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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스 Mar 22. 2020

Track.17 예술은 처절한 현실의 반증이다

프랑스 파리 Track.17 Si Tu Vois Ma Mere

2019.10.01 (화)
프랑스 파리 지베르니 & 오베르 쉬르 우아즈 & 베르사유 궁전 투어
Si Tu Vois Ma Mere - Midnight in Paris O.S.T




빛의 마술사라 불린 예술가의 정원


모네의 정원이 있는 지베르니

오늘은 파리의 외곽으로 먼저 나가보았다. 지난 여행 때는 가보지 못했던 베르사유 궁전을 가보기로 했다. 기왕 가는 김에, 베르사유 궁전과 함께 지베르니와 오베르 쉬르 우아즈도 갔다왔다. 따로 다녀오기엔 힘든 곳이라 투어를 통해 다녀왔다. 아침에 어스름이 아직 머물고 있는 시간에 개선문에 도착해 지베르니로 버스는 출발했다.


투어는 빛의 마술사라 불린 인상파의 아버지, 모네가 여생을 보냈던 지베르니, 고흐의 마지막 불꽃을 태우던 오베르 쉬르 우아즈, 그리고 프랑스 절대왕정의 상징 베르사유 궁전을 하루에 돌고 오는 일정이었다. 


개인적으로 오늘 일정에서 베르사유 궁전이 메인이었기에 지베르니와 오베르 쉬르 우아즈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예상과 다르게 지베르니와 오베르 쉬르 우아즈는 너무나 차이나는 두 화가의 일생을 엿볼 수 있었던 공간이라 기억에 남았다.


같은 인상파란 예술 사조여도, 초기 인상파인 모네와 후기 인상파인 고흐는 너무나 다른 일생을 살아간다. 먼저 모네는 50세까지 힘들고 가난했지만 작품을 인정받아 이후 지베르니에 정착하며 커다란 정원을 지닌 집을 가질 정도로 성공한 화가가 된다. 화가가 살아생전에 작품을 인정받아 부를 누리며 사는 경우는 드물다. 모네는 50이란 늦은 나이이긴 하지만, 그래도 말년에는 화가로서 명예와 부를 누리며 살아간다.


모네는 지베르니에서 빛이 반사되는 풍경을 커다란 캔버스에 담았는데, 그 작품이 오랑주리 미술관에 전시된 '수련'이다. 당시 녹내장이 있던 모네는 눈이 보이지 않는 순간까지 지베르니 물의 정원 풍경 속 빛을 캔버스에 담으려했다. 몸이 따라주지 않는 상황까지 처절하게 화가로서 소명을 다했다는 사실을 떠올리니, 말년에 여유롭게 그림을 그리는 작가의 모습이 아닌 처절하게 병마에 저항하는 작가의 모습이 떠올랐다.


오랑주리 미술관에서 볼 예정인 '수련'이란 작품을 앞두고, 지베르니에서 모네가 겪은 처절함을 미리 알았다. 처절한 현실의 반증으로 나온 걸작을 대하는 태도를 다르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현실의 반항가, 여기서 영면하다

빈센트 반 고흐가 마지막 일생을 보낸 오베르 쉬르 우아즈. 그는 동생 테오와 함께 밀밭을 바라보며 영면을 취해있다.


고흐, 생전에는 실패한 삶을, 사후에는 성공한 삶을 살아가다

지베르니에서 버스를 타고 오베르 쉬르 우아즈로 이동했다.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도 현실에 처절하게 저항한 화가의 이야기가 있었는데, 그 주인공은 바로 빈센트 반 고흐였다.


말년이라도 화가로서 명예와 부를 누린 모네와는 달리 고흐는 생전에 처절하게 실패한 삶을 살아갔다. 고흐는 화랑에서 화상(畫商)의 삶도, 아버지의 길을 따라간 목회자의 삶도, 그리고 여생동안 가난과 씨름하던 화가의 삶도 실패했다. 고흐는 그 누구도 알아주지도 않는 현실과 가난에 저항하며 평생을 살아왔다.


