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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아 Oct 17. 2020

나에게도 동네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어디 사느냐는 아주 조금 중요하다


그 시절의 골목길


드라마 "응답하라 1988"하면 떠오르는 공간이 있다. 등장인물들이 모퉁이를 돌아 화면에 등장하면 나타나는 장소, 그것은 골목길이다. 골목길은 외부에서 각자의 집으로 들어가기 위해 지나쳐야 하는 공간이다. 골목길을 지나치지 않고 각자의 집으로 들어갈 방법은 없다. 그 골목길은 어느 특정인에게 속해 있지 않은 공간이지만 그 골목길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그 골목을 자신의 골목이라고 느낀다. 대로변을 지나 골목길로 들어서면 이미 마음은 한층 친밀해진다. 집과 가까워지면서 골목길의 상점, 나무, 가로등, 벤치 등등은 나에게 좀 더 촘촘한 감정으로 다가온다. 자주 가던 상점이 없어지면 한동안 그 빈자리를 자꾸 쳐다보게 된다. 내가 아닌 누군가의 소유였고 지금도 나의 것이 아닌 그 공간이 자꾸 신경이 쓰이는 건 그곳에 나의 삶의 일부가 있었고 지금의 나는 그 순간을 포함한 시간들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응답하라 1988의 골목길 담벼락 한 켠에는 넓적한 평상이 있다. 그곳에서 정환 엄마, 덕선 엄마, 선우 엄마는 모여 앉아 나물을 다듬거나  간식을 먹으며 수다를 떤다. 엄마들의 대화는 지극히 개인적인 영역까지 넘나들며 그 수위는 늘 아슬아슬하다. 엄마들은 그 누구의 공간이 아닌 모두의 공간에서 더할 수 없이 편안하다. 일찍 퇴근하는 이웃집 아저씨 때문에 서둘러 자리를 피할 필요도 없다. 아이들도 어릴 적부터 그 평상에서 놀았다. 평상에 앉아 쭈쭈바를 먹으며 더위를 식히기도 했다. 그 후 보라와 선우에게, 평상은 설레는 첫 키스의 장소가 되었고, 덕선이에게는 둘째로 태어난 설움을 달래던 자리가 되기도 했다. 모두가 학교에 가고 없는 시간, 홀로 평상에 걸터 않아 우유를 마시던 택이가  큰 대자로 몇 시간을 누워있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곳, 그것은 골목길의 평상이었다. 


응답하라 1988, 골목길 속 평상 풍경들(images via goolge)



엘리베이터와 인터폰


나의 어린 시절에도 그 비슷한 골목길이 있었고, 동네에 있는 놀이터는 늘 우리들 차지였다. 특별히 약속을 할 필요도 시계를 볼 필요도 없었다. 그곳에는 늘 동네 아이들이 있어서 누구든 같이 놀 수 있었다. 저녁 먹으라는 엄마의 외침이 들릴 때까지 마냥 놀다가 집에 와서 밥 먹고 숙제하다 자면 그만이었다. 그러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아파트로 이사를 했는데, 엘리베이터라는 신기한 공간 속으로 들어가면 내가 7층으로 수직 이동되는 신기한 공간이었다. 예전에 살던 동네로 치면 엘리베이터가 골목길과 같은 것이었다. 위에 떠다니는 구름도 시원하게 부는 바람도 없어서 일까? 나는 지금도 이웃과 잠시 마주 하는 그 짧은 시간이 세상에서 가장 길고 지루하게 느껴지는 순간이다.  


아파트로 이사를 온 후 놀이터와 친해지기 전, 나는 인터폰이라는 새로운 놀이 수단을 먼저 체험했다.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와 책가방을 내려놓는데 웬만하면 울릴 일이 없던 인터폰이 울렸다. 연결을 부탁한 주인공은 107호에 사는 같은 반 친구였다. 전학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나는 그 아이를 잘 알지 못했다. 그렇게 뜬금없이 인터폰을 한 그 아이와 나는 한 시간 가량을 떠들었다. 그 후로도 107호에 사는 그 친구는 매일 나에게 인터폰으로 연락을 해왔다. 나는 아파트에 사는 애들은 으레 이렇게 노는가 보다 했다. 현관에 가방을 내려놓기가 무섭게 울리는 인터폰이 점점 친근해졌다.


늘 인터폰으로만 놀던 그 친구가 어느 날 아파트 놀이터에서 만나자고 했다. 나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놀이터로 달려갔는데 그 아이가 철봉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나에게 다음 주에 있는 철봉 실기평가 연습을 같이 하자고 했다. 내 어깨만큼 높이의 철봉을 거꾸로 올라가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오후 내내 애를 썼지만 선생님이셨던 그 친구의 엄마가 퇴근하실 때까지 우리는 성공하지 못했다. 친구는 아무래도 아침, 저녁으로 연습을 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우리는 학교 가기 전에 그리고 방과 후에 놀이터에서 열심히 철봉 연습을 했다. 그리고 우리 둘 다 무사히 시험을 통과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후 우리는 매일 놀이터에서 만났는데 정말 즐거웠던 기억은 놀이터 근처에 있는 고래등(아파트 변전실로 들어가는 건물 모양이 고래등처럼 생겨서 우리는 그렇게 불렀다)을 타고 오르거나 내리거나 하면서 함께 놀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날이 갈수록 아이들이 많아졌다. 재미있었다. 그것이 동네 친구들과의 마지막 기억 같다.  



