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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아 Jun 09. 2020

책거리가 좋은 이유,

세계를 담은 우리의 정물



서점에 들러서 계산을 하고 나오려는데 계산대 근처 진열대 위에 책 한 권이 나의 시선을 잡아당겼다.

 "책거리"

처음 책거리를 보았을 때 그림이 너무 모던해서 조선시대 그림 맞나? 고개를 갸우뚱했던 기억이 있다. 그동안 무수히 보아왔던 산수화의 먹색에 길들여져 있어서 책거리의 화려한 색감부터가 완전히 다른 존재감으로 다가왔다. 책거리는 일거리, 이야깃거리, 마실거리처럼 책과 관련된 여러 가지 물품을 그린 그림을 말한다. 그래서 책거리를 들여다보면 책과 더불어, 그 공간의 주인이 사용한 여러 가지 물건들을 볼 수있다. 대충 휘리릭 책장을 넘겨봐도 책가도만의 독특한 매력이 가득한 그림이 호기심을 자극한다. 잠시 걸음은 멈춰지고 눈은 책장을 넘기는 손길을 따라간다. 책거리는 공간을 그린 그림이지만 공간감을 표현한 능력, 그 공간의 가구의 형태  그리고 거기에 담긴 물건들을 보여줌으로써 그 공간의 주인공이 살았던 시대의 모습을 엿보는 재미를 제공한다. 그래서 이 책의 부재가 세계를 담은 조선의 정물화인 모양이다. 아무튼 나는 홀린 듯이 이 책을 집어 들고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책거리는 왜 그려졌을까?


아마 내가 책거리에 관심이 간 이유는 마치 이 그림이 3차원의 공간을 그린 투시도 같기도 하고 2차원의 입면도에 색을 입힌 것 같기도 해서, 공간 디자인을 업을 삼은 자로서 가질 수밖에 없는 본능적인 끌림 같은 것이 샘솟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책거리를 들여다보면 너무나 다채로운 물건들이 "나 여기 있어요. 나 이렇게 예쁘게 생겼고요. 이렇게나 멋들어진 색을 입고 있어요" 하고 말하는 것 같아 눈을 뗄 수 없다. 그러다 보니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책거리는 왜, 무슨 이유로 그려진 걸까?


그 시초는 정조의 학문 정치에 기인한다고 한다. 정조는 책을 강조함으로써 관료들을 교육하고 그것을 자신의 왕권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삼았다고 한다. 그래서 흔히 왕이 앉는 자리(어좌) 뒤에 놓이는 일월오봉도(달과 해 앞의 다섯 산봉우리를 그린 그림)를 치우고 과감하게 책을 주제로 한 책거리를 설치하여 물질보다는 학문의 숭고한 정신적 가치를 강조하였다. 그림을 통해,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표현하고 그것을 세상에 널리 알리려고 한 정조의 정치를, 윤범모(미술평론가)는 이미지를 통치술로 사용한 예라고 설명하였다.



정조가 추구했던 책거리의 모습, 그는 학문 정치를 표방한 이미지 통치술을 추구했다. (출처 : 책거리, 정병모 지음)



시작과는 다른 전개,


책거리에 등장하는 가구는 청나라의 다보각경이라는 가구의 영향을 받았다고 하고 청나라의 다보각경은 유럽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책거리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2차원의 평면을 그린 것이 아니라 3차원의 공간감을 표현하고 있다. 3차원적 공간감은 원근법과 채색법을 모두 활용한 것으로서 르네상스 시대에 원근법을 발견한 부르넬리스키도 울고 갈 만하다. 지금은 당연한, 가까이 있는 것은 크게 드리고 멀리 있는 것은 작게 그리는 것이 그 당시에는 왜 그렇게 어려웠을까? 피렌체에 있는 산타 마리아 누벨라 성당에 있는 마사초의 "성삼위일체"는 르네상스 시대에 그려진, 원근법에 기초한 그림이었다. 그 그림이 처음 그려졌을 때 사람들은 공간감에 감탄하며, 그림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 아니냐며 놀라워했다고 한다. 이탈리아 사람들, 너무 능청이 심한 것 같아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던 기억이 있다.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원근법이 발견된 이유에 대해 김진영 선생님(미학자)는 인간의 시선이 신중심에서 비로소 인간 중심으로 옮겨져 왔기 때문이라고 했다. 고개가 끄덕여진다.  르네상스 이전에는 모든 것이 신중심이었기에 인간이 사물을 바라볼 때도 신의 시선에서 바라보려고 했다. 그 예로 미켈란젤로의 피에타가 완성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그 조각상을 보고 비례가 맞지 않는다며 혹평을 했고 이에 미켈란젤로는 너희같이 미천한 것들이 어떻게 나의 깊은 뜻을 이해하겠냐며 한 마디를 흘렸다. 피에타는 신의 시선에서 바라보아야 하기 때문에 위에서 보아야 한다는 것! 위에서 보면 그 모든 것이 설명이 된다는 것이다. 이런 시간을 거처 르네상스에 이르러 사람들은 비로소 자신의 눈높이에서 세상과 자신의 관계를 가늠해 보게 된다.


