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포르투 Track.59 It's You - Sam Kim
2019. 11. 12 (화)
포르투갈 포르투
It's You (feat. ZICO) - Sam Kim
호스텔에서 일어나 창문으로 밖을 바라보니 어제와는 다르게 조금 흐린 구름이 포르투 하늘에 가득했다. 창문을 열어보니 따뜻한 남유럽이어도 11월의 날씨는 쌀쌀한 찬바람이 불어왔다. 쌀쌀한 바람의 온도 덕분에 몽롱했던 정신이 차려진다. 이런 날씨일수록 따뜻한 모닝커피가 당기기 마련이다. 마침 숙소 골목길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스타벅스가 있었다. 동유럽에서부터 함께 한 코트를 입고선 숙소 밖으로 나섰다. 숙소에 나와 쌀쌀한 바람은 손을 시리게 했고, 언 손을 녹이려 스타벅스에서 커피 한 잔을 들고선 돌아다녔다.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잔을 손난로 삼았다. 씁쓸하면서 구수한 커피를 호로록 한입 마시며 잠시 머릿속에 남은 졸린 기운을 찬 바람에 날려 보냈다.
포르투의 언덕길을 따라 오르락내리락하며 길을 걷는다. 도시 자체가 크지 않아 뚜벅이로 다녀도 큰 문제가 없다. 언덕과 구릉으로 이뤄진 포르투는 거리를 걸어 다니는 맛이 있다. 발바닥으로 느끼는 도시의 맛. 평지만 있는 유럽의 도시들과는 달리 발바닥으로 알 수 있는 도시의 굴곡을 느낀다. 오르락내리락 걸음에 따라 도시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진다. 굴곡에 따라 도시가 품은 광경은 같은 공간이지만 다른 풍경을 보여준다. 뚜벅이 여행자에게 굴곡 있는 도시의 길은 비록 발은 힘들지라도, 여유 있게 걸어 다니는 여행의 맛을 선사한다.
발걸음이 이끄는 대로 도시의 골목길을 다니다 보면 아기자기한 포르투갈 빈티지 기념품샵이 등장한다. 오르막길 골목에 빼꼼히 문을 연 틈으로 가게 안에 들어가 본다. 푸른색 문양의 도자기, 포르투 강변에 있을법한 범선 모형, 물고기 타일 장식, 포르투갈을 상징하는 수탉. 빈티지 기념품샵에 둘러보며 이국적인 인테리어 소품에 눈길이 간다. 여행지에서 보는 빈티지 기념품샵은 한국의 인테리어 소품 가게와는 다른 분위기를 연출한다. 여행자가 되면 타지의 물건을 마음속에서 허용하는 관용의 폭이 넓어지는 듯하다. 한국에서라면 실용성, 집의 분위기, 청소하기 쉬운 정도 등을 따져 엄격한 내 맘의 기준을 통과한 소품만이 집으로 입성하는 걸 허용한다. 반면 타지에서 바라보는 인테리어 소품은 그 기준이 매우 완화된다. 특이함, 독특함, 평소에는 보지 못한 것에 대한 신기함, 그리고 한국에선 구하기 힘들거라 생각하는 아쉬움에 마음속 엄격한 기준은 누그러진다.
하지만 그러한 마음보다 더 엄격한 기준이 있다면, 역시 '돈'이다. 긴축정책으로 짠내 투어를 계속 이어나가고 있는 내게 타국의 인테리어 소품을 구매하기란 큰 결심을 해야 한다. 결국 머릿속 지출결의 결재는 '엽서 구매'로 합의를 보았다.
몇 번의 언덕길을 따라 걸어오니 어느새 상 벤투 역(Sao Bento Station)에 도달했다. 상 벤투 역은 포르투갈의 독특한 실내건축으로 유명하다. 상 벤투 역 실내에는 아줄레주 장식이 크게 있기 때문이다. 아줄레주는 포르투갈만의 독특한 타일 장식으로 마누엘 1세가 왕궁에 쓰이기 시작하고, 이후 리스본 대지진으로 목조건물이 불탄 뒤 열에 강한 도자기를 건물에 활용하면서 널리 퍼지게 되었다고 한다. 푸른색의 타일로 그려진 커다란 그림 장식은 포르투갈에서만 볼 수 있다. 네덜란드의 타일 장식과도 비슷할 수 있으나 포르투갈의 아줄레주는 타일이 모여 하나의 커다란 벽화가 되는 점에서 다르다.
상 벤투 역의 실내에는 포르투갈 역사에서 굵직한 사건을 2만 개가 넘는 아줄레주 타일로 표현했다. 아줄레주로 표현한 걸 생각해본다면, 어떠한 천재지변이 오더라도 그들의 찬란했던 역사만큼은 무너질 수 없길 바라는 마음으로 만든 게 아닌가 싶었다. 모든 국가가 그러하듯이, 유라시아 서쪽 끝, 이베리아 반도에 위치한 포르투갈도 그럴 것이다.