그는 마지막 여생을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서 보냈는데, 화가로서 그리고 인간으로서 처절한 삶을 살아간 그의 마지막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는 라부 여관에서 머물렀고, 좁디 좁아서 가장 저렴한 방에서 살았다. 허나 이마저도 월세를 못낼 정도로 가난했다. 그는 오베르 쉬르 우아즈의 교회나 밀밭에서 그림을 그리는 게 유일한 낙이었지만, 그는 자신의 목숨을 스스로 거두면서 삶을 마무리한다.


그는 살아생전에 단 한번도 화가로서 빛을 보지 못했고, 오직 친동생 테오만이 그를 인정해줄 뿐이었다. 그가 이승을 떠나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 영면을 취하면서 그의 동생도 옆자리에 함께 묻혔다. 오베르 쉬르 우아즈를 둘러보며 고흐의 말년에 감정을 이입해봤다. 대학교 교양수업에서 배운 고흐의 일생보다 더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처절하게 현실에 저항했던 고흐는 미술사를 대표하는 걸작을 남기고 갔다. 예술은 처절한 현실의 반증임을 배우게 된다.


너무나 대비되는 두 장소에서 살아간 두 화가의 모습을 알고나니 앞으로 가볼 미술관에서 그들의 작품을 그냥 지나칠 수 없을 듯하다. 모네와 고흐, 두 작가의 처절하고 일생을 받친 작품인 걸 알게 되었으니까.     






왕궁의 화려함 그 이면에 숨긴 처절함을 느끼면서


절대왕정, 그 자체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서 버스를 타고 베르사유 궁전으로 향했다. 오늘의 메인인 베르사유 궁전에서는 프랑스 절대왕정 그 자체를 볼 수 있었다. 솔직히 베르사유 궁전이 크면 얼마나 크겠어라는 생각을 가졌는데 그 생각은 입구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깨졌다. 가이드님의 추가적인 설명, 베르사유 궁전의 둘레는 34km인데 이는 파리 시내 둘레와 맞먹는 크기라고한다. 


유럽 대륙의 패권을 장악하던 프랑스 절대왕정 시기의 왕권은 상상 이상이었다. 각 방마다 다르게 꾸민 테마와 장식의 컨셉만 봐도 알 수 있었다. 특히 거울의 방은 그 중에서도 압권이었다. 끝이 안보이는 정원, 온갖 화려한 장식으로 꾸며진 궁전, 그리고 신의 자손이라 칭하며 짐이 곧 국가임을 선언한 왕가의 자부심을 보이는 베르사유 궁전이었다. 


베르사유 궁전의 화려한 모습은 오늘날엔 프랑스를 대표하는 관광지가 되었지만, 당시에는 백성들을 쥐어짠 산물이었으리라. 베르사유 궁전도 백성들의 처절한 현실의 반증으로 만들어진 화려한 결과물이었다. 강한 왕권과 패권을 쥐었던 왕조도 결국 국민의 손으로 무너지게 되니, 어쩌면 역사는 한치 앞도 내다 볼 수 없는 것 같다.  


아름다워 보이는 예술은 예술가의 처절한 현실의 사투 속에서 만들어진 반증이었다. 화려한 장식으로 꾸며진 절대권력의 상징인 궁전은 피땀흘려 쥐어짠 백성들의 고난으로 만들어진 반증이기도 했다. 지금은 걸작이라 칭하는 작품과 궁전에는 당대의 처절한 현실이 바탕이 되었음을 느끼게 되었다. 


오늘의 투어로 예술을 바라보는 시각이 조금은 달라진 듯했다. 예술 그자체를 감상하는 방법과 함께 현실의 고난에 처절히 대항하던 작가를 기리며 감상하는 방법으로 작품을 대할 듯하다. 


왜냐면, 예술은 처절한 현실의 반증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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