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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의 선율을 따라 흐르는 빛

포르투의 까사 다 뮤지카 (Casa da Musica)

by 김보아


"아름다움은 혼돈의 재조정이다" -렘 쿨하스


지난봄 포루투 여행의 기억에는 렘 쿨하스가 설계한 까사 다 뮤지크 콘서트홀이 인상 깊게 남아있다. 포르투 여행 계획이 있다면 꼭 음악회에 참석하지 않는다고 해도 한 번 들러볼 만한 공간이다. 평범한 포르투 주택가를 벗어나자 광장 너머로 얼핏 보이는, 형상부터 심상치 않은 기운을 내뿜고 있는 비정형의 추상체가 마치 비상 착륙한 우주선처럼 표류하고 있었다. 나는 그 혼돈을 향해 걸었다.


건축의 외관, 주변을 둘러보고 바닥과 이어진 능선의 창을 들여다보며 내부를 상상한다 ©boah


건물을 향해 다가갈수록 더욱 그렇게 느꼈던 것은 마치 지구 내부의 힘에 의해 지면이 들어 올려진 것 같은 광장의 바닥면 때문이었다. 광장의 바닥은 자유로이 솟아올라 마치 언덕처럼 방문객을 이끌었다. 그렇게 바닥을 따라 올라가면 바닥이 외부 카페의 지붕으로까지 연결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된다. 바닥재는 밝은 색조의 트라버틴 석재로 직사광을 받으면 부드러운 난반사를 일으켜 광장을 더욱 환하게 하는데 내가 방문한 날은 비 온 뒤 젖은 상태라 석재 표면의 색이 짙어져 있었다.


주출입문을 열고 건물 안으로 들어서면 카페가 있고 한 층을 더 올라가야 음악당의 로비와 마주한다. 외부와 접한 카페의 유리창은 바깥쪽에서 안쪽으로 깊은 경사를 이루고 있어 외부의 공간이 훨씬 더 안으로 끌어당겨져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카페 내부가 외부로 튀어나가 있는 것 같기도 한데 광장의 바닥을 이루고 있는 트래버틴이 카페의 바닥까지 밀려들어와 있어 공간의 흐름이 단절되지 않고 흘러가는 모양새가 편안하였다. 막상 안으로 들어가 보니 외부에서 바라보았을 때 다소 폐쇄적으로 보였던 것과는 달리 외부와의 연결성이 강조되어 개방감이 느껴지고 오히려 더 밝고 경쾌한 느낌마저 들었다.

1층의 카페에서 에그 타르트 하나와 커피, 혼돈속에서도 포르투의 정체성을 살아있다 ©boah


이 콘서트홀은 메인이 되는 홀뿐만 아니라 다양한 용도의 공간들(교육, 콘서트홀, 소공연장, 녹음실, 클래스룸, VIP룸, 테라스) 등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어느 한 공간 놓칠 수 없이 모두 다채로운 형태와 마감재로 계획되어 있었다. 특별히 자연광이 들어오는 창의 형태도 내부의 형태의 한 부분으로서 존재감을 가지고 있었다. 비정형의 내부에 어우러진 비정형의 창은 외부 풍경의 조각을 내부의 일부로서 받아들였다.


비틀어지고 기울어진 면에 닿는 빛은 공간의 입체감과 깊이, 윤곽을 더욱 강조한다. 방향성이 뚜렷한 자연광은 이러한 환경에서 더욱 강한 명암을 만들어 내기 때문에 구조적 형태가 더욱 또렷해지는 것이다. 개구부의 형상과 크기에 따라 빛의 패턴이 공간에 부여하는 독특한 리듬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이 콘서트홀에서 나의 시선을 끌었던 것은 다채로운 재료의 사용이다. 각 공간의 특성에 따른 재료의 이해는 공간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로비에 들어선 순간 나는 다시 한번 이 공간과 이 도시사이에 이질감을 느꼈다. 로비의 바닥과 벽에 사용된 알루미늄의 산란과 반사, 부분 투시로 나의 모습이 여러 겹으로 공간에 떠다녔다. 반사된 빛과 그림자가 공간에 들어선 나와 공간을 이루는 요소들을 중첩시켜 신비하고 비일상적인 공간으로의 진입을 암시하는 것 같았다.


