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보아 Oct 22. 2019

새들은 평화를 노래하는데 우리는 길을 모르는 것 같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산 펠리프 광장, 작년 여름 가족들과 떠난 여행 중에 이 광장을 방문했던 기억이 있다. 이 곳을 방문했을 때는 이미 해가 지고 어두워진 시간이었다. 광장 주변의 레스토랑에는 사람들이 앉아 저녁식사를 즐기고 있었고 광장 한가운데 분수 주변에는 사람들이 삼삼 오오 모여서 여름날의 운치를 즐기고 있었다.  자유롭고 평화로운 여름밤의 공기가 그곳에 모인 사람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채우고 있었다.

 


산 펠리프 광장 한 켠에서 여름밤을 즐기는 사람들


그런데 이 광장의 벽면에는 슬픈 이야기의 흔적이 남아있다.  스페인의 독재자 프란시스코 프랑코(1892-1975)는 스페인 내전이 끝난 후 민주주의를 말살하고 그에게 반대하는 모든 세력을 폭력으로 진압했다. 반정부 성향의 언론사를 탄압하고 반정부 인사를 감옥에 잡아넣었다.  어느 날 산 펠리프 광장을 폭격한다는 소식이 들렸다.  언제 폭격이 가해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이 광장에 있는 초등학교의 선생님들은 아이들을 옆 건물 지하로 피신시키기 위해 아이들과 함께 광장을 내달렸고 하필 그때 프랑코의 폭격명령이 떨어졌다. 어리고 여린 꽃들이 무참하게 광장에 떨어지고 말았다. 우리는, 그 옛날 폭격으로 인해 부서진 벽면과 바닥이 그대로 남아있는 공간에서  처참했던 그 순간의 슬픔을 느꼈다. 살기 위해 달렸던 순간에 아이들이 느꼈을 두려움과 공포가, 깨지고 부서진 벽면과 깊이 파인 바닥에 남아 있는 듯했다.  우리는 그 광장에서 파블로 카잘스가 연주한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들었다.  귀에 익숙한 그 곡은 딸아이가 어린 시절 첼로를 배울 때 열심히 연습하던 곡이었다. 무척이나 더웠던 어느 해 여름, 가을에 있을 교내 음악 경연대회를 준비한다고 같이 땀을 흘리며  열심히 활을 그어댔던 곡이었다.


폭격의 흔적을 만져보는 아이들


이곡의 연주자 파블로 카잘스는  스페인 카탈루냐 마을 가난한 오르간 연주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1889년 파블로 카잘스가 열세 살 되었을 때, 바닷가 어느 책방에서 그는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발견한다. 그 당시 단순한 첼로 연습곡 정도로 여겨지던 이 곡을 무려 십이 년 동안 연습한 후, 공식적인 연주회를 갖는다. 그는 스페인의 왕정 통치 하에 있었지만 자신만의 문화와 언어를 가지고 독립과 자유를 열망했던 카탈루냐인이었다. 그는 주권을 빼앗긴 민족의 슬픔과 늘 치열하게 싸워야 했다. 제1차 세계대전, 스페인 내전, 제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자유를 빼앗긴 민족의 처참한 현실도 겪어내야 했다. 카탈루냐의 비극을 알리고 민족의 독립을 지키기 위해 사력을 다했던 그는, 자신을, 생존을 위해 쉼 없이 노동하는 연주하는 육체노동자라 칭했다. 그는 프란치스 프랑코의 독재에 항거하였고 산 펠리프 광장에서 죽어간 어린 영혼을 추모하는 연주를 하게 된다. 존경받는 예술가로 자신의 유익을 도모하며 안정된 삶을 살 수 있었지만, 파블로 카잘스는 결국 프랑스의 작은 마을로 망명하게 된다. 그 후 꿈에도 그리던 고국에는 유골이 돼서야 돌아올 수 있었다. 그가 연주한 “새의 노래"는 그의 조국 카탈루냐를 그리워하며 타국에서 연주했던 곡으로 잘 알려져 있다.


