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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아 Dec 02. 2019

누구의 얼굴일까?

영국의 리빙 디자인 편집샵인 콘란 샵(Conran Shop)이 얼마 전에 서울에 오픈했다.  오픈 전 운이 좋게도  그 앞을 지나다가 마지막 벽 페인팅 작업을 하는 것을 우연히 사진으로 담아두었었다.



1층 가구와 소품 코너에서 나의 눈길을 가장 끈 것은 익숙한 모습의 포르나세티(Fornasetti)의 캔들이었다.  캔들에 그려진 수수께끼 같은 여성은 오페라 가수 리나 카발리에리(Lina Cavalieri)이다.



 이 아름다운 여성의 얼굴을 처음 본 것은 수년 전에 RISD(Rhode Island School of Design)를 방문했을 때였다. 화장실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던 그녀의 얼굴은  몽환적이면서 비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자세히 보면 모두 같은 형태의 눈인데 그림마다 제각기 다른 감정을 담고 있는 듯했다.


RISD(Rhode Island School of Design)의 화장실 벽면



리나 까발리에리는 1874년 이탈리아의 라티움(Latium)에서 태어났다. 불행하게도 15세에 부모를 여의고 카톨릭계 고아원으로 보내진다.  보수적이고 엄격한 규율과 통제 속에서 지내야 했던 리나는 그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그녀의 동네를 지나가던 유랑극단을 따라 살던 곳을 떠난다. 그 후 그녀는 파리로 진출해서 정통 오페라를 배우고 오페라 가수로 성공하게 되고, 그 후 미국으로 건너가  영화배우로서의 삶을 살아가기도 한다. 그녀가 뉴욕에 머무는 동안 뉴욕의 신문들은 그녀를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라 칭송할 만큼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4번째 남편과 결혼 후 다시 이탈리아로 돌아오는데 2차 세계대전으로 황폐해진 조국에서 간호사로 자원봉사를 하다가 폭격으로 사망한다.



끝없는 변주

리나 까발리에리는 자신에게 주어진 현실에 순응하기보다는 자신 안에 내재된 모습을 찾아가기 위해 새로운 곳으로 떠나는 일을 주저하지 않았다.  그녀는 늘 떠났고 늘 변화하려고 했으며 그녀의 그러한 의지는 사회의 구조나 관습, 편견에 넘어서는 것이었다. 이탈리아 예술가, 포르나세티는 리나 까발리에리의 사진을 프랑스 잡지에서 발견하고 그녀의 매력에 사로잡히게 된다. 일생동안 자신의 삶을 치열하게 살아냈던 리나의 모습은 포르나세티의 작품 속에서 끝없이 변주되며 재현되었다. 이 광기 어린 예술가는 한 여성의 얼굴로 무려 350 가지가 넘은 모습으로 그려내었는데 그것이 ‘주제와 변형(Tema e Variazioni)' 시리즈다.  





현실과 상상의 경계에서 탄생한 독창성


포르나세티가 그녀를 알아본 것은 우연이 아닌 거 같다. 그는 "동시대에 부응하느니 키치라는 상상의 세계에 살겠다."라고 할 만큼 당대의 구태의연한 방식을 따라가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는 사물을 사실 그대로 구현해 내는 것보다 그 사물이 자기 자신 속으로 들어와서 자신의 무의식과 융합되어 어떤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그려지기를 바랐다.  또한 프로이트에게 영향을 받은 그는, 우리의 모든 행동은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 안에 내재한 무의식에 영향을 받아 비롯된 것이라고 믿었다. 따라서 사물을 깊이 있게 관찰하되 그것이 우리의 내면 속에서 새롭게 변형되어 다시 구체화되는 것이 실재를 그대로 구현하는 것보다 더욱 현실적이라고 믿었다.


"우리의 내적 세계는 눈에 보이는 세계보다 더욱 현실적이다" (샤갈)


같은 사물도 포르나세티의 상상력과 어떻게 만나느냐에 따라 늘 새롭게 구현되었다. 그의 작품은 매우 사실적이나 현실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상상의 세계와의 교묘한 접점에서 자유롭게 존재하였고 그 경계지대에는 늘 새로움이 가득했다. 현실과 상상의 두 세계를 넘나들며 합리성과 비합리성이 공존하는 또 하나의 세상을 만들어 갔다. 그는 과히 20세기 르네상스맨이라 불리기에 충분했다.


너무 현실만 바라봐도 세상은 재미가 없다.  현실에 상상을 조금 더 한 세상은 더 자유롭고 즐거울 수 있다.  이성과 지성을 뛰어넘은 상상의 세계로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포르나세티의 작업 속에 나타난 리나 까발리에리의 모습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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