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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보영 Dec 12. 2017

너의 생일

나의 첫 번째 출산




1. 출산 전야

                


분만징후가 유별나서 힘들었다. 35주부터 가진통이 시작됐는데 나중에는 아파서 자다  정도로 점점 심해졌다. 37주에는 일주일 내내 갈색 점액이 비쳤다. 그게 이슬이라고 했다. 38 검진   내진을 통해 이미 아기가 끝까지 내려온 것을 확인했다. 내진 때는 의사가 산모의 질에 손을 넣어 진료를 한다. 나의 자궁문은 부드러워진 상태인데다 살짝 열려 있다고 들었다. 그후 조마조마한 상태로 3주를 보냈다. 가진통이 심한 새벽이면 벌떡 일어나서 남편을 깨웠다.

“오늘인가 봐!”

이걸 몇 번 반복하니 남편은 이제 내가 깨워도 눈도 뜨지 않은채 의사에게 들은 말을 중얼거렸다.

“그렇구나... 하늘이 노랗게 보이면 병원 가자.”
할 말이 없었다. 양치기 소년이 된 기분이랄까.



한여름의 하늘은 여전히 파랬고 어느덧 출산 예정일까지 왔다. 착상 후 40주가 되는 날이다. 37주에 이슬을 보고서 40주까지 기다릴 줄은 몰랐다. 담당의 선생님은 초산이 보통 좀 늦다고했다.

집이 너무 더워서 남편과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고 운동 삼아 마트에 들러 집까지 걸어오는데 배가 슬슬 아팠다. 하지만 이 정도의 통증은 그간 너무나 흔했기 때문에 가볍게 무시했다. 그런데 집에 온 뒤에도 계속 아프고 생리통처럼 아랫배가 빵빵해지는 기분도 들어서 이번에는 간격을 재보기로 했다. 정확하진 않지만 1분 정도의 진통이 5분 간격으로 반복됐다. 대체 몇 번째 직감인가 싶지만 그럼에도 분명 평소와는 다른 느낌이 왔다. 나는 확신에 차서 남편에게 말했다.

“이런 적은 처음이야. 내 생각엔 오늘인 것 같아!”

가족과 가까운 지인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그래도 일단 더 두고 봐야 할 것 같아서 집에서 대기하기로 하고 영화를 찾아봤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진통이 잦아들더니 다시 불규칙해졌다. 진통이 시작된다 해도 진행이 안 되면 병원에서는 걷기나 짐볼 같은 운동을 시키기도 한다고 들었다.

“안 되겠어. 운동을 하자.”


우리는 출산 가방을 싸들고 근처 공원으로 갔다. 열심히 걷다보면 진통이 걸리지 않을까. 그날 한 바퀴에 2킬로미터 코스를 세 바퀴 돌았다. 이따금 질 쪽에 찌릿한 통증이 왔지만 진통은 아니었다. 날이 저물어갔다. 오늘 병원에 갈 수도 있으니 마지막으로 고기를 먹자며 신나게 왕갈비탕도 먹었으나 끝내 진진통은 오지 않았다. 정말 오늘인 줄 알고 여기저기 연락도 했는데...



만삭인 상태가 너무 힘들어서 어서 출산할 날만 손꼽아 기다렸다. 하지만 매번 그럴싸한 진통으로 자꾸 속는 것 같아 속상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뭐가 그렇게 조급했나 싶지만 당시에는 실패감까지 느끼며 결국 집으로 돌아왔다. 출산 가방은 한쪽에 던져두고 잠자리에 드는데 눈물이 조금 났다. 배를 어루만지며 아기에게 말했다.

“엄마가 너무 서두른 걸까? 너의 때를 기다릴게.”



새벽 3시. 진통으로 뒤척이다 잠에서 깼다.
“탱!”
아랫배에서 풍선 터지는 것 같은 소리가 작게 들렸다.
‘이것도 태동인가? 설마 양수?’

생각하는 순간 주르륵 물이 흘러나왔다. 소변을 본 느낌과 비슷한 걸 보니 양수가 맞다. 나는 당장 남편을 흔들어 깨웠다.