"나는 동포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이렇게 끝맺었습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하고 싶습니다. 여러분도 우리의 옛날 노래인 "새의 노래"를 들을 때마다 우리가 간직하고 있는 카탈루냐에 대한 사랑의 목소리로 여길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 사랑의 감정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 땅의 아들임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한데 합치게 되고, 이제 모두 함께, 카탈루냐가 다시 카탈루냐가 되는 평화의 내일을 위해 하나의 신념 아래 뭉친 형제로서 노력하게 될 것입니다." ('첼리스트 카잘스, 나의 기쁨과 슬픔'중에서, 알버트 칸 엮음_ 김병화 옮김)


광장을 걸어 돌아 나오면서 우리는 건물 창가나 광장에 노란 리본이 걸려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는 카탈루냐의 독립을 위해 싸우다 투옥된 정치인들을 석방을 기다리는 카탈루냐 인들의 바람들을 걸어 놓은 것이라고 했다.



최근에 카탈루냐의 독립운동이 다시 거세지고 있다는 기사를 보았다.  스페인 대법원이 카탈루냐 자치 정부 지도자와 시민운동가에게 징역 9년에서 13년의 중형을 선고한 이후 체포된 인사들을 석방하라는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시위대가 도로와 철도를 점거하고 차량에 불을 지르며 강경 시위를 벌이고 있으니 여행을 자제하라는 경고의 내용도 있었다.


독립을 원치 않는 자들과 독립을 향한 카탈루냐 인들의 치열한 싸움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인간이 가장 행복한 순간은 자유를 느끼는 그 순간이라고 한다. 거꾸로 말하면 자유가 없다면 그 어떤 것으로도 인간은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 옛 날 산 펠리프 광장에 흐르던 파블로 카잘스의 평화를 위한 연주가, 오늘날 독립을 위해 싸우는 모든 카탈루냐 인들의 노래가 되어 광장에 울려 퍼지고 있다. 1973년 10월 22일 파블로 카잘스는 독립을 보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2019년 10월 22일, 오늘은 그가 세상을 떠난 지 46년이 되는 날이다. 오늘도 여전히 카탈루냐인들은 본인들이 그토록 원하는 자유를 갈망하며 하루를 살아야 할지 모른다.  


"나는 극단적인 민족주의에 대해 항상 반대하는 입장입니다. 어떤 국가의 국민도 다른 나라 국민보다 우월하지 않습니다. 다르기는 하겠지요, 그러나 우월하지는 않아요. 극단적인 민족주의자들은 자기들이 다른 국가를 지배할 권리를 가졌다고 믿습니다. 애국주의는 그것과는 전적으로 다른 것입니다. 자기 나라에 대한 사랑은 인간 본성 깊은 곳에 있는 것입니다."('첼리스트 카잘스, 나의 기쁨과 슬픔'중에서, 알버트 칸 엮음_ 김병화 옮김)


연주하는 파블로 카잘스

나라에 대한 사랑은 국민이라면 누구에게나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감정일 것이다. 모두 나라를 사랑하고 정의를 외치는데 국가 간 그리고 국가 안에서 매일 보이지 않는 전쟁이 일어난다. 요즘은 아주 작은 소모임에서조차 작은 다툼이 끊이지 않는다. 무엇 때문에 이렇게 싸워야 하는 걸까? 역사는 늘 이렇게 흘러갈 수 밖에는 없는 걸까? 과연 우리는 나날이 발전해 가고 있는 걸까? 세상이 급변하고 있는 것은 맞지만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도 답을 모르는 것 같다. 새들은 평화를 노래하는데 우리는 어떻게 해야 평화로울 수 있을지 아무도 그 답을 모르는 것 같다.


파블로 카잘스의 연주 "새의 노래"





매거진의 이전글 판테온은 옆모습을 먼저 보여주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