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보아 Feb 19. 2020

질투의 화신이 된 공간

JUUN.J fashion shop/Felt cafe


그저 골목길을 어슬렁 거리며 걸어 다니는 것을 좋아한다면 이상해 보일까? 하지만 그건 내 삶의 작은 즐거움 중 하나이다. 어딘가를 정해 놓고 찾아가는 것도 좋지만 막연히 골목길을 걸어보는 것도 좋다. 그러다 보면 나도 모르게 발길을 멈추게 하는 공간들을 지나게 되는데, 그날도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골목에서 살짝 비껴 들어간 길로 방향을 틀어 얼마 지나지 않았을 무렵 나는 발길을 멈추었다.



넌, 나만 바라봐!



© boah
© boah
© boah


뭐지? 저 검은 덩어리는?

검정의 매쓰감으로 주변의 시선을 압도하는 저 건물은 언제부터 있었던 걸까? 검정처럼 매력적인 색이 있을까? 검정은 침묵하는 어둠 같지만 힘이 있다. 묵직하고 은근한 힘으로 분위기를 가라 앉히고 오직 자신에게 집중하게 한다. 북유럽 지역에서 검은색은, 시기와 질투의 색이라고 한다. 그들에게 "검은 양말을 신었다"는 표현은 질투에 사로잡혔다는 의미라고 하니 정말 재미있는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이 건물은 마치 세상에는 오직 검정밖에 없다는 듯이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는데 "넌, 나만 바라봐"라고 외치는 질투의 화신 같았다.


뭐하는 건물인고?

검정의 건물과 콘크리트 바닥 사이에 그어진 선명한 노란색 주차금지 선을 넘어 입구에 들어섰다. 계단을 오르니, 오른쪽에 중정이 한눈에 들어오고 왼쪽에는 카페가 보인다. 카페 건물인가 하고 보니, 안쪽에 JUUN.J라는 패션 샾이 있다. 패션 샾을 휘리릭 둘러보고 카페,  Felt 안으로 들어갔다.



© boah



모두 밖을 보시오

카페 안으로 들어서도 온통 검정이다. 검정의 긴 카운터 위쪽, 길게 뻗어 올라간 천정은 외관에서 보았던 좌측 삼각지붕, 날카로운 형태의 정체가 무엇인지 말해주고 있었다. 좁고 긴 공간에 속에 가파르게 솟아올라간 천정의 끝에는 빛을 드리우는 천창이 가늘게 지나고 있었다. 루이스 칸이 "카라칼라 욕장을 보라...... 2.5미터라고 해도 목욕을 하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다. 하지만 45미터라는 높이는 우리를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만든다"라고 한 의미를 알 듯했다. 고정된 천창을 통해 들어오는 변화하는 자연광의 움직임은 검은색 공간에 다양한 표정을 그려내었다.  


주문을 하고 자리에 앉고자 했으나, 만석이었다. 좌석은 모두 2열로 창 밖을 향해 있다. 이곳에서는 손님이 자신의 시선의 방향을 결정할 권리가 없어 보였다.  자리에 착석함과 동시에 자연스럽게 시선은 창 밖을 향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여러 명이 앉아 대화를 나누기에는 불편한 구조다.  찬찬히 보니 그곳을 찾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혼자 앉아있거나, 많아야 둘, 기껏해야 셋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좁은 면적에 적절한 가구형태가 아닌가 싶었다. 여러 명이 와서 장시간 앉아 있게 하기보다는 간단히 차를 마시고 적당한 휴식과 대화를 마치면 스스로 일어나게 만드는 방식이다.  


© boah


공중부양 중인 나무처럼


그러면 이렇게 2열로 나란히 앉은 사람들은 무엇을 바라보는가? 창 밖에는 또 하나의 질투쟁이가 사람들의 시선을 독점하고 있었다. 카페에 앉은 사람이면 누구나 이것에 주목해야 하고 이것만 바라봐야 한다. 만약 그것이 불편하다면 사람들은 이곳이 찾지 않을 것이다. 당신이라면 어떤 장치를 하겠는가?


카페의 앞마당에는 붉은 돌이 마치 기름진 흙의 뭉치들처럼 가득 쌓여 있었고 나무 한 그루가 공중에 떠 있었다. 우리가 생각하는 나무의 모습은 어떠한가? 뿌리를 땅 깊숙한 곳에 감추고 몸체는 땅을 딛고 서 있어야 한다. 그런데 내가 보고 있는 나무는 그 모습이 다르다. 땅과 분리되어 공중부양 중이다. 아프리카에서는 검은색이 비옥한 토양의 색에서 유래되었고 다산과 변신을 상징한다고 하는데 나는 이 나무의 모습이 검정의 공간에서 피어난 풍요와 자유, 변화의 상징처럼 보였다. 이 초현실적인 풍광은 커피잔을 앞에 두고, 잠시 현실을 잊어버리고 싶은 사람들에게 막연한 상상력을 불어넣고 있는 듯했다.  


© boah



나는 꿈꾸듯 듯 창 밖을 바라보다 같이 간 친구와 검정 접시에 담긴 애플파이를 검정 포크로 맛있게 먹었다. 나는 친구와 현실적인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하늘에 붕 떠 있는 나무를 바라보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즐거워졌다. 나무 한 그루의 비현실성이  나에게 그토록 매력적으로 느껴진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얼음이 시원하게 담긴 검정 아메리카노가 비워질 즈음, 우리는 아쉬운 마음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카페를 나왔다. 마치 다시 현실의 문으로 걸어 들어가듯이......





매거진의 이전글 사람과 자연의 조응이 선사한 기억,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