여보, 나 양수 터졌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남편이 1초의 뒤척임도 없이 용수철 튀어오르듯 벌떡 일어났다. 그 역시 이상하게 잠을 설쳤다고 했다. 부모의 직감일 수도 있겠다. 병원에 전화하니 바로 오라고 한다. 우리는 아까 던져놓은 출산 가방을 다시 소중히 챙겨들고 집을 나섰다. (나중에 남편이 말하길, 양수 터졌다고 말하는 내 표정이 그렇게 환했다고 한다.)



임신 기간 동안 수차례 드나들었던 병원에 또 왔다. 진료실은 호텔 로비처럼 안락하게 꾸며지고 모든 직원들이 친절히 환대해준다. 하지만 새벽의 분만실은 여기가 같은 병원이 맞나 싶을 정도로 달랐다. 전운이 감도는 긴장감이 있으면서도 새벽까지 당직을 하느라 다들 피곤한 기색이 역력하다. 우리는 일생일대의 두렵고 떨리는 큰일을 앞두고 있는데, 그들은 우리를 그저 밤에 찾아온 손님 정도로 대하는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분만실은 매일 수십 번의 출산을 도우며 각각의 상황에 다르게 대처해야한다. 텔레비전에는 아기 낳는 장면이 드라마틱하게 나오지만 사실 출산은 아주 위험하며 극도의 주의가 필요한 일이다. 그러니 갓 내원한 산모의 감정까지 섬세하게 신경 쓰기란 어려울 것이다.



우리는 몇 가지 수속을 거쳐 분만 대기실에 짐을 풀었다. 곧바로 태동 검사를 하라고 한다. 나는 아무도 없는 분만실에 누웠다. 잠시 후 간호사 한 분이 오시더니 정맥주사를 놓아주었다. 출산 시 출혈이 너무 많으면 긴급 수혈을 해야 하기 때문에 정맥을 미리 확보하는 것이라고 들었다. 이게 그렇게 아프다고 들었지만 눈 딱감으면 참을 만했다.

“잘 참으시네요.”

간호사가 웃으며 태동검사기를 달아주고 나갔다. 잠시 후 옆 분만실에서 어수선한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출산을 시작하는 것 같았다. 산모의 비명 소리, 그를 북돋워주는 의료진의 목소리가 교차되어 들렸다. 안 그래도 떨리는데 더 무섭다. 10분정도 지났을까? 정말 드라마에서나 들었을 것 같은, 생생한 아기 울음 소리가 터져나왔다. 방금 하나의 생이 시작된 것이다. 곧 내게 닥칠 일이기도 했다.

‘10분 만에 애를 낳다니... 대단하다.’



그즈음 진짜 진통이 왔다. 정도는 약했지만 가진통과는 느낌이 분명 달랐다. 가진통과 진진통의 차이를 물을 때마다 아기 엄마들은 이렇게 말한다.

“진짜가 오면, 가진통과 헷갈리지 않아.”

정말 맞는 말이다. 아예 아픈 부위부터 다르고 아픔의 종류도 다르다. 가진통이 생리통과 비슷한 느낌이라면 진진통은 생전 처음 느껴보는 종류의 고통이다. 척추와 골반, 그리고 아랫배 깊숙한 곳에서부터 뒤틀리는 느낌이랄까. 올 것이 왔구나.



태동이 잘 잡히지 않아 한 시간 정도 누워 있었다. 드디어 의사가 들어왔다. 내진을 해보더니 심드렁하게 말했다.

“1센티 열렸네요.”
“네?”
“한 시간에 1센티 열린다고 생각하시면 될 거예요. 다 열리려면 열 시간 정도는 있어야 해요.”

열 시간이라니! 절망적이었다.






2. 너의 생일



원활한 출산을 위해 내가 그동안 얼마나 애를 썼는가.

무거운 몸으로 매일 밤 운동장을 돌고 오르막길을 오르고 짐볼을 탔다. 라즈베리잎 차가 출산에 도움이 된다는 얘기를 듣고 온갖 유난을 떨면서 매일 마셨다. 임신 4개월부터 임산부 요가를 했다. 이런 식으로 수능을 준비했다면 출신 대학 이름이 바뀌었을 거라며 남편에게 너스레를 떨었다. 그래서 더 놀랐다. 38주에도 1센티미터 열렸다고 들었는데 아직도 그대로라니.