동네 친구, 나에겐 욕심일지도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다시 동네 놀이터에 나가게 되었지만 직장생활을 했던 나는 아파트 놀이터 엄마들의 정규 멤버가 되기는 어려웠다. 학부형이 되어서는 동네 엄마들과 친하게 되고 가끔 만나기도 했지만 정기적이거나 미리 약속을 하거나 했던 것 같다. 아줌마가 돼서 동네 친구를 사귄다는 건 서로에게 동등한 시간과 관심에 대한 헌신을 전제로 했다. 어느 한쪽의 정성이 부족해지면 바로 정리가 될 수밖에 없는 관계다. 뭐가 그리 분주했는지 감히 그곳에 쏟을 시간도, 에너지도 난 늘 부족하다고 느꼈다. 한 발 물러선 듯한 나의 태도는 언제나 일정선을 넘지 않았다. 얼마 전 남편의 고등학교 때 친구가 같은 아파트로 이사를 왔는데 가끔씩 휴일 오후에 남편에게 동네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자고 하거나 저녁에 맥주 한 잔을 권하는 전화를 한다. 남편은 때로는 나가고 때로는 거절하는데 자신의 답변에 아무런 부담이 없어 보인다. 안전한 동네 친구가 생긴 것이다. 갑자기 없던 욕심이 났다.


아이를 어느 정도 키우고 나면 엄마들이 운동에 올인하는 경우가 많다. 가만 보면 요즘 동네 아줌마들의 사랑방은 스포츠 센터가 아닌가 싶다. 나는 주로 주말에 이용을 하지만 어쩌다 평일에 가보면 조금 과장해서 나만 빼고는 서로를 다 아는 듯하다. 한 번은 실내 자전거를 타고 있는데 아주머니 두 분이 나의 양쪽에 앉아서 끊임없이 담소를 나누시는 탓에 자리를 옮길까 말까 영 어색했던 기억이 있다. 대부분 중간중간 간식도 나눠먹고 이것저것 운동 프로그램에 함께 참여하면서 낮시간을 보내는 것 같았다. 특히 아주머니들이 대거 참여하는 줌바댄스 시간은 열기로 가득 차 유리문이 들썩들썩한다. 슬쩍 들여다보니 줌바댄스 강사의 가열한 목소리와 심장을 울리는 음악의 비트, 허공을 가르는 엄마들의 몸짓은 예사롭지 않아 보였다. 지인 중에 줌바댄스를 오래 하신 분이 있는데, 스포츠센터마다 고참들 서열이 명확해서 처음 수업에 들어오는 신참이 눈치 없이 앞줄이나 중앙에 섰다가는 바로 눈 밖에 난다고 귀띔해 주었다. 엄마들의 만남은 샤워실에서도 거침이 없다. 있는 그대로를 드러낸 자연인들의 오순도순 거림은 그곳에서도 여전히 진행 중이었다.  



그래도 언젠가는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생각해보면 "응답하라 1988"의 엄마들 사이에서도 아웃사이더는 있었다. 바로 몇 번 얼굴을 비추지 않은 도롱뇽의 엄마다. 도롱뇽 엄마는 보험왕이 될 만큼 일이 바쁜 사람이었다. 도롱뇽이 반항심에 가출을 하다 돌아와도 엄마는 아들이 가출한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조금 극단적이 설정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그 시절이라고 모두, 골목길과 평상이라는 낭만의 공간 속 주인공은 아녔다보다. 그 때나 지금이나 열심히 일하는 도롱뇽 엄마는 존재한다. 그리고 골목길과 평상이 없어졌어도 어딘가에서 이웃의 정을 나누는 덕선이, 정환이, 선우 엄마가 있을 것이다. 


이 나이쯤 되면 기존에 있던 친구들도 마음이 맞는 친구만 남기고 정리를 하는 시기인데 나는 왜 난데없이 동네 친구 타령을 하게 된 걸까? 가을이 와서 그런가? 코로나 때문에 깊어진 소외감 때문일까? 처음에는 동네 친구를 만나기 어려워진 것이 달라진 주거환경 탓이라고 생각했지만 글을 써갈수록 그게 다는 아니었다. 사람마다 다 각기 살아가는 방식이 있고 스스로를 만족시키는 가치도 다르다. 어떤 사람은 삶의 즐거움을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발견하고 또 어떤 이는 외부에서 흘러들어오는 즐거움에서 찾는다. 이 두 가지는 서로 상충되는 경우가 많아서 우리는 늘 선택을 해야 하고 나머지는 흘려보내야 한다. 아마 아쉽게 놓쳐버린 행복에 대한 아련함이 동네 친구에 대한 생각에까지 이르렀을지 모른다. 


이 계절이 지나가면 별생각 없어질지도 모르는, 나도 때로는 덕선이, 정환이, 선우 엄마 같은 동네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그런 생각.


응답하라 1988, 동네 친구들 (image via goog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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