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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아 Oct 26. 2019

빨간 구두, 보이지 않는 선을 넘다.


덴마크의 동화작가, 안데르센의 "빨간 구두"는 빨간 구두에 마음이 빼앗긴 소녀의 이야기이다. 생각해 보면 정말 잔혹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카렌은 구두를 가질 수 없을 정도로 가난했다.  우연히 손에 들어온 빨간 구두를 엄마는 탐탁지 않게  생각하셨고 카렌에게 신지 말라고 부탁한다. 카렌은 엄마의 장례식에 그 신발을 신게 되고 수많은 사람들의 눈총을 받는다. 엄마의 죽음 이후에 카렌은 양엄마 아래에서 성장하게 되는데, 양엄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엄숙하게 예배를 드려야 하는 성당에 빨간 구두를 신고 간다.  친엄마도 양엄마도 주변의 모든 사람들도 카렌에게 빨간 구두 대신 검정 구두를 신을 것을 요구했다. 그럴수록 카렌의 마음에는 온통 빨간 구두였다. 빨간 구두에 마음이 빼앗긴 카렌이 저주를 받은 것인지, 아니면 카렌의 마음을 빼앗은 구두가 저주를 받은 것 인지 모르겠지만 카렌의 발에 신겨진 빨간 구두는 제 멋대로 춤을 추기 시작하고 온갖 가시덤불과 험한 길로 카렌을 끌고 다닌다. 이제는 벗어 버리려고 해고 벗을 수 없는 빨간 구두는 카렌의 발에 완전히 달라붙어 버렸다. 너무나 가지고 싶었던 구두로 인한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카렌은 자신의 발을 잘라내는 선택을 한다.  

왜 하필 빨간색의 구두였을까?


빨간색이 상징하는 것은 다양하다. 흔히 빨간색은 관능, 퇴폐, 섹시함 등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혁명, 투쟁, 불, 죽음을 뜻하기도 하고 권력과 지위를 의미하기도 한다. 빨간색은 강렬함이다. 숨어 묻혀있지 않고 드러나고 외치고 군림하며 생동하고 번성하는 어떤 의지를 상징한다. 그것은 기존의 가치관이나 관습, 편견에 늘 대항하는 것이었고 독보적인 것이었고 특별한 것이었기에 그 선을 넘어가는 것은 위험할 수도 있는 것이었다.



한 7-8년 전으로 기억된다. 한국에 노스페이스 열풍이 불었을 때였다. 인터넷에 어느 고등학교 교실, 쉬는 시간에 아이들이 엎드려 자는 사진이 한 장 올라왔다.  모두 다 똑같은 검은색 노스페이스 패딩을 입고 있는 모습이었다. 교복 아닌데 교복 같았다.


 '그래...... 남들 다 입는 유행이라 안 입으면 큰 일난다 치자. 그런데 왜 다 검정이지?' 궁금했다.


알고 보니 패딩의 색은 아이들의 서열 즉 계급에 의해 정해진 다는 것이다. 오직 대장만이 빨간색을 입을 수 있고 그 아래 계급으로 내려가면서 주황이나 노랑 그리고 파랑, 검정을 입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동서양을 막론하고 왕족만이 빨간색을 입었던 전통을, 아이들이 이렇게 이어가고 있을 줄이야. 만약 일반 계급의 아이가 빨간색의 노스페이스 패팅에 눈이 멀어,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생고집을 부려서 학교에 입고 갔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그 빨간 패딩은 저주를 받아 그 아이를 영원히 춤추게 만들을 것이고 그 아이는 주변 아이들에게 잔혹하게 고통을 받다가 결국 빨간 패딩이 그 몸에서 뜯겨 나갔을 것이다. 또한  빨간 패딩을 입은 죄로 아이는 노스페이스의 머릿글자인 N를 빨간색으로 써서 가슴에 달고 다녀야 했을지도 모른다.


결국은 모두 선을 넘지 말라는 것이다.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에 동백이는 미혼모다. 고아로 자랐고, 두루치기와 술을 판다. 그녀는 늘 주눅 들어 살았다. 죄지은 것도 없이 죄인으로 살았다. 누구나 그녀를 만만하게 보았고 우습게 보았다. 어느 날 그녀는 그렇게 살지 않기로 결심한다. 당당하게 살기로 아니 그녀의 표현대로 막살기로 한다.