⠀
도시의 굴곡을 발바닥으로 한껏 느낄 때쯤 히베이라 광장의 벤치에 잠시 앉았다. 오랫동안 힘써준 발바닥에게도 쉬는 시간은 필요하기에 잠시 멈춤을 택했다. 그리곤 동 루이스 다리를 그저 멍하니 쳐다본다. 조금은 차분한 공기 분위기와 잔잔히 흐르는 도우루 강, 그리고 무심히 서있는 철제 다리 동 루이스 다리가 묘한 풍경을 자아낸다. 화려한 장식도 없이 그저 단순한 철제 다리인데 멋진 모습을 만들어낸다.
Simple is best.
동 루이스 다리가 에펠의 제자의 작품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단순함에서 뿜어 나오는 아름다움은 존재한다.
단순함은 화려함을 뛰어넘는 힘을 지니고 있다.
스티브 잡스의 아이폰이 그러했고,
헤밍웨이가 6단어로 슬픈 소설을 썼듯이.
화려함은 때론 번잡함이 된다. 화려한 면에 집착하면 본질은 흐려진다.
글은 단순해야 읽기 좋고, 음악도 단순해야 듣기 좋다.
단순한 직선과 곡선의 조합으로 이뤄진 동 루이스 다리도 이와 결이 같다.
단순했기에 도시의 경관과 어울렸던 것이었다.
동 루이스 다리를 건너서 가이아 지역으로 향했다. 마침 부슬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포르투에서 비가 온다면 들리기 좋은 곳이 한 곳 있다. 바로 가이아 지역에 몰려있는 와이너리다. 가이아 지역에는 와이너리가 몰려있고, 이 중 와이너리 투어 중 한국어를 지원하는 업체도 있다. 와이너리 투어에서는 포르투 와인을 맛보고, 제조과정을 구경할 수 있다.
비도 피할 겸 가이아 지역에 몰려있는 와이너리 중 CALEM 와이너리에 들어갔다. CALEM 와이너리는 1859년에 설립되었다고 한다. 가이아 지역에는 와이너리가 몰려있는데 내가 간 곳 이외에도 SANDEMAN, TAYLOR 등이 유명하다고 한다. 어디를 가든 포르투 와인 문화를 알아볼 수 있다. 라틴족 국가들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등)은 기본적으로 와인 문화권을 형성하고 있다. 이는 맥주 문화권을 형성하는 게르만족 (독일, 영국, 오스트리아, 체코 등)과 유럽을 양분하는 기준이다. 그 나라의 문화를 알아볼 때 가장 직관적으로 알 수 있는 방법은 식문화를 경험하는 것이다. 맛과 향으로 기억한 문화체험은 쉽사리 잊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로 와이너리 투어를 신청했다.
마침 가까운 시간에 투어가 있었다. 잠깐에 대기시간을 가진 뒤 영어 투어를 했는데 포르투 와인의 기원, 역사, 제조 과정을 들었다. 포르투 와인은 영국이 프랑스와 관계가 나빠지자 프랑스 대신 포르투에서 와인을 수입하던게 시초였다. 포르투에서 영국까지 배로 이동하는 시간과 거리가 오래 걸리자, 와인의 풍미를 보존하기 위해 브랜디를 섞어 보존기간을 늘렸다. 이게 신의 한 수가 되어 '포르투 와인'이라는 독특한 맛과 향미를 지닌 브랜드가 탄생하게 된다. 포르투 와인은 일정 비율 이상 브랜디가 첨가되고, 그로 인해 맛과 향이 일반 와인보다 더 강하다. 포르투 와인과의 첫 만남은 달콤 쌉싸름한 기억으로 남았다. 첫맛은 달콤한 과일향으로, 뒷 맛은 높은 도수로 쌉싸름한 향으로 혀 끝에 각인되었다.
⠀
배가 출출할 때쯤 와이너리에서 다시 다리를 건너 동행을 구해 저녁을 먹었다. 포르투갈의 최대 장점은 유로존 국가 중에서 낮은 물가를 자랑한다는 점이다. 포르투에서 메인 요리 2개 가격이 프랑스 애피타이저 가격과 맞먹으니 말 다했다. 그래서 물가가 비싼 영국, 프랑스, 북유럽 등의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포르투갈에 많이 내려와 여행하고 간다고 한다.
최근 한국 사람들에게도 가성비 좋은 유럽 여행지로 급부상하고 있는 곳이 포르투갈이다. 노을 지는 광경, 보랏빛으로 물드는 분위기, 뚜벅이 여행자에게 어울리는 도시의 굴곡, 저렴하면서도 맛난 음식들, 그리고 달콤 쌉싸름한 포르투 와인까지. 포르투갈이 우리에게 여행지로 알려진 건 얼마 되지 않지만, 여행지로서 포르투갈이 지닌 매력은 짧은 시간 내에 널리 퍼졌다.
한국에서 노을 맛집으로만 알고 있는 포르투는 생각보다 많은 면모를 지닌 매력적인 도시였다. 특히 발로 느끼는 도시의 굴곡으로 좁은 골목길이 주는 걷는 여행의 가치를 느끼게 해 주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