자연광과 인공광의 어우러짐은 공간을 마감하는 재료인 알루미늄과 메탈이 마감된 면면에서 빛을 조율해낸다 ©boah


오렌지룸은 아동체험공간으로 반사율이 낮은 카펫과 월 워셔 (wall washer) 조명으로 공간에 부드러움을 더하였다. 보라색의 방은 유아들을 돌보는 공간이었는데 눈이 편안하고 안정된 재료를 사용하였으나 형태만큼은 여전히 다이내믹하고 율동감이 있었다. 오른쪽으로 갈수록 점점 커지는 창을 통해 들어오는 자연광은 메탈로 마감된 천정에 반사되고 콘크리트와 카펫에 서로 다른 크기로 흡수되면서 공간에 다양한 질감을 만들었다. 공간이 만들어 내는 이 운동감은 아무런 장치 없이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아이들에게 놀이를 만들어낼 수 있는 공간이 될 거라 생각했다.


아동체험공간과 유아돌봄공간 ©boah


사이버 뮤직룸은 한쪽 벽은 돌출된 패턴의 고무, 폴리우레탄폼으로 마감되고 반대편은 노출 코크리트로 마감되어 이는 음향적 대비를 만들어내려고 하였다. 전면의 큰 창으로 들어오는 빛과 도시의 광경이 주는 풍부한 시각적 효과는 적당한 공연이 이루어지는 이 공간의 감성을 더욱 충만하게 하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몇 개의 빈 백이 바닥에 놓여있었는데 한 동안 앉아 도시의 정취를 감상하고픈 욕구가 올라왔다.

초록의 고무 폴리 우레탄벽을 손으로 누르면 폭신하고 안으로 찌그러졌다. ©boah


메인 콘서트홀은 노르딕 파인합판이 주재료를 이루는데 부분적으로 벽면에 골든 펠리클(golden pellicle)이 적용되었다. 합판 위의 금속 박막은 움직일 때마다 빛을 반사를 달리하며 다양한 벽면의 표정을 만들어냈다. 그것은 마치 음표 같기도 하고 음의 파장 같기도 하고 이 형태가 벽면과 천장을 따라 흘러가는 모습이 무대에서 연습 중에 오케스트라의 선율을 형상화한 것 같았다.


무엇보다 이 공간의 정수는 거대한 물결무늬의 대형 유리창이 아닐까? 마치 음악의 선율처럼 메인 홀과 복도 그리고 외부창으로 흘러가는 이 물결은 자연광의 움직임에 따라 시시각각 변화하는 빛을 실내로 깊게 끌어들이면서도 음향 반사와 빛의 굴절과 산란을 만들어 내어 공간에 리듬감을 더하였다. 이 물결 모양의 유리 곡면은 콘서트 홀과 복도를 면한 벽뿐만 아니라 복도와 면한 외부벽에도 높은 천장까지 닿아 있었는데 콘서트홀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 주는 서정적 감성의 흐름과도 같았다.


메인 콘서트홀과 대형 유리 곡면들 ©boah



까사 다 뮤지크 콘서트홀의 경험은 마치 바로크 음악처럼 다채로움의 향연이었다. 렘 쿨하스의 상상력과 비범함은 중세부터 상업의 중심지로서 보수적이고 전통을 중요시하는 지역문화를 가진 포르투에 과거와 현재, 전통과 현재가 공존하는 도시로의 탈바꿈을 위한 시도였다. 이 공간은 단순한 공연장을 뛰어넘어 모든 계층과 세대를 아우르는 공간으로 변화를 만들어 내었다.

최상층 카페로 오르는 길에도 마감재와 색, 빛의 변주가 계속되었다 ©boah


낡은 트램 차고지였던 장소에 세워진, 마치 미래에서 온 운석의 한 조각 같은 이곳은 전통과 현재라는 시간의 개념의 차원을 훨씬 넘어선 공간으로 이미 그곳에 존재한 지도 한참이 지났다. 누군가는 역사적 맥락을 고려하지 않은 작업을 우려하고 누군가는 새로움을 향해 나아간다. 과거의 시간은 지나갔지만 여전히 현재에 머물러 있다. 우리는 과거로부터 이어진 모든 복합적인 환경과 더불어 확연하게 달라진 현재라는 시간에 머물러 있다. 렘 쿨하스는 아름다움은 혼돈의 재조정이라고 하였다. 시간은 흐르고 모든 것은 변화하며 빛은 여행한다. 때로는 진보하고 퇴보하지만 결국 그 혼돈 속에서 질서를 만들어 내고 새로움으로 재탄생된다. 삶은 혼돈이다. 우리는 그것을 재조정하고 질서를 만든다. 하지만 곧 혼돈으로 나아간다. 나는 그 흐름이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모든 것은 만난다. 공간이 사람을, 전통이 미래를, 그 안에 우리가 살아가고 까사 다 뮤지크는 그것을 이야기했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음악당을 나서는데 구불구불한 창의 곡면을 따라 흐르는 선율에 저 멀리 옛 포르투의 주택가의 모습이 함께 흘러가고 있었다. ©bo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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