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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아 Nov 13. 2020

나무가 비명을 지를지도 모릅니다.


나무 : 오래된 시간과 만나는 일


토요일 아침, 요란한 빗방울 듣는 소리에 잠을 깼다. 그날은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P소목장님의 공방견학일이었다.  코로나로 몇 번이나 연기에 연기를 거듭하다가 겨우 얻은 기회였다. 꼬불거리는 시골길을 따라 모퉁이를 돌 때마다 마음에 두근거림이 더해지는 것 같았다. 하마터면 지나칠 뻔 한 공방의 마당으로 들어서니 먼저 도착한 사람들이 우산을 쓰고 모여 있었다. 우리는 빗속에서 몇 분을 더 기다리다가 마당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마당의 울타리에는 이렇게 저렇게 생긴 나무 판재들이 길게 늘어서서 하염없이 비를 맞고 있었다. 나는 무방비 상태로 흠뻑 젖어들고 있는 나무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이렇게 비가 오면 오는 대로 눈이 내리면 내리는 대로, 바람이 불면 맞고 태양빛이 내리쬐면 그대로 쪼이는 나무들. 그 모습은 자신을 완전히 자연에 내려놓은 모습이었다. 나무는 "나무"가 되기 위해 이렇게 자연에 자신을 그대로 노출시켜 단련한다. 이렇게 나무를 건조하는 방법을 자연숙성법이라고 한다. 이 방법의 장점은 나무를 자연에 그대로 방치해서 그 지역의 기후특성에 맞게 나무를 서서히 적응시킨다는데 있다. 그러니 자연숙성법으로 나무를 건조하려면 얼마나 긴 시간이 필요할까? 나무가 자라 온 시간만큼은 아닐까? 참고로 나무를 건조하는 방법에는 나무를 베어 물에 담가 두면서 환경에 적응시키는 수침법, 나무를 끓는 물에 넣어 삶아내는 열탕법, 인공 건조법 등이 있다고 한다. 나무판재가 널려있는 울타리 근처의 창고와 처마 아래에는 이렇게 무방비의 야생에서 2-3년을 지낸 후 옮겨 온 나무들이 겹겹이 쌓여있었다. 자세히 보니 나무 판재를 쌓을 때 틈을 만들어 바람이 지나가도록 하였다. 이렇게 거반 외부와 비슷한 환경에서 습기와 바람에 노출된 판재는 또 3년을 보낸다. 이 과정에서 나무는 또 수축과 팽창을 반복하며 숙성된다. 그리고 다시 우리가 거주하는 실내의 온습도와 비슷한 창고 안으로 옮겨져서 또 수년을 보낸다. 이렇게 나무 내부에 있는 수분이 주변 환경의 습도와 평형을 이루는 상태(평형 함수율 조건에 맞는 상태, 보통 10-13%의 함수율을 이상적이라고 봄)에 이르게 되면 나무의 건조가 끝났다고 본다.  


P소목장님의 공방 주변에는 제자분들이 사용하는 목공방이 몇 개 있었는데 주말에 작업을 하고 계신 분께 몇 가지 궁금한 질문을 던졌다. "지금 만들고 계신 가구의 나무는 몇 년쯤 된 거예요?" 10여 년 정도 되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십 년 전에 처음 소목을 배우기 시작할 무렵 사놓은 나무를 가지고 지금 수납장을 만들고 있으며 지금도 틈나는 대로 나무를 사서 "나무가 되기를 기다린다"라고 했다. 가구를 만드는 과정에서 어떤 것이 가장 어렵냐고 물었다. 역시 "나무를 구하는 것"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P소목장님은 나무는 수입산이 아닌 그 지역에서 자라 자연 숙성된 것이라야 바로 그 지역에서 사용될 가구를 만들기에 적합하다고 믿고 계셨다. 그러다 보니 소위 좋은 나무를 구하고, 가구로 만들기 다시 숙성된 "나무"를 만들기까지의 시간은 험난하고도 오랜 여정이 될 수밖에 없다. 얼마 전에 소목장님이 지방에 좋은 나무가 있다 하여 큰돈(?)을 주고 샀다고 한다. 그런데 막상 나무를 가져다 켜고 보니 안이 텅 빈 상태였다고 한다. 나무를 베어 보기 전에는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것이 나무의 속이라고 하니 "나무"를 만드는 것은 시작부터가 쉬운 일이 아님은 틀림없는 것 같다.

