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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아 Jan 30. 2020

사람과 자연의 조응이 선사한 기억,

제주 유민 미술관에서 걷다



#0


바람이 그래도 제법 부는 날이었다. 겨울의 한가운데서, 해변가로 향하는 길인데 바람이 불어오는 것은 이상할 것이 없었다. 더욱이 제주 아닌가? 흔들흔들 갈대밭을 지나면서 보이는 유채꽃이 계절을 잊게 한다.  한 겨울의 추위에, 바람에 볼이 시려도 노오란 유채꽃이 생긋거린다.  정말 제주로구나!


언덕을 오르자마자 안도 타다오의 유민 미술관을 보기 위해 목을 빼고 주변을 살폈다. 하지만 아무리 둘러봐도 언덕의 능선을 따라 펼쳐진 바다와 하늘 그리고 노푸른 유채꽃만이 끝이 없었다. 하늘과 마주하고 바다와 인사를 하다 보면 유채꽃이 손짓을 한다. 그렇게 천천히 제주의 자연에 다가가는 것이 미술관까지 이르는 과정이었나 보다. 미술관은 마치 언덕의 한 부분 인양 나지막이 능선을 따라 흐르고 있었다.





#1

미술관의 얼굴은 반듯했다. 멀리 유채꽃밭에서 바라본 유민 미술관의 정면은 마치 언덕의 함께 그려진 그림처럼 자연스러웠다. 길고 긴 노출 콘크리트 벽면은 하늘과 지면 사이에 경계선을 그으면서도 도드라짐이 없었다. 건물의 우측에서 천천히 입구를 향해 걸으면, 내부에 대한 궁금증 때문에 급해진 마음의 박동이 느려진다.  오른편의 노출 콘크리트 벽면을 따라 벽면에 좁다랗게 부착된 거울을 통해 반대편의 모습이 반사되고, 제주의 돌로 쌓인 낮은 담장에서 현재와 과거가, 사람과 자연이 묘하게 어우러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2

원래 이곳은 오사카 출신의 건축가 안도 타다오(Ando Tadao)의 작품인 지니어스 로하이(Genius Lohi)라는 이름의  명상센터였다. 2017년 유민 미술관으로 변경되면서 내부의 설계 계획은 덴마크의 요한 칼슨 (Johan Carlsson)에게 맡겨졌다. 입구에 들어서면 미술관의 오피스가 있고 바로 왼편으로 언덕을 돌아 내려가게 되어있다. 미술관까지는 한 참을 걸어 내려가야 했는데 이는 안도 건축의 특징인 "건축적 산책"의 개념이 내포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건축적 산책은 건축의 개념에 "시간"이라는 요소를 반영한 것으로 공간이 한눈에 파악되지 않고, 공간을 지나갈 때마다 시야가 변화하면서 눈 앞에 펼쳐지는 새로운 공간을 경험하게 한다. 입구를 지나면서 시작되는 안도의 산책의 개념은 자연스럽게 관람자를 아래로 이끌어 간다.





#3

제주의 돌, 바람, 꽃들이 지형의 생김에 따라 펼쳐져 있는 길을 지나면 멀리 거친 현무암을 쌓아 가로로 긴 벽면이 나와 대면한다. 중앙에 뚫린 작은 개구부를 통해 길이 이어지지만 멀리 서는 안쪽이 보이지 않아 가까이 다가 갈 때까지 그저 호기심에 걸음을 재촉할 뿐이다.





#4

마주한 거친 현무암 벽면 안쪽에는 노출 콘크리트 벽면이 겹처지고 좌우로 물이 쏟아지는 좁을 길을 지난다. 그러면 또 한 번의 노출 콘크리트 벽면이 서 있고 그리고 마지막에 다시 현무암으로 쌓여진 벽면이 켜켜이 공간을 분할하고 있다. 이 공간의 중앙에 서면 양쪽 경사면에서 시원스럽게 물이 흘러 바로 아래로 떨어지고 있다.  쉼 없이 떨어지는 물소리는 관람자에게 이곳을 통과하면서 마음속의 온갖 잡음을 다 씻어내도록 하는 것 같았다. 자연의 소리에 마음이 닿으면 감정이 이토록 흔들리는 걸까?  한참을 물소리에 마음을 내어주었다.