관장약을 넣고 다시 대기실로 들어갔더니 남편이 소파에 앉아 떨고 있었다. 나는 태연하게 말했다.

“1센티 열렸대. 난 이제 죽었어.”
“정말? 라즈베리잎 차 별로 소용없는 거였네?”

“그건 더 두고 봐야 알겠지.”

우리는 준비해온 카메라를 꺼내서 아기에게 보내는 영상편지를 촬영하기로 했다. 나는 퉁퉁 부은 얼굴로 배를 어루만지며 웃었다.

“우리는 이제 곧 만날 거야. 너는 지금 이 안에 있어.”

관장약 효과 때문에 촬영은 금방 끝났다. 5분은 참으라고 했지만 2분도 참지 못하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긴 전투를 앞두고 우리는 좀 자두기로 했다. 새벽 4시 반쯤 이었을 것이다. 소파에 새우처럼 허리를 구부리고 누운 남편이 먼저 잠들었다. 나는 몹시 피곤했지만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진통이 조금씩 강렬해지고 있었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한 시간 뒤에 간호사가 들어오더니 항생제와 촉진제를 투여했다. 양수가 먼저 터질 경우 감염 위험 때문에 24시간 내에 분만을 해야 한다고 한다. 진통측정기도 달았다. 최대치의 진통이 100이라고 했을 때 현재 수치를 숫자로 보여주는 것이다. 진통이 거세질 때마다 숫자를 힐끔 보았다. 두 번째로 절망했다.

“아직도 20밖에 안 된다고? 이렇게 아픈데?”

이미 정신이 혼미해지는데 이것보다 다섯 배 아픈 고통이 기다리고 있다니!



분만촉진제 덕분인지 이제는 새로운 진통의 세계로 들어갔다. 부부출산교실에서 호흡과 이완을 배우고 집에서도 연습한바 있었다. 나는 남편과 간호사의 도움으로 호흡과 이완에 초집중했다. 그냥 적당히 집중하는 걸로는 안 된다. 진통이 오면 허리가 뒤틀리고 배에 힘이 들어가기 때문에 몸에 힘을 빼려면 강력한 의지가 필요하다. 그리고 다시 내진.

“진행이 빠르네요? 벌써 3센티 열렸어요!”

간호사가 웃으며 격려해주었다. 이제는 필요 없을 거라며 투여한 지 10분 만에 촉진제를 뺐다.

“고무적인 일이다.”
“좀 참다가 무통주사 맞아야지.”
이 와중에 남편과 웃으며 얘기했다.



그는 내가 진통하는 동안 틀어놓을 곡들을 휴대전화 재생목록에 담아왔다. 그런데 본격적인 진통이 시작되니 하나같이 듣기가 힘들었다.

“이거 빼줘. 음, 이 곡도. 와, 진짜 도움 안 된다.”

진통 중에 음악을 들으면 안정에 도움이 된다고 누가 말했던가. 그동안 흠모해온 가수의 노래도 도움이 안 되고, 기독교인이지만 찬양곡도 듣기가 힘들었다. 그러다 어느 한 곡이 귀에 꽂혔는데 그레이 & 쌈디의 <맘 편히>였다. 처음 들었을 때부터 너무 좋아서 나중에 분만할 때 틀어야지 생각했었다. 그 노래는 내 마음을 조금이나마 편하게 해주었다.

“그대 맘 편히, 편히, 편히.......”

랩 부분은 어차피 잘 들리지 않고 이 후렴 멜로디만 마치 주문처럼 들렸다. 한 곡 반복으로 잔잔히 틀어놓고 계속해서 진통을 겪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진통 주기가 너무 짧은 것이다. 원래 출산할 때까지 내내 아픈 게 아니라 규칙적인 주기에 따라 진통이 온다. 출산교실에서 배운 바로는 1기에는 20~30분, 2기는 10분, 3기는 5분을 간격으로 1~2분 정도의 진통을 한다고 들었다. 하지만 나는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기라도 한 것처럼 1~2분 간격에 3분 진통을 했다. 초산이라 잘 몰라서 무작정 버티고만 있었는데 남편이 뭔가 이상하다고 말해서 알았다. 나는 더 이상 참을수가 없었다.

“안 되겠다. 무통을 맞아야겠어.”