그다음 날 그녀는 빨간 원피스에 빨간 구두를 신고 당당히 동네를 다닌다. 자신이 정해 놓은 삶의 굴레, 지지리도 거지 같은 삶, 그 안에서 찌그러져 사는 게 맞다고 스스로 규정했던 삶에서 아니, 다른 사람들이 너는 당연히 그렇게 살아야 돼 라고 정해 놓은  선을 넘어 자신의 삶의 중심에 서게 된다. 어쩌면 동백이는 자신의 삶에서 조차 자신을 조연에 자리에 앉혀 놓고 주변인으로 살아왔을지도 모른다. 그 날 동백이는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누가 뭐라 해도 내 삶 속의 주연은 '나'다. 그러므로 내가 왕이고 빨간색은 내가 입는다."


빨간 옷과 구두의 동백이다. 동백이 표정이 "모두 당황하셨어요?"라고 묻는 듯하다



학년 초에는 학교마다 학부모 반모임이라는 것이 있다. 내 아이가 1년 동안 함께 학교생활을 같이 하게 되는 아이들의 부모모임이다. 대부분 엄마들이 참석한다. 간혹 아는 엄마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모르는 엄마들이다.  매우 긴장되는 모임이고 모두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해 노력하는 시간이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 날을 위해 엄마들은 일 년에 한 번 피부과를 다녀오기도 하고 입을 옷을 사기 위해 쇼핑을 가기도 한다고 한다.  

친한 친구가 학부모 반모임에 다녀온 이야기다. 유난히 얼굴이 어려 보이는 엄마가 있었는데, 엄마들이 다들 정말 동안이시라고 한 마디씩 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자 그분이,

" 제가 아직 출산 경험이 없어서요"

라고 대답을 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무슨 말인가 했다고 한다. 학부모 모임인데 출산 경험이 없다면?


"어젯밤 아들한테 제가 새엄마인걸 이야기를 해도 되는지 물어보았는데 괜찮다고 하네요"


이 어린 엄마는 자신이 불편했다면 굳이 참석하지 않아도 되는 자리에 참석했다. 외면할 수도 있는 모임이었다. 그리고 말하지 않아도 되는 사실, 자신이 새엄마라는 것을 얘기했다. 간혹 이렇게 말하는 분도 있다. 그런 얘기는 아이를 위해서 안 하는 게 좋다고...... 그런데 이 아이와 엄마는 그런 사회적 편견에 대해 자유로웠다. 자유로움은 당당함을 주었고 불필요한 걱정으로 스스를 괴롭히지 않았다. 남들이 생각하는 틀에 자신을 구겨 넣지 않고 그 선 밖으로 한 발자국 걸어 나와 더 넓은 세상과 만났다. 본인을 위해서 그런 얘기를 하는 건 좋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생각의 경계를 부쉈다.


그날 반모임 분위기는 어땠냐고요?

"그 날 분위기 너무 좋았어. 오히려 그 엄마 덕분에 더 마음이 따뜻해지고 서로 가까워진 느낌이었어. "

친구의 대답이다. 어린 엄마도, 그녀의 아들도, 그 모임에 있었던 다른 엄마들도 모두 멋지다. 아마 그런 엄마들의 아이들이라면 그 반 아이들도 모두 멋질 것 같다.


발목이 잘린 카렌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면서 살아간다. 성당에 살면서 봉사하면서 참회의 시간은 보낸다. 어느 날 이 정도면 깊이 반성했다고 생각한 순간, 여전히 춤을 추고 돌아다니는 자신의 잘린 발의 빨간 구두가 나타난다. 카렌은 다시 참회의 시간을 보낸다. 오랜 시간 끝에 결국 천사의 인도로 천국에 간다는 것이다. 나는 안데르센이 신을 참으로 옹졸하게 표현했다는 생각을 했다.  안데르센은 지독하게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의 특유의 감성과 예민한 정신은 그를 연기자로 또한 작가로 이끌었다. 그러나 사회적 지위에 따른 차별의 높은 벽은 늘 그를 좌절하게 했고 성공에 대한 집착 사이에서 늘 갈등하게 했다. 또한 그의 양성애적 성적 정체성은 그에게 깊은 죄책감과 고뇌, 불안의 요소였고 동시에 벗어날 수 없는 자신의 모습이었다. 카렌이 잘린 발로 살아가며 회개하는 모습은 안데르센 자신이 스스로에게 가하는 자학처럼 느껴진다. 그는 미운 오리 새끼가 아닌 백조로서 인정받고 싶었지만, 성냥팔이 소녀, 인어공주 속 주인공의 외롭고 슬픈 자아로 머물러 있는 듯하다.


어제 사랑하는 친구 J랑 저녁에 식사를 했다. 친구가 정말 빠알간 구두를 신고 왔다. 엄청 눈에 띄는 채도 100%의 진빨강의 구두는 정말 예뻤다. 우리는 신나게 거리를 걷고 맥주도 마셨다. 친구의 모습이 정말 행복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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