 #5

 이제 전시관 안으로 들어가는 건가? 생각한 순간, 나는 어느새 건물의 외곽을 돌고 있었다. 건축가는 쉽게 우리를 건물 안으로 걸어 들어가게 두지 않았다. 건축가가 의도하는 대로 나는 길을 따라 걸어야 했다. 코너를 돌 때마다 달라지는 하늘의 풍경, 제한된 시선은 걸음을 걷는 한 발, 한 발에 무게를 느끼게 한다. 안도 타다오는 이곳을 천천히, 아주 천천히 걸어보기를 바라지 않았을까? 느리게 걷는 것이 좀처럼 쉽지 않은 일상에서 벗어나, 건물 주변을 걸으며 제주의 바람을, 돌을, 하늘을 그리고 그 안에 있는 나를 고요히 느끼도록 이 길고 긴 공간과 시간을 선사한 것이리라.  

 눈이 내리는 날, 이 길을 걷는다면 어떨까? 봄바람이 가득한 날의 공기는 어떻게 다를까? 현무암의 불규칙한 표면에 떨어지는 빗소리는 콘크리트 바닥에 떨어지는 빗소리와 다를까?  길을 걷는다는 것, 길을 걸으면서 생각을 한다는 것은 얼마나 내 마음을 보들보들하게 하는 일인가 생각하며 안도 선생님께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6

 입구에 들어서자  노출 콘크리트와 현무암 벽이 좌우에 마주 보고 서있다. 이들은 서로 다르지만 결코 서로를 밀어냄이 없어 보인다. 

 내부는 원형의 코어 공간을 중심으로 공간을 십자형으로 구분하며, 나뉜 공간 속에 다른 공간들이 구획되어있다.

 1) 유민 아르누보 컬렉션

 2) 영감의 방

 3) 명작의 방

 4) 아르누보 전성기의 방

 5) 램프의 방




#7

 이 전시관은 고 유민 홍진기(1917-1986) 선생이 오랜 시간 수집한 낭시파(Ecole de Nancy)의 유리공예 작품들을 전시한 곳이다. 낭시파는 프랑스 북동부 로렌 지방의 작은 소도시 낭시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예술가들로 에밀 갈레, 안토닌 돔, 루이스 마조렐 등이 대표적인 작가이다. 여기서 전시관 초입에서 설명하는 아르누보에 대한 설명을 간단히 요약하는 것이 유용할 것 같다.


 아르누보(Art Nouveau)는 프랑스어로 새로운 예술이라는 의미인데 영국의 예술 공예 운동(Art & Craft movement)과 이색적인 동양문화에 영향을 받았다. 특히 1867년 파리 만국박람회를 통해 소개된 일본 예술품의 수입과 소비가 늘면서 자포니즘(Japonism)이라는 문화조류를 형성하였다고 한다. 자포니즘의 근원인 일본 미술과 미학은 자연과 인간이 시각적으로 조응하는데 중점을 두었다고 하며, 이는 일상에 예술과 자연을 투영하고자 했던 프랑스 낭시파 예술가들의 예술 개념과 상통한 것이었다 한다.  


 프랑스 아르누보의 미학적 배경에는 자연의 생명력을 예술작품을 통해 재창조하고자 한 상징주의가 있다.


 "자연 그 자체만으로는 아무런 감흥도 없다. 꽃과 나무, 나비와 잠자리, 바다와 하늘이 아름다운 이유는  그 자체가 아름답기 때문이 아니다. 우리가 이러한 자연을 통해 우리 자신의 정서와 경험, 기억을 들여다볼 수 있기 때문이다." (에밀 갈레, 1846-1904)  


에밀 갈레는 자연이 보여주는 상징체계를 낮은 자세로 들여다 보고 자연의 이치와 순리에 따라 인간과 자연이 조응(correspondence)하면서 만들어 내는 아름다움을 그의 작업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했다. 이는 안도 타다오가 건축과 자연 그리고 인간의 관계를 고심하며 구현해내고자 했던 것과 같은 마음이 아니였을까?


유민 미술관에 남겨져 있는 나의 감정과 깨달음, 기억은 오랫동안 나를 행복하게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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