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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아 May 31. 2020

그녀는 왜 가구박물관을 만들었을까?

사람, 장소, 환대 중에서, 김현경 저


16살의 소녀였던 자신에게 응답한 박물관


얼마전에 잠시 시간을 내어 한국가구박물관에 다녀왔다. 예약제로 이루어지는 박물관 투어는 한국어와 영어 두가지로 가이드투어를 신청할 수 있다. 성북동의 구불구불한 언덕길을 따라 한참을 올라가니 거의 꼭대기에 다달아서 작은 입구가 나타났다. 개량한복을 입으신 가이드분과 20명 남짓한 관람객들과 박물관의 마당을 밟았다. 사각거리는 마사토가 깔린 마당에 서서 한국전통주거의 마당과 정원에 관한 간략한 설명을 듣는 것으로 투어가 시작되었다.   


한국가구박물관의 정미숙관장은 어린 나이에 국비로 미국, 내슈빌이라는 곳으로 유학을 가게 된다. 60여년전 미국 시골마을에 동양인 소녀가 어디 흔했겠는가? 어린 소녀에게 사람들은 호기심으로 다가갔다. 그 때 그녀가 받은 수 많은 질문들 중 하나가 그녀의 마음을 흔들었다. "한국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나요?" 라는 질문이었다. 어린 소녀는 그 질문에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알지 못했다. 그 때까지 한 번도 고민해 보지 않은 문제가, 미국의 시골마을에서 외국인의 신분으로 살아가게 된 그녀에게는 자신이 풀어야 할 삶의 숙제와 같은 것이되었다. 한국으로 돌아 온 그녀는 그 당시 별가치없이 내버려지거나 판매되는 옛 가구들을 사모으기 시작했다. 그녀의 한국적인 공간에 대한 고민은 계속되었고 철거되는 한옥이 있다는 소식을 접할 때 마다 달려가 기둥과 서까래 등을 수집하였다. 그날 한국가구박물관에서 본 주거공간 10채는 그렇게 만들어졌고 20대 때 이미 2000여점의 가구를 수집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 덕분에 제주 휘가시로 만든 이층농, 거북이 등껍질로 만든 장, 보테가 베네타가 올고갈 만큼 아름다웠던 대나무로 엮어 만든 트렁크 모양의 가구, 오동나무로 만든 책함 무더기, 인두로 지져서 드러낸 나무의 무늬가 아름다웠던 삼층장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예비신부에게 보내는 함, 탕건통, 영전함, 초상화 보관함, 교지함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는 함의 세련되고 담백한 디자인이 유난히 나의 눈길을 끌었다. 가구마다 담겨있는 이야기가 다양하고  만들어진 재료의 대한 이야기는 단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을 만큼 재미있고 풍성했다.


투어의 마지막에 다달았을 때 우리는 남산의 부드러운 능선이 흘러들어오는 안채에 앉아 창 문을 열고 창 가에 기대어 앉았다. 창의 높이는 낮은 문갑과 앉은 사람의 팔꿈치와 정확하게 맞닿아 턱을 괴고 창 밖을 바라보기에 제격이었다. 좌식 생활에 맞게 앉은 사람의 눈 높이를 고려한 가구와 창호의 높이, 방의 크기가 비로서 편안하게 느껴지며 그 옛날 한국사람들이 어떻게 생활했는지가 한 눈에 들어왔다.  한국주거공간의 스케일과 가구의 형태, 크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우리의 고가구를 한국전통 공간안에 전시하고자 했던 관장의 노력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이 공간은 16살, 미국이라는 낯선 공간에서 외국인의 신분이 되었을 때 받았던 질문, 결국 "너는 누구니?”에 대한 답을 찾기위해 평생 성실하게 응답한 결과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가구박물관에 대한 기사를 찾아보니 해외유명인사들의 방문 뿐만 아니라 구찌와 같은 유명브랜드와의 협업을 통해 우리의 공간을 알리는 장소로서도 그 역할을 감당하고 있었다. 또한 CNN은 이곳이 "서울에서 가장 아름다운 박물관이며, 놀랍도록 감탄스럽다'라고 보도하기도 하였다.


한국가구박물관의 정미숙관장은 왜 그저 그녀의 삶의 한순간을 스쳐지나간 미국의 시골마을 사람들의 질문에 부담을 느꼈을까? 한국인들의 삶의 공간에 대한 그들의 질문에 답하는 것이 그녀에게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된 이유는 무엇일까?


. 박물관을 한옥으로 지어 우리나라 고가구를 들여 놓으므로서 한국인의 삶을 그대로 설명하고자 했다고 한다.   ©boah



(내부사진을 찍을 수 없어 인터넷에 공개된 사진을 첨부하였다. 이것은 책을 보관한 책함으로 오동나무로 만들어진 이 책함은 무엇보다 가벼워서 이동이 편리했고 인두로 지져서 해충에 강하다고 한다. 직접 전시된 것을 보면 가운데 달려있는 금속손잡이의 디테일도 정말 사랑스럽다. 손잡이를 잡고 위로 들어올려 안으로 밀어 넣으면 문이 열리는 형식이다. 무엇보다 그 옛날 이렇게 멋진 유니트 시스템을 사용했다니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제주 휘가시나무 2층농으로, 가운데 문을 옆으로 밀어 양쪽의 문과 겹쳐지면 한 번더 경첩을 중심으로 회전하여 밖으로 연다. 정말 훌륭한 디테일이다!)




