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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스 Mar 27. 2020

Track.22 선을 넘는 녀석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Track.22 타임라인-소란

2019.10.06 (일)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쁘띠 프랑스' 
Track.22 타임라인 - 소란




파리에서 동쪽으로 향하는 열차


어제까지의 파리의 낭만을 뒤로하고 아침 일찍 숙소를 나왔다. 아침부터 부슬부슬 내리는 비를 맞으며 파리 동역에 도착했다. 기차를 타려 역으로 가는 길은 항상 긴장의 연속이다. 혹시나 모를 소매치기에 바짝 긴장하며 무거운 캐리어를 낑낑 끌며 혹시나 연착되는 건 아닌지, 열차는 어느 플랫폼에서 타는지 확인하기 때문이다. 


무사히 열차에 올라타 자리에 앉은 나는 안도감을 느끼면서 역사 안에 있는 Paul에서 사온 크로아상과 커피로 간단하게 아침을 때웠다. 음악을 들으며 동쪽으로 향하는 열차에서 바깥 풍경을 보았다. 세계적인 대도시 '파리'에서 벗어나자 한적한 시골 마을과 산야가 펼쳐졌다.


파리 동역에서 떼제베 (TGV-inOui) 열차를 타고 3시간을 달려 도착한 곳은, 프랑스와 독일의 국경지대에 위치한 알자스 지방의 대표도시, 스트라스부르다. 알퐁스 도테의 소설 '마지막 수업'의 배경지가 된 곳도 스트라스부르다. 


스트라스부르는 역사의 흐름에서 땅의 주인이 계속 뒤바뀐 곳이다. 역사적으로 18번이나 독일령과 프랑스령을 왔다갔다했지만 2차 대전 이후부터는 프랑스령이 된 알자스-로렌 지방의 대표 도시다. 그래서인지 프랑스이면서 파리와는 다른 독일의 느낌이 한껏 풍겨온다.     







프랑스와 독일의 교차 지역


오스만 양식의 건물들이 일정한 높이로 길 따라 있는 파리의 모습과는 다르게 스트라스부르는 뾰족한 지붕과 목재가 드러난 게르만 스타일의 집들이 골목마다 놓여있다. 독일과 국경지대이다보니 거리에서 보여주는 모습이 묘한 감상을 불러일으킨다. 


스트라스부르의 전경은 우리가 떠오르는 프랑스 마을의 전형적인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독일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스타일의 건축물을 보기 쉽다. 나무 목재가 벽면에 드러난 건축물들로 도시들은 가득하다.


스트라스부르는 프랑스 속 독일과 같은 지역 같았다. 두 나라가 섞인 교집합 지역의 느낌은 새로웠는데, 아무래도 국경을 맞댄 지역이 없는 우리나라에선 느끼기 힘들어서 그랬던 것 같았다. 라틴의 프랑스와 게르만의 독일의 교집합 지역인 스트라스부르는 프랑스의 새로운 면모를 확인할 수 있게 해주었다.     



스트라스부르 노트르담 대성당





선을 넘는 녀석이 되는 날을 꿈꾸며


우리는 선을 지키기만 했지 넘을 순 없었다.

MBC의 ‘선을 넘는 녀석들’을 시즌 1부터 즐겨봤는데, 시즌 1에 프랑스와 독일 국경을 넘는 일화로 스트라스부르가 등장한다. 트램으로 스트라스부르와 독일의 켈을 다닐 수 있으며 너무나 쉽게도 국경선을 넘나들 수 있다. 실제로 스트라스부르의 정류장에서 트램 노선을 확인해보면 독일 켈이 종점인 노선을 볼 수 있다.


프랑스와 독일이 선에 관대한 대신, 우리는 ‘선’에 민감하다. 북쪽은 휴전선으로 막혀있다. 북쪽을 향해 선을 넘는 행위는 사상과 체제, 그리고 조국을 배반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금기되어왔다. 그렇기에 유럽에서 경험하는 선을 넘는 행위는 너무나 신기하면서도 부럽기도 하다.     


우리는 지금도 선을 지키면서 살아간다. 대한의 남아는 2년의 시간을 선을 지키는데 꽃다운 청춘을 받친다. 우리는 그렇게 ‘선’을 지키며 살아왔다. ‘선’은 다름을 구별하고, 국가를 구분한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선’은 언젠가는 넘어야 하는 과제이기도 하다. 왜냐면 ‘선’은 인간이 그은 ‘선’일 뿐이기 때문이기에. 





선을 넘을 수 있는 조건

그동안의 전쟁으로 반목이 심한 프랑스와 독일이 ‘선’을 넘을 수 있었던 건, 독일의 과거사 사죄와 두 나라가 세계적으로 도약하기 위한 사회적 합의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두 나라의 ‘선’을 넘는 행위는 이후 유럽 전체가 ‘선’을 넘는 첫 발걸음이 되었다. 물론 최근의 섬나라 하나가 나가겠다고 선언해버리긴 했지만.


‘선’을 넘는 행위는 반드시 두 나라간의 합의, 약속, 그리고 평화가 전제 조건이 되어야만 가능하다. 남한과 북한은 언젠가 반드시 서로의 ‘선’을 넘어 만나는 시간을 맞이해야만 한다. 하지만 그전까지 넘어야 할 ‘산’은 너무나 많다. 분명 시간도 오래 걸릴 거고, 과정 중에 잡음도 많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반드시 ‘선’을 넘어야만 한다. 


할아버지 세대가 ‘독립’을, 아버지 세대가 ‘산업화와 민주화’란 사명을 지닌 세대였다면, 우리는 ‘통일’이란 사명을 지녔다. 비록 취업난으로 대표되는 현실적 문제가 훨씬 더 닥쳐있지만, 이 땅에 태어난 이상 우리에게 부여된 사명을 손 놓고만 있을 순 없다.     


미국이 멕시코를 향해 벽을 쌓고, 자국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국가 이기주의가 다시금 고개를 드는 시대이지만, 언제까지나 ‘선’은 인간이 만든 것뿐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이와 같이 스트라스부르는 '선'에 대한 이야기를 내게 주는 도시였다. 스트라스부르와 쾰을 자유롭게 오고 가는 프랑스인과 독일인의 모습을 보면서, 언젠가 우리들도 자유로이 선을 넘는 녀석들이 되길 바랐다. 


자유롭게 선을 넘나드는 도시의 스토리를 느끼면서, 알쓸신잡3에서 유시민 작가의 말로 글을 마치겠다.


“벽을 쌓는 자가 지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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