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보영 Mar 26. 2016

글을 보내며

은닉과 노출의 모순된 욕망에 대하여



전에 책 작업을 같이 했던 출판사 담당자 분과 메시지로 이야기를 나누는데 문득 새로운 아이템에 대해 물어보셨다. 써둔 거라고는 그간의 일상과 잡념, 감정을 정리한 글 뿐이었는데. 결국 그 중 몇 편을 우선 보내보기로 했다. 비밀스런 글들을 공적 관계에 노출하다니. 사실 반려된다 해도 별 상관은 없다. 다만 이런 과정 자체가 문득 낯설면서도 묘하게 익숙한 것이다.


브런치에 글을 올리면서, 내가 모르는 수많은 사람들이 내 이야기를 들여다보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어쩐지 기분이 이상하다. 나는 어떤 감정에 사로잡힐 때 그것의 정체와 근원을 찾아 꼬랑지라도 콱 밟아야 직성이 풀리는 버릇이 있었다. 답을 몰랐을 때나 찾았을 때나 마음을 파헤치며 글을 썼다. 슬픔이며 분노에 직면할 때는 물론이고, 삶에 아무 변화가 없을 때에도 그 상태를 옮겨 적었다.

브런치에 연재하고 있는 '부부의 탄생'의 배경도 마찬가지다. 사실 몹시도 괴롭고 들쑥날쑥한 감정으로 어지러운 날들이었다. 그 때 정말 많은 일기를 썼는데, 나중에 이 일이 화사한 반전으로 이어지면서 어느 순간 드러낼 힘을 얻었다. 브런치에 작가로 등록한 후 여러 주제가 떠올랐지만 가장 먼저 나온 것은 바로 그 괴로운 시절의 이야기였다. 혼자 낄낄거리며 즐거운 마음으로 글을 써서 올렸고 생각보다 반응이 좋았다. SNS에 올리는 것과는 다른 기분이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멈추고 싶었다. 사실 쾌감만큼 피로감도 있었다. 임신을 핑계로 의무에서 한 발 물러선 채 살았다. 그리고는 수 개월 동안 일기를 비롯한 지극히 사적인 잡글만 비밀스럽게 쌓아두었다.



하나의 마음에도 여러 소리가 오간다.

어떤 마음은 숨기라 하고, 어떤 마음은 드러내라 한다.

누군가가 숨겨진 내 잡글들을 훔쳐본다면 난 수치스러워서 견딜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폐쇄된 심연의 글은 가끔 밖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내 마음 풀어보자고 사적으로 썼으면서 이상하게도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은 맘이 드는 것이다. 그러면 또 묘한 감정이 싹튼다. 내 속을 뒤집어서 광장 같은 곳에 걸어두는 느낌이랄까. 마냥 유쾌할 순 없는 이런 일들을 나는 왜 원하는 것인가. 나의 남루한 내면을 그럴싸한 언어로 잘 포장해서 근사한 사유인 것처럼 보이고 싶은 건 아닐까. 생각해보니 꼭 그렇진 않은 것 같다. 나에게 있어 글을 보이고 싶은 심리는 기만적이라기 보다는 약간 변태적인 것에 더 가깝다.


격앙된 상태에서 글을 쓰는 것은 일종의 배설과 비슷하다. 마음을 툭툭 건드리는 질문과 고민들을 옮기는 것도 그렇다. 때로는 막연히 주제를 정하고 쥐어짜듯 쓰기도 하고, 돈을 벌기 위해 '밥글'도 쓰지만 어쨌든 초고라는 건 원래 하나 같이 별로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가끔 오묘하게 빛나 보이는 부분이 있다. 그러면 나는 사금을 채취하듯 주워 모아 빈약한 어휘를 총동원하여 글을 옮기는 것이다. 감정의 민낯도, 치열한 고민도 가지런히 담는다. 이런 비밀스런 작업을 어느 정도 마치면 슬슬 드러내고 싶은 맘이 올라온다. 글은 노출과 동시에 완성되는 것 같다.


글을 쓰는 것과 그 글을 공개하는 건 분명 다른 성향이다. 생각을 언어에 옮겨 담는 건 사적인 공간과 상황에서 일어나고, 타자에게 그걸 보이는 순간 사적 영역을 벗어난다. 두 가지 모두가 글 쓰는 자의 업이다. 그들은 철저히 홀로 사유를 정련하는 일과 그 결과물을 드러내는 것 모두를 욕망한다. 내가 그랬다. 물고기가 알을 낳아 숨기듯 몽글몽글 내밀한 언어를 만들고, 어느 순간 그것이 부화하여 전부 흩어지는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본다. 나의 생각이나 감정도 문장과 음절로 분리되어 생동하는 치어처럼 제각기 멀리 헤엄쳐 간다. 몹시 부끄럽지만 꽤 중독적이다. 글을 노출하고 나면 미미한 파동에도 신경이 쓰이고 적게나마 긍정적인 반향이라도 얻을 때 쾌감이 든다. 공감해주는 독자들이 나타난다면 또 감읍한다. 쓰는 일을 업으로 삼은 자는 일평생 이 과정을 반복할 것이다. 창작자와 예술가의 숙명이랄까.



은닉해온 글을 보내고 나니 어떤 반응이 돌아올지 궁금하다. 기획이 반려된다 해도 다른 글로 다른 기회를 찾아보고 싶다. 노출에의 욕망은 때로 용기를 주기도 한다. 매사에 별로 자신이 없던 내가, 내 글이 누군가에게 가 닿는 꿈만 꾸던 내가, 언제부터 부딪치고 드러낼 용기를 내게 되었을까. 정말로 숙명이라는 게 있어서 내 등을 떠밀고 있는 걸까.








이렇게 생각한 것을 기어이 또 글로 써서 올린다.

새로 개편된 브런치 메뉴를 보니 나는 '감성 에세이 작가'로 분류되어 있었다.

낯이 좀 간지럽지만 이런 뻘글도 감성 에세이가 될 수 있구나 싶어서 안심하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새 봄을 꿈꾸는 겨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