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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스 Apr 01. 2020

Track.26 위대한 산 아래 작은 소년

스위스 인터라켄 Track.26  I (feat.버벌진트) - 태연


2019.10.10 (목)
스위스 인터라켄 뮈렌, 브리그, 그리고 쉴트호른
Track.26 I (feat. 버벌진트) - 태연




어제는 보지 못한 광경을 눈에 담기 위하여


마침내 바라던 꿈이 이뤄졌다. 

하루 종일 내리던 비는 오늘 아침엔 그쳤다. 아침에 비록 살짝 구름이 많기는 했지만, 비가 그친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드디어 스위스 알프스 산맥을 향해 가 볼수 있구나.


어제 제대로 돌아다닐 수 없던 아쉬움을 만회하려면, 각오를 단단히 해야했다. 어제 못 본만큼 알프스의 장엄한 산들을 눈에 담을 생각이었다. 하루 종일 산을 탈 각오였기에, 동행들과 함께 조식을 든든히 먹었다. 하루를 출발할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우리는 인터라켄 동역으로 향했다. 


오늘의 일정은 어제와 같이 라우터브루넨을 거쳐 산 정상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라우터브루넨역으로 가는 기찻길에는 부슬비가 내려 자욱히 껴있던 안개가 거쳤다. 라우터브루넨역에 도착해 큰 소리로 떨어지던 폭포수 소리를 들으며 케이블카 정류장으로 향했다.


우리를 실은 케이블카는 두둥실 점점 위로 향했다. 케이블카가 위로 향할 때, 내 마음의 기대와 설렘도 점점 커져만 갔다. 그리고 케이블카는 알프스 중턱에 위치한 뮈렌(Mürren) 마을에 도착했다.     





장엄한 산맥 사이 작은 통나무 하나

작은 통나무가 반겨주는 이 곳, 알프스로 향하는 작은 마을 뮈렌


뮈렌의 랜드마크는 작은 통나무였다.

뮈렌에 오면 꼭 가서 사진 찍어야하는 포토 스팟이 있다. 바로 작은 통나무다. 성인 한 명이 서있을 수 있는 크기의 통나무가 덩그러이 놓여있다. 어쩌다 나무가 잘려져 나간 작은 통나무는 거대한 알프스 산 계곡과 대비를 이룬다. 


뮈렌의 작은 통나무는 나에게 단순히 포토스팟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거대함을 앞두고 있는 작은 존재로 보여졌다. 나의 마음상태가 불안정한 미래를 앞두고 흔들려서 였을까, 장엄한 알프스 계곡을 앞둔 작은 통나무가 마치 나와 같았다. 


"꽃잎은 저물고 힘겨웠던 난 작은 빛을 따라서

아득했던 날 저 멀리 보내고 찬란하게 날아가"


오늘의 BGM으로 삼은 태연의 'I' 노래엔 위와 같은 가사가 흘러나온다. 아직은 닥쳐오지 않은 미래에 고민하고, 힘겨워하고 좌절하는 순간에도 난 뮈렌의 작은 통나무처럼 굳건히 미래를 마주할 준비를 해야했다. 그렇게 마음을 먹기 위해 난 여행을 떠났고, 여행길에서 뮈렌의 작은 통나무를 만났다. 


뮈렌의 작은 통나무는 '현재의 나'와 같으면서도, '미래의 나'가 되어야할 존재와 같았다.



  



공포를 견디고 나는 할 수 있다



어느 새 구름이 내 눈높이에 있었다.

뮈렌에서 다시 케이블카를 타고 점점 하늘 위로 향했다. 위로 올라가면서 시야가 달라졌다. 내 눈높이는 구름과 산봉우리와 맞춰졌다. 이번에 도착한 곳은 브리그(Brig)였다. 나는 브리그에 내리자 하늘과 더욱 가까워졌다고 느꼈다.


브리그에는 스카이워크 산책로가 있다. 발밑이 송송 뚫려있고, 외줄타기, 그물망 원통형 통과하는 등의 코스가  브리그 케이블카 정류장 주변을 둘러싼다. 고소공포증이 심한 사람은 정류장 밖으로도 나오기 힘들다. 물론 튼튼히 지었겠지만, 혹시나 싶은 마음은 공포로 돌변하기 마련이다.


나는 고소공포증이 심한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구멍 뚫린 스카이워크 산책로를 보면 오금이 저릿할 때가 있었다. 아차 싶어 발을 헛딛으면 골로 가는 상상은 마음 속 공포심으로 자리 잡기 충분했다. 동행들과 함께 스카이워크 산책로 코스를 완주했다. 외줄도 타고, 원통형 그물망도 통과했다. 물론 지나갈 땐 공포심이 가득해 심장이 뛰었지만, 완주했을 땐 짜릿함으로 심장박동이 바뀌었다.