그림자


"사람, 장소, 환대"(김현경 저)는 그림자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아델베르트 폰 샤미소 원작의 "그림자를 판 사나이"는 우리에게 "그림자"는 과연 무엇인가 고민하게 한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 슐레만은 어느 날 그 앞에 나타난 회색옷을 입은 사나이에게 그림자를 팔고 그 댓가로 끝없이 금덩이가 나오는 자루 하나를 얻는다. 그는 그림자 없는 부자가 되었다. 그런데 슐레만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어 보이는 "그림자"가 없다는 이유로 결혼을 거절당한다. 사람들은 차라리 대낮에는 거리를 다니지 않는 것이 어떻겠냐고 조언했다. 슐레만은 회색옷을 입은 신사를 천신만고 끝에 찾아낸다. 슐레만은 그림자를 되찾고 싶으나 금이 끝없이 나오는 자루를 반납해야 하는 선택의 순간을 맞이한다.  고민하는 슐레만에게 회색옷의 악마는 그렇다면 그림자를 빌려줄테니 대신 죽은 후에 영혼을 자신에게 달라고 한다. 슐레만은 고민한다. 그러자 회색옷을 입은 악마는 슐레만에게 이야기한다. "도대체 당신에게 영혼은 어떤 물건입니까? 그것을 본적이나 있습니까? 언젠가 죽을 때 그 영혼을 가지고 무엇을 할 작정입니까?......"


만약 내가 누군가를 만났는데 그에게 그림자가 없다면 어떨까? 책에서 그림자가 없는 슐레만을 보고 사람들이 느꼈던 꺼림직함의 정체는 무엇일까? 김현경씨는 그림자는 영혼도 아니고 육체도 아니지만 사람들 사이에서 살기위한 조건이라고 한다. 없어도 살아가는데 아무 상관이 없을 것 같은 그것이, 바로 내가 나로서 존재하는데 없어서는 안되는 그 무엇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출생과 동시에 그것을 소유하기 위한 투쟁을 시작했을지 모른다.


 


인정투쟁, 출생과 동시에 숙명처럼 우리에게 던져진 그림자


저자는 사람임은 일종의 자격이고 타인의 인정을 필요로 한다고 하였다. 어떤 개체가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사회안으로 들어가야 하며 사회가 그 이름을 불러주고 그에게 자리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람이 사람으로 인정된다는 것은 사회적 성원권을 인정받는 것이고 사회는 물리적으로 하나의 장소이기에 사람의 개념은 장소 의존적이라고 한다. 결국 우리는 우리가 속한 사회에서 타인과  상호인정하는 신호를 주고 받으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의미가 있음을 확인해 주기를 기대하며 살아간다는 것이다. 타인의 인정을 욕구하는 점에서 인간은 다른 동물과 구별되며 떄로는 목숨을 걸거나 자신의 인생을 바꿀만큼 인정투쟁으로 자아를 확증하는 수단으로 삼기도 한다는 것이다.  




나를 나답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미국이라는 미지의 땅에서 도착한 외국인 소녀는 그 사회에서 자신을 마치 그림자없는 슐레만의 모습처럼 느낀 건 아니었을까?  그 당시 한국하면 떠오르는 건 한국전쟁, 전쟁고아 등과 같은 부정적인 이미지였고 그러한 낙인(Stigma)은 그녀의 자존감, 사람자격에 손상을 주었을 것이다. 미국에서 그녀는 우연히 우리나라의 오래된 문화재에 대해 이야기 할 기회가 있었고 그 이야기에 감탄하는 미국인들을 보면서 우리의 전통문화를 보존하는 것에 대한 가치의 중요성을 실감하게 되었다. 그래서 미국을 떠남과 동시에 그녀는 "그림자없는 인간"에서 벗어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자신의 그림자를 찾아가는 것에서 행복을 느끼게 되었다.


사실 슐레만의 "그림자"의 의미에 대한 생각은 의견이 분분하다. 누군가는 그림자가 육체에 가까운 어떤 것이나 영혼에 가까운 어떤 것 또는 그것들의 부속물이어서 의미가 없다고도 한다. 그러나 아무리 돈이 많아도 그림자가 없으면 배척을 당하는 것을 보면 영혼보다는 육체에 가까운 어떤 것으로 사람들 사이에서 살기위해 갖추어야 할 조건같은 것이라는 의견에 동의가 된다. 나는 정미숙관장이 그림자를 "나를 나답게 하는 것"으로 보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것을 찾아가는 것이 그녀의 삶에서 무엇보다 중요했고 그 결과로 한국가구박물관을 만드는 데까지 이르게 되어 그곳을 방문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게 되었다. 남에게 나를 보여주기 위해 발버둥치며 따라가는 허상이 아니라 나를 나답게 하는 그림자를 따라갔던 삶, 그녀가 답한 그 공간이 아름다웠던 이유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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