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스 May 22. 2020

Track.57 바다의, 바다에 의한, 바다를 위한

프랑스 니스 Track.57 Martini Blue -DPR Live


2019. 11. 10 (일)
프랑스 니스 
Martini Blue - DPR LIVE 



니스는 바다밖에 없지만, 바다 전부이기에 아름다워요 


유럽여행에 떠나기 전, 친구들을 만나면서 나눈 이야기 중 니스에 관한 코멘트 중 가장 인상깊은 한마디였다. 저 한 마디로 인해 안온한 바람에 취해 지중해 바다를 바라보는 이상적인 니스의 해변가를 상상해보았기 때문이다. 11월 초임에도 불구하고 낮에는 꽤 따뜻한 기온을 유지하고 있는 니스에서 본격적으로 바다를 즐겨보기로 했다. 오늘은 특별히 가야만 하는 것 따위의 계획이 없다. 오늘의 여행은 오직 단 한 가지의 목적만 있다. 바로 니스의 바다. 오직 니스 바다 느끼기뿐이었다. 어디를 갈까 고민할 필요도 없다. 그저 숙소에서 직진하면 바다가 나온다. 바다를 보고, 바다에 발을 담그고, 파도 소리를 귀로 들으며, 그리고 바다 내음을 맡는 게 오늘의 여행 목표였다.


좁은 골목길 사이로 푸른 바다가 언뜻 보이고 파도의 철썩이는 소리가 들린다. 바다에 대한 기대가 고조될 때 쯤 나타난 곳에는 끝없이 이어진 수평선에 푸른 빛깔의 바다가 펼쳐져 있다. 이름부터 Nice한 니스는 푸른 바다가 옥빛을 띠고 있었다. 그것도 짙으면서도 청량한 색깔로.





I Love NICE 조형물은 아주 NICE하다


길게 늘어진 해안가를 거닐며 살랑히 불어오는 바닷바람을 맞자 어느새 #ILoveNICE 포토스팟에 도착했다. 별거 아닌 텍스트 조형물이 오히려 이곳을 특별하게 만든다. 여행을 다니면서 느낀 건 여행지가 매력적이려면 여행지만의 유일성을 지녀야한다는 점이다. 다른 곳에 가면 볼 수 없는 독특함으로 여행지의 매력을 높이면서도 과하고 부담스러운 방식이 아닌 단순하면서도 눈에 띄는 방식이어야 여행지의 유일성은 돋보이게 된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 #ILoveNICE 포토스팟이라 생각들었다. 푸른 바다가 길게 늘어진 니스 해변 자체만으로도 니스가 지닌 여행지의 매력이 크지만 해변가를 뒷배경 삼아 찍히는 #ILoveNICE 덕분에 같은 지중해 바다라도 니스 바다는 니스만의 유일성을 지니게 된다. 니스의 단순하면서도 배경과 조화를 이루는 텍스트 조형물은 이후 전 세계 곳곳의 바다에 이와 같은 조형물이 새워지게 된다. 


#ILoveNICE 조형물에서 언덕 방면의 계단을 오르면 니스 해안가 전경을 바라볼 수 있는 니스 조망대가 나온다. 나 역시 니스 조망대로 올라가 영국인의 산책길에서 니스 해안가 전경을 바라본다. 큰 호를 그린 해안가의 모습은 유럽에서 보았던 그 어떤 바닷가도 비교할 수 없게 한다. 니스가 자랑하는 푸른 바다의 전경과 시원한 향의 바다내음이 오감을 통해 뇌로 전달된다. 낮의 니스 바다는 첫째날 들었던 나의 오만한 생각에 심판을 내렸다. 감히 니스 바다가 어디서 본 것 같다는 평을 내리다니 말이다. 칠흑 같은 밤바다여서 보이지 않아서 그랬다는 걸로 넘겨주길 바란다. 니스에 도착한 저녁에 여수밤바다 같다던 감상과는 전혀 다르게, 낮에 본 니스 바다는 지중해의 품격을 있는 그대로 내게 보여줬다.