브리그 스카이워크 산책로는 언뜻 보면 알프스판 유격훈련 느낌이 들었다. 물론 풍경은 비교도 못하게 아름다운 유격장이었지만. 두려움을 용기로 바꿀 수 있다면, 공포는 짜릿함으로 변한다는 사실을 몸소 체험했다. 그렇게 만년설로 뒤덮힌 유격장, 아니 브리그의 스카이워크를 돌아보았다.     



해발 2677m 위에 위치한 브리그 케이블카 정류장 (좌), 알프스판 유격장 (우)





빛을 쏟는 Sky, 그 아래 선 I , 꿈꾸듯이 Fly


드디어 산의 정점에 올랐다.

브리그에서 다시 케이블카를 타고 정상으로 향했다. 산의 정점에 다란 곳은 쉴트호른이었다. 쉴트호른은 영화 007의 촬영지로 유명한데, 스위스패스 소지자는 무료로 갈 수 있는 곳이었다. 쉴트호른의 전망대로 향하자 그동안 구름에 자취를 감춰있던 알프스 봉우리들이 나를 마주했다. 특히 아이거와 함께 융프라우 봉우리와 눈맞춤을 했다. 그 순간 난 산봉우리의 장엄한 기운에 그만 눈을 멎었다.


쉴트호른에서는 눈앞에 비현실적인 광경이 펼쳐졌다.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감흥이 솟구쳐올랐다. 너무나 멋진 풍경을 앞에 둔 사람들은 장관이 펼쳐진 믿을 수 없는 현실에 그만 잠시동안 실어증을 앓게 되어버린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카메라는 이 풍경을 담을 수 없었다. 


2970m 알프스 산의 정점 중 하나인 쉴트호른에 오르니 코 끝엔 한기가 시려온다. 쌀쌀함을 넘어 차디찬 공기가 정신을 차리게 한다. 피로에 찌들었던 눈은 시원해지고, 답답하게 숨쉬기를 하던 코는 통쾌한 기운을 받는다. 그리고 머리는 눈 앞에 보이는 만년설 산봉우리처럼 맑아졌다. 


쉴트호른에 발 딛은 이 날은 평생 잊지 못할 순간이 될 듯하다. 하늘은 빛을 쏟고 있었고, 그 아래에 난 서있으며, 마음은 꿈꾸듯이 날아갈 것만 같았던 이 날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아직 여행을 해야만 하는 이유

007 촬영지로 유명한 스위스 쉴트호른. 여기서 아이거, 융프라우 봉우리를 볼 수 있다



하늘 아래 장대하게 자리한 산들을 보며 인간은 얼마나 작은 존재인가

쉴트호른에서 바라본 알프스 산봉우리를 보면서 그 어떤 인간의 건축물보다 신이 만드신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꼈다. 거대하고 험준한 산들을 바라보는 작은 소년의 눈에는 그저 경외로움이 가득했다. 일상에선 느끼기 힘든 감정의 소용돌이가 형용할 수 없게 휘몰아쳤다.      


세상을 여행하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신이 창조한 세상을 탐방하기 위함이다. 인간의 힘으로 만든 문화의 도시에서 얻는 여행의 감흥도 있지만 신이 창조한 대자연의 감흥을 온몸으로 느껴보고 싶었다. 


거대한 산을 마주한 작은 소년은 생각했다. 우리가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를. 

내가 하고 있는 고민과 걱정은 거대한 산의 입장에선 얼마나 작게 보일까. 산의 입장에서 나를 바라본다면, 난 얼마나 작은 존재일까. 그동안 오만한 생각들로 가득했던 작디작은 소년은 아직 한참이나 어린 존재임을 깨달았다. '나는 하염없이 작은 존재이기에 어쩌면 내가 지닌 고민의 크기는 별 거 아닐 수 있음'을 산은 내게 아무런 말없이 그저 보여주고 있었을 뿐이었다. 대자연이 주는 지혜에, 여행오길 잘했다는 보람을 느꼈다.


세상은 너무나 아름답고, 신이 창조하신 지구를 나는 아직 1/4도 보지 못했다. 아직도 오늘 느꼈던 경외감과 감동을 선사할 곳은 무궁무진하게 남아있다. 신이 창조한 대자연을 만나러 가는 것은 또 다른 나의 여행 목적이었다. 여행을 다니면서 여행을 해야 하는 본질을 생각하게 된다.      


아직, 여행을 그만두기엔, 

아직, 신이 창조한 아름다움을 눈에 담지 못했기에,

아직, 여행을 멈출 수 없는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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