남편이 인터폰으로 간호사를 불렀다. 잠시 후 무통주사를 들고 온 간호사가 내진을 해보더니 깜짝 놀란다.

“80퍼센트 진행됐네요? 한 시간 내에 나올 것 같아요.”

그러더니 들고 온 무통주사를 고스란히 가지고 나갔다.



뒤이어 다른 간호사가 와서 소변을 보라고 했다. 방광이 차 있으면 아기가 나올 때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한다. 진통이 잠시 멎는 짧은 시간에 간호사와 남편의 부축을 받아 화장실에 갔다. 하지만 변기에 앉아 아무리 기다려도 소변은 나오지 않고 곧 지옥 같은 진통이 다시 시작됐다. 나는 일어나지도 못한 채 맞은편 벽에 붙은 수건걸이를 붙들고 괴로워했다. 그리고 결국 침대로 돌아와 소변줄을 꽂았다. 소변이 나오려면 방광에도 문이 있지 않겠는가. 거기에 관을 연결하는 것이다. 생각보다 아팠다. 요의를 느끼기도 전에 소변이 줄줄 많이 나왔다. 출산하려면 별별 수치스러운 경험을 다 해야하는데 이건 시작에 불과하다.



진통은 아기가 나오려고 애를 쓰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나는 진통으로 정신을 못 차리다가도 잠시 멎으면 아기에게 격려와 응원을 했다. 이 역시 나의 ‘출산 로망’에 포함되었던 일이다.

“우리 아기가 힘을 내고 있구나! 정말 장하다. 엄마도 힘낼게. 우리 같이 잘해보자! 곧 만나자!”

그러면 아기가 그 말을 알아들었는지 진통이 더 거세지는 것이다. 출산은 산모보다 아기에게 더 힘든 일이라고 들었다. 따뜻하고 안락한 엄마 품을 떠나 비좁은 산도를 통과해 처음으로 폐호흡을 하는 모든 과정이 아기에게는 너무 큰 모험이라고. 아기를 낳기 위해 나도 불같은 고통을 지나야 하지만, 우리는 한 팀이기 때문에 서로 격려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기는 지금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제는 진통이 올 때마다 몸이 뒤틀리고 이성을 잃을 것 같았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배, 등, 허리에 힘이 땅땅하게 들어간다. 불에 타는 것 같기도 하고 날카롭게 베인 것도 같은 통증. 남편은 배운 대로 내 몸을 쓸어 만지며 이완하도록 도왔다. 그런데 이제 더 이상 힘이 빠지지 않았다. 단전에서부터 강력한 힘이 허리와 하복부를 뒤흔들었다.

“힘이 안 빠져.......”
간호사가 와서 살펴보더니 말했다.
“거의 다 됐네. 대변 보고 싶은 느낌이 와요?”
잘 모르겠지만 일단 그렇다고 했다. 힘주기를 해야 지옥 같은 진통이 끝날 것 같았다.

“이제부터는 진통이 올 때마다 대변 보듯 힘을 주세요.”
옆으로 누운 상태로 몇 번 연습했다. 신기하게도 본능처럼 저절로 힘이 들어가는데 힘을 주면 조금이나마 덜 아픈 느낌이었다.

“이제 다 열렸어요! 진통이 잠시 멈추면 분만실로 갈 거예요.”

드디어 끝이 보이는구나, 안도할 때 간호사가 다시 말했다.
“바로 앞이니까 걸어갈 거예요. 진통 잦아들면 얘기하세요.”

“걸어간다고요?”

분만실은 정말 문 밖에 바로 있기는 했다. 그래도 애 낳으러 두 발로 걸어들어갈 줄은 몰랐다. 침대에 누운 채로 들어가는 모습을 상상했는데.




분만대는 양다리를 벌린 채로 고정시킨다는 점에서 산부인과 진료대와 비슷하게 생겼다. 양쪽에 손잡이가 있다는 게 다른 점인데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산모가 이 자리에서 저 손잡이를 붙들고 사투를 벌였을지 잠깐 헤아려보았다. 아픈 와중에 겨우 다리를 끼우고 손잡이를 잡았다. 분만실 간호사들이 서로 얘기하는게 들렸다.

