞다.

근데 있잖아, 내게 ‘오름 정원’이 있다는 말은 가당치 않다고 생각해. 난 제주도 도심지의 아파트에 살고 있고 가장 가까운 오름에는 딱 한 번 가봤을 뿐이거든. 자연은 아름답지만 거기에 크게 마음을 두는 시기는 지나간 것 같아. 늘 가깝고 당연하면 소중함을 잊는 걸까?


(써놓고 보니, 늘 가깝고 당연한 자연이 있다면 그게 정원이 맞지 싶네. 소오름!)


차로 20분 거리의 바다 정원이야. 우리 6세는 바다를 등지고 책만 보더라.







최근에 육지에 다녀왔어. 코로나 시국에 둘째를 출산해서 작년부터 올해까지 한 번도 올라가지 못했거든. 2박 3일 동안 비행기, 자동차, 기차 골고루 타면서 산과 들과 도시와 도로를 둘러보았어. 그중에서 가장 상쾌했던 곳이 어디였는지 알아? 바로 백화점이었어. ㅎㅎㅎㅎ 백화점이라는 장소에 거의 3년 만에 들어가 본 것 같아. 그 안을 걷고 있는 것만으로도 마치 삼림욕 하듯 내면의 어느 빈 부분이 채워지는 것 같더라고. 남편과 나는 백화점에 너무 큰 감명을 받은 나머지 시골쥐처럼 이런 대화를 했어.

“육지에 이렇게 좋은 곳이 있는데 다들 왜 제주에 오지?

“맞아. 여기서 쉬면 되잖아?”

이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에도 백화점이 그리울 지경이야. 오름과 바다를 지척에 두고도 도시를 그리워하다니. 하지만 누군가 내게 육지(도시)와 제주 둘 중에서 어디를 선택할지 묻는다면, 물론 나는 제주야. 너도 마찬가지로 제주가 아닌 지금의 도시를 택하겠지? 그리고 각자가 가지지 못한 것을 그리워하면서 살 거야. 난 이런 지점이 마음에 들어. 그리운 대상을 품는 일 말이야. 삶의 층위가 깊어지는 느낌이랄까. 우리가 각자 그리워하는 지점에 서로가 있다는 것도 좋아.




이렇게 쓰니 오글거리긴 하네. 근데 있잖아, 얼마 전 수업 때 ‘위로의 말’을 표현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어떤 아이가 “오글거린다"라고 하더라고. 그래서 난 이렇게 말했지.

“생각해 봐. 오글거리는 말들은 하나같이 다 따뜻하고 좋은 말이다? 우리는 그런 말을 들어야 살아.”

정말 그렇지 않니? 나와 내 사람들을 위해 난 기꺼이 오글이가 될 거야.





에너지의 크기로 비교하면 늘 내가 너보다 더 왁자하고 적극적인 편이었던 것 같아. 지금껏 내가 너에게 전화해도 되냐고 몇 번 물어봤는지 생각해 봐. ㅎㅎㅎ 그런 와중에 네게서 이런 일방적인! 편지를 받았을 때 내가 얼마나 기뻤는지 넌 모를 거야. 편지는 호흡을 고르며 상대에게 하고 싶은 말을 충분히 정렬하는 거잖아. 내가 끼어들 틈 없이 너의 말만 활자가 되어 내 눈앞에 쏟아지는 거잖아. 그 순간이 참 행복하더라. 너의 일방적인 편지를 내가 이렇게 좋아할 줄은 나도 몰랐어. 이 소식을 들은 나의 남편은 짧은 소감을 남겼지.


-다행이다. 쌍방이라서.


이 말 듣고 웃다가 넘어가는 줄 알았어ㅋㅋㅋㅋㅋ 내가 좋아하고 관심 가는 사람에게 강아지처럼 꼬리를 흔들며 들이대는 것을 그는 걱정스럽게 보는 것 같아. 그동안 내가 너보다 더 적극적인 것으로 보였는데 다행히(!) 너도 적극적이라며 안심하더라고.




아무튼, 그러니까 네가 일방적으로 편지를 보낸 것에 마음 쓰지 않아도 돼. 계획 밖의 일을 만날 때 난처해하는 사람도 있지만,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기면 갑자기 눈을 반짝이며 흥분하는 사람도 있어. 후자가 바로 저랍니다>_< 너의 편지는 오늘 내게 힘과 기쁨이 되었어!


남편과 연애할 때 한 자리에서 서로에게 편지를 쓴 적이 있는데, 그는 뭐라 써야 할지 몰라 쩔쩔매던 반면에 나는 당장 러브레터계의 팔만대장경을 쓸 기세였어. 참 딱한 상황이었지. 좋아하는 일은, 그 일을 함께 좋아하는 사람과 해야 한다는 걸 알았어. 이 말을 왜 꺼냈냐면 내 친구가 나처럼 마음을 글로 표현하길 좋아해서 행복하다는 걸 표현하려고. 후후후.



이번에 브런치북 공모에 제출도 못하고 의욕이 확 꺾여버린 나에게(ㅋㅋ) 새로운 영감과 의욕을 일으켜줘서 고마워.

편지 열심히 써볼게.



미리,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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