창고에서 건조 중인 나무들. 바람이 들어가도록 판재와 판재 사이를 띄어 놓았다 ©boah
목장님의 제자들의 작업실. 옆에 세워 놓은 나무들이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boah



비명을 지르는 나무


얼마 전에 제작한 테이블이 겨울을 지나면서 상판이 쩍쩍 갈라지는 대참사가 발생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것도 여러 번 반복해서 같은 일이 일어나는 바람에 대대적인 보수작업을 했었다. 그런데 답답했던 것은 문제의 원인을 속 시원하게 찾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건조가 덜 된 나무를 사용한 탓일까? 그렇다면 유독 그 현장에 납품된 제품만 문제가 발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소목장님의 설명을 들으면 나무가 너무 많이 건조가 되어도 반드시 문제가 생긴다고 한다. 왜냐하면 나무와 접촉하는 공기의 수분함량과 불균형이 생기면 나무는 그 사이에서 수분을 흡수하면서 수축이든 팽창이든 변형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변화된 환경을 견디지 못한 나무는, 자신이 여전히 숨을 쉬는 살아있는 존재라는 걸 천명이라도 하듯 "쩌억" 소리를 내면서 갈라지는 것이다. 이렇게 전혀 예기치 못한 일이 발생하면 당황스럽기 그지없다. "집이 너무 건조해서 그렇습니다."라고 할 수고 없고 "나무가 살아 숨을 쉬므로 갈라지는 것은 당연합니다"라고 할 수도 없다. 터진 곳을 보수하고 계절을 나고 또 보수하고 계절을 나고 이러한 과정을 반복하면서 기다려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줄 고객이 어디 있겠는가? 일이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고객은 그 가구가 그 집에서 자리를 잡을 때까지 기다리고 기다려 주셨다.

터진 테이블 상판, 대참사였다 ©boah


P소목장님의 경우는 한강변에 있는 아파트에 가구를 납품한 적이 있었는데, 그 집은 강으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이 워낙 거세어서 한 여름에도 에어컨 생각이 안나는 집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바람이 문제였다. 짱짱하게 건조된 나무로 만들어서 최상의 컨디션으로 입주한 그 가구도 밤낮으로 불어오는 거센 강바람을 견뎌낼 재간이 없었다. 나무가 하루가 멀다 하고 '짜악 짜악' 비명을 질러댔으니 가구의 주인은 그것을 바라볼 때마다 "아이고아이고" 신음을 하지 않았을까?  나무는 충분히 긴 세월을 지나고 견뎌 새로 태어날 준비가 된 듯 보였지만 일찍이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환경은 나무에게 전혀 다른 도전이었을 것이다.




나무의 현재는 지나온 과거


나무는 그 안에 수분을 머금고 주변 환경에 기대서어 호흡을 한다. 베어지고 숙성이 되어도 그 안에 담고 있는 물기로 생기를 드러낸다. 나무의 틀어짐은 자신을 둘러싼 주변에 대한 반응이다. 나무가 갈라지는 소리를 내는 것은 주변과 습도를 맞추는 소리이다. 주변과의 어우러짐에는 고통이 따르며 매우 긴 시간을 필요로 하는 변화의 과정을 필요로 한다. 우리는 이 정도면 됐다고 생각하지만 나무는 아닐 수 있다. 우리는 우리가 정한 시간 내에 나무의 완벽한 죽음, 그리고 새로운 시작을 바란다. 그러나 나무의 시간은 우리의 시간과 다르게 흘러가기도 한다.


하나의 나무가 우리에게 올 때는 자라 온 나무의 세월이 함께 온다. 그 시간은 우리와 함께 보내는 일상 속에서 드러난다. 때로는 묵묵히 지내지만 때로는 불편함을 드러내고 아파서 드러눕기도 한다. 그건 여전히 나무가 살아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우리가 춥고 덥고에 민감해서 에어컨을 켜고 또 난방기구를 켜면서도 가습기를 찾고 또 통풍을 의해 환기를 시키며 우리의 거주환경을 조절하듯 나무에게도 그런 돌봄이 필요할 수 있다. 글을 쓰는 지금 나의 스튜디오에 작업 테이블로 사용하고 있는 테이블이 눈에 들어온다. 15년 전쯤 전에 소나무 집성목으로 제작한 테이블이다. 그 시절 주거 프로젝트를 하면서 꽤 많은 양을 납품했었는데 그중에 하나가 내 동생집에 보내졌었다. 거기서 10년의 시간을 보내고 내 스튜디오로 온 지 5년쯤 되었다. 지나온 세월 탓에 낡기는 했지만 오히려 오래된 나무가 주는 특유의 따뜻함과 정겨움이 늘 손끝에서 묻어난다. 어떤 세월을 거쳐 가구가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조금의 뒤틀림이나 터짐 없이 견고한 그 나무의 용모가 새삼 신기하고 대견해 보이기까지 하다.


15년째 쓰고 있는 사무실의 테이블과 벤치, 함께 보낸 시간이 묻어 난다 ©bo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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