이러한 영향이 청나라를 거쳐 조선에 이르렀을 때 그 반향이 책거리에 나타난 걸까? 책거리는 원근법뿐만 아니라 감추어 있던 인간의 욕망까지 드러내기 시작했다. 앞에서 언급한 것 같이 애초에 책거리가 만들어진 이유는 정조가 학문 정치를 확고히 하여 자신의 권력을 다지고 물질주의와 이교도의 문화를 배격하여 유교적 정신을 계승하고자 함에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인간의 시선이 중심이 된 원근법적 방법론은 그 틀 안에 인간의 욕망이라는 내용까지 담아오고 말았다.  


후기 조선의 사람들은 자신의 욕망에 대한 표현에 날개를 달았다. 그려지는 모든 물건이 하나도 빠지지 않고 모두 자기가 주인공인양 가장 화려하고 섬세하게 빛나고 있다. 그러기에 갈수록 책거리에는 채색화의  화려함이 가득해졌다. 청색과 보라의 신비하고 강렬한 색감, 섬세한 묘사가 넘쳤고 대상들은 빨강, 주홍, 초록, 보라, 연주, 파랑, 분홍, 겨자 등등 자신감 넘치는 색을 입었다. 활기가 넘치고 감각이 살아있는 물건들은 저마다 자신이 얼마나 행복하고 즐거운지를 말하고 있는 듯하다. 저자는 이를 가리켜 책거리는 '이념의 시대'에서 '물건의 시대'로 옮겨가는 변화의 신호탄이라고 했다.



조선후기로 갈 수록 책과 더불어 대항해 시대의 무역품들이 책거리에 등장했다. (출처: 책거리, 정병모 지음)



"조선의 역사 속에서 욕망과 도덕은 시소를 타는 상대적인 가치였다. 유교 도덕이 성할 때에는 욕망이 움츠리고, 욕망이 성할 때는 도덕이 한발 물러섰다. 조선사회는 물건을 통한 현실적인 욕망을 억제하고 유고적 이념이나 도덕적 가치를 중시했지만, 이러한 신화는 조선시대 허리쯤 네 차례의 전쟁을 겪으면서 점차 현실적 욕망을 추구하는 경향으로 바뀌게 됐다. 이런 가치관과 사회 변화상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그림이 책거리다."(책거리 중에서, 정병모 지음)



정신적인 학문의 가치를 강조했던 정조는 청나라의 영향을 받아 유행하기 시작한 모든 물건과 풍습을 경계하였으나 조선 후기에 이르러 활발해진 시장경제는 물건에 대한 관심을 촉발시켰고 물건을 소유하는 것이 새로운 힘의 표현이 되기에 이른다. 그 결과, 정조가 의도했던 통치수단으로써 책거리와는 거리가 먼 세계가 그려졌다.


정신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 중 무엇이 더 중요한 것인가? 정신적인 것은 가치가 있고 영원하며 물질적인 것은 무가치하고 순간적인 걸까? 그 둘은 분리되어 서로 대치하며 경쟁하는 관계일까?  어쩌면 그 둘은 애초에 하나가 아니었을까? 책거리를 들여다보니 정신과 물질이 함께 존재한다. 몸이 따라가지 않는 정신은 공허하고 정신이 없는 물질은 때론 천박하다. 인간은 어쩌면 이 둘 사이에서 늘 접점을 찾기 위해 고민을 쉬지 않는 존재일지 모른다. 늘 무엇으로든 어떻게든 자신이 생각하는 가치를 표현하기 위해 살아간다. 때로는 이렇게 그림이라는 이미지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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