“이분 아까 양수 터져서 왔는데 순식간에 100퍼센트 진행됐어.”

“초고속 분만이네.”
“나 아까 무통 접수하러 갔다가 깜짝 놀랐잖아.”
그렇다. 나는 열 시간 걸린다던 진통을 불꽃처럼 한 시간 만에 치러냈다. 남편은 라즈베리잎 차의 효능을 의심했다며 뒤늦게 참회했다. 다 됐고, 빨리 낳고 싶었다.



출산의 3대 굴욕 중 하나라는 제모 차례였다. 사실 진통 때문에 굴욕감을 느낄 수도 없었다. 굴욕이라 불리는 것들은 모두 안전한 출산을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그 일은 그리 수치스럽진 않았다.

“제모해도 진통 오면 그냥 힘주세요.”

다리를 양쪽에 걸쳐 고정하고 손은 손잡이를 잡아당기고 상체를 들어 배꼽을 보라고 한다. 이미 출산교실에서 배운 자세였고, 집에서 남편과도 몇 번 연습했기에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오, 산모님 힘 잘 주시네요?”

줄곧 무표정하게 제모하던 간호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곧 의사가 왔다. 야간이라 내 담당의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반가웠다. 의사가 들어오면 고통 끝이라고 들었다. 뒤이어 의료진들 사이에 또 내 급속 분만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게 들렸다.



“자, 이제는 진통이 오면 아래로 힘을 세게 주세요!”
진통이 왔다. 나는 허리를 굽혀 상체를 일으켰다.

"힘주세요! 힘주세요!"

모두가 외쳤다. 나는 있는 힘껏 힘을 세게 주었다. 출산교실에서 힘주기를 할 때의 호흡과 리듬도 연습했었다. 그래서 곧바로 다시 힘을 주려는데 의사와 간호사가 일제히 외쳤다.

"힘 빼세요! 힘 빼세요!"

어? 왜 그러지? 생각하는데 몸에서 무언가가 ‘미끄덩’ 빠져나갔다. 아기를 낳은 것이다. 힘주기 연습인 줄 알았던 나는 깜짝 놀랐다.

“아빠, 탯줄 자르세요!”

저쪽에서 분만실에 막 입장한 남편이 장갑을 끼다가 허둥지둥 달려왔다. 아기와 만나는 순간은 정말 감격적일 거라고 늘 생각했으나 감동을 느낄 새도 없이 아기가 이미 태어나버렸다.

오전 7시 7분이었다.
나는 3.5킬로그램의 건강한 딸을 낳았다.









아기는 태어나자마자 어딘가로 실려 가서 몇 가지 검사와 확인을했다.나는 아기 얼굴이 보고싶어서 고개를 낑낑 들어보고 그동안 아기는 악을 쓰며 울었다. 다음 순서는 목욕이었다. 아기를 양수와 비슷한 온도의 물에 담가 남편이 목욕을 시켜줬다. 그러면서 우리가 그동안 밤마다 들려주던 자장가를 불러주었다. 신기하게도 아기가 울음을 뚝 그쳤다. 뽀얀 아기의 모습이 정말 예뻤다.

“급속분만이 꼭 좋은 건 아니에요. 산모 체형이 큰 것도 아니고, 골반이 좋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애가 작은 것도 아닌데 이렇게 빨리 진행된 건 순전히 아기의 의지가 커서 그랬을 거예요. 아기에게 고마워하세요.”

후처리를 하며 의사가 말했다. 그냥 좀 수고했다고 말해주면안 되나. 아, 둘째 임신해서 출산하게 되면 진통 시작되자마자 병원 오라는 말도 덧붙였다.


분만 전에 회음부 절개를 했는데 아기가 빨리 나오면서 다른 부분을 찢었다고 한다. 그래서 두 군데를 꿰맸다. 묵직한 태반이 빠져나가고 질과 항문에 이런저런 처치를 하는 동안 나는 힘을 쭉 빼고 가만히 누웠다.

다 끝났다.


간호사가 밀어주는 휠체어를 타고 입원실로 갔다. 남편이 벌써 짐을 정리하고 앉아 있다. 그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말했다.




둘째는 없어.





나는 잠시 눈을 붙였다. 놀랍게도 또 애 낳는 꿈을 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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