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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보영 Oct 31. 2017

프롤로그 - 내가 이 글을 써도 될까

<내가 엄마가 되어도 될까>를 펴내며

                 

말하고 싶은 만큼 침묵하고 싶고
혼자 있길 원하면서 외롭고
다 보여주고 싶지만 숨어버리고
믿으면서 의심해

머물고 싶은 만큼 떠나고 싶고
사랑하고 있으면서 미워해
너무나 살고 싶지만 끝을 생각해
피곤한데 불면증


인디밴드 ‘싱잉앤츠’의 노래 <모순>의 가사 일부분이다.

살다 보면 상반되는 두 가지 감정이 모두 진심일 때가 얼마나 많은가. 나는 보색의 감정이 뛰노는 마음을 가사로 적었다. 이 모순을 정직하게 인정하면 스스로를 옭아맨 부조리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



임신 기간 중에 태아에 대한 사랑과 축복의 마음을 담아 태교책을 냈다. 새생명을 잉태하는 일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이 아이는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내가 가진 빛나고 밝은 어휘를 다 털어 글로 옮겼다. 그리고 출산 후 뼈저린 당혹감과 혼란을 통과하고 문자 그대로 전쟁 같은 일상을 매일 치르면서 주체성이 희미해질 무렵, 그야말로 살아남기 위해 기록한 글을 모아 출간하게 되었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건 분명 헤아리기 어려운 큰 기쁨이고, 이 아이는 세상의 어떤 귀한 것과도 바꿀 수 없을 만큼 소중하다. 성마른 나에게 사랑이 샘솟는 것 자체도 놀라웠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당혹스럽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육아의 고단함이 덜어지지도 않았다. 사랑과 축복과 신비, 그리고 몸과 정신의 극심한 고통 모두가 사실이고 진심이다. 축복이 곧 시련이 되며 기쁨과 한숨이 공존한다. 모순이다. 이것을 직면하고서야 이 책을 쓸 동력을 얻었다.



적당한 나이에 결혼해서 첫 아이를 낳고 키우고 있다. 이력이라고는 이것뿐인, 이 땅의 뭇 어머니들에 비하면 1학년 수준일 내가 이런 책을 써도 될까? 더 힘들게, 대단하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은데? 며칠 고민하다 관두었다. 나는 습관적으로 저마다의 삶의 무게를 나와 비교한다. 겨우 살아내고 있으면서 나보다 훨씬 힘든 사람들을 생각하며 내 고단함을 무르려 했다. 세 아이를 키우는 사람이 '넌 아직 모른다'고 말한다면, 혹은 더 큰 아이들을 기르는 엄마가 '지금이 좋을 때'라고 하면 나는 할 말이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발화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출산 후 산후조리원에서 당혹감에 잠을 이루지 못했던 기억, 갓 태어난 조막만 한 핏덩이를 키워내려고 초능력을 일으켰던 순간들, 매일 얼굴을 바꾸는 고통에 대해 나는 자꾸만 말하고 싶었다.



엄마 되기를 선택하려는 사람들, 또는 계획하거나 고민하는이들과 차 한잔 마시며 이야기 나누는 기분으로 글을 엮는다.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잘 갖춰진 환경에서 예쁜 아기들이 나오는 모습은 출산 장려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될 수도 있겠지만 임신, 출산, 육아의 실상을 상당 부분 가리고 있는 게 사실이다. 임신과 출산에 대한 더 많은 이야기가 수면 위로 드러나면 좋겠다. 로맨스 드라마에서 육아하는 커플의 사랑도 아주 입체감 있게 다뤄주면 좋겠다. 임신에서 육아로 이어지는 지난한 과정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 채 맞닥뜨리는 것보다는 어느 정도 준비된 상태에서 시작하는 게 훨씬 낫다. 다 알아도 당혹스럽기는 마찬가지겠지만. 이 책이 당신의 선택과 준비에 작은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좋겠다.


                 


엄마가 되는 것은 분명 가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비혼자와 자녀 없는 부부에게도 안정과 행복을 주면 좋겠다. 사람은 저마다 다른 모습과 가치관으로 살기 때문에 모두에게 한 가지 방법을 강요할 수 없다. 아이 낳기를 선택한 사람과 선택하지 않은 사람, 혹은 의학적으로 임신이 어려운 커플이나 입양을 결정한 분들 모두가 존중과 배려를 받는 세상을 꿈꾼다. 행복의 모양은 더욱 다채로워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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