콩으로 만든 퓨레, 밥과 생선 튀김, 토마토 가지무침과 고수 샐러드

전망대에서 내려와 점심으로는 특이하게 레바논 음식에 도전했다. 처음 먹어보는 맛이었는데, 콩으로 만든 퓨레는 고소했고, 토마토 가지무침은 의외로 이탈리안 음식 맛이 난다. 레바논 음식점에 한국에서는 거의 볼 수 없기에 레바논 음식과 첫 만남에 있어서 다소 어색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의외로 배척당할 맛은 아니였다. 특히 고수샐러드는 고수Lover인 내게 불호가 될 수 없는 음식이었다. 레바논 역시 지중해에 있는 나라니, 오늘 점심으로 지중해 음식을 먹은 거나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지중해 음식이라고 매일 이탈리아 음식을 먹을 필요는 없듯이.




오늘 오전과 점심을 함께한 동행과 헤어지는 인사를 나눴다. 이번 동행도 역시 전날 에즈와 모나코를 함께 다녔던 파리 교환학생 동행이었는데, 아쉽게도 파리로 돌아가야하는 기차를 타야한다고 전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함께 다닌 동행 덕분에 음식점이나 가게에서 보이는 프랑스 단어를 알아가는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어렵긴 하지만 프랑스어와 영어가 의외로 겹치는 단어가 많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프랑스어를 배워보는 것도 꽤 재밌는 일이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드는 순간이었다. 내가 모르는 언어의 세계를 알려준 동행에게 감사했다.


동행과 헤어지고선 구시가지 골목을 헤매다가 비누 판매점을 발견했다. 어제 비누와 향수를 알아봤던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니스에서 선물로 사갈 만한 비누를 알아보았다. 남프랑스는 비누가 유명한데, 마르세유는 올리브 비누, 프로방스는 라벤더 비누, 그 외 지역은 레몬, 바다향, 과일향 비누 등이 유명하다. 남프랑스 지방으로 여행을 온다면 꼭 비누랑 향수를 사가는 걸 추천한다. 색깔별로 모은 비누 진열대는 형형색색의 물감이 뿌려진 파레트 같았다. 나는 가벼운 지갑사정 때문에 향수는 못사고 대신 프로방스 라벤더 비누를 기념으로 사갔다. 가격도 저렴하게 하나에 2유로였고 포장지에 둘러쌓여 있어도 라벤더 향기가 뿜어져 나왔다. 여러 종류로 구매하고 싶었으나 앞으로 남은 일정과 캐리어 무게를 고려해 자제했다. 덕분에 캐리어를 펼칠 때마다 라벤더 향이 뿜뿜 풍겨졌다.







비누 상점에서 나와 구시가지의 골목길을 거쳐 다시 니스 해변가로 나왔다. 오전보다 좀 더 흐려진 날씨는 이젠 조금 쌀쌀한 바닷바람을 동반했다. 낮의 안온한 바닷바람보다는 옷깃 사이로 들어오는 약간은 시린 바닷바람이었다. 들어가기엔 쌀쌀한 저녁 바다이지만 그래도 
신발과 양말을 벗고 지중해에 발을 담군다. 시원한 바닷물이 짜릿함을 머리끝까지 올려보낸다. 


정신이 번쩍 차려진다. 

발가락 사이로 파도들이 간지럽힌다.

파도가 빠질 때 자갈 사이로 망글망글한 소리가 들린다.  


바다를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우리의 마음에도 니스 해변과 같은 큰 바다가 있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 우리 마음에는 감정의 바다가 있다. 감정의 바다는 우리가 느끼는 감정이 잔잔하게 밀려오기도, 폭풍우처럼 휘몰아치기도 한다. 그렇게 생긴 감정은 넘실대는 파도를 통해 마음의 해변까지 밀려온다. 하지만 해변에서 힘없게 부서지는 파도처럼 우리는 그 감정을 단순히 찰나의 감정 동요라 생각한다. 하지만 파도가 끊임없이 밀려오며 결국은 해변을 천천히 잠식하는 것처럼 우리의 감정도 마음을 천천히 잠식한다. 


뭐 이런 센치한 생각을 바다를 보며 잠시 해봤다. 그리고 나의 감정의 바다는 지금 어떤 상태인지도 돌아보기도 했다. 나는 이러한 생각을 할 수 있어서 그저 바다를 바라보는 게 좋다. 망글망글한 소리가 들리는 자갈 해변의 바다에서 드는 생각을 끄적여볼 수 있는 작금의 여유까지.


오늘은 ‘바다의, 바다에 의한, 바다를 위한’ 하루였다.



매거진의 이전글 Track.56 지중해의 낮과 밤 그리고 노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