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포르투 Track.60 잊어버리지마 - Crush
2019. 11. 13 (수)
포르투갈 포르투
잊어버리지마 (feat.태연) - Crush
오랜만에 늦게까지 잠을 청했다. 아침 햇살을 늦게까지 맞이해도 되는 그런날. 오늘 아침만은 게으른 마음가짐으로 하루를 맞이하고 싶었다. 늦장을 부려도 누가 뭐라 할 사람 없는 날. 그동안의 여행 피로를 풀러 밀렸던 잠을 몰아서 자고 난 몸은 침대에 더 있고 싶었지만, 어제와는 다른 맑은 날씨가 이를 허락하지 않는다.
9시에 벗어나기 힘든 이불 속에서 자리를 박차고 아침을 맞이하러 나간다. 숙소 창문에는 햇볕이 깊숙히 자리를 잡았다. 아침 샤워로 머릿속 잠결을 날려버리곤 나갈 준비를 한다. 포르투에서 3일차. 이제는 눈에 익은 숙소 주변의 골목길은 익숙하기만 하다. 어제 저녁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눈여겨 보았던 에그타르트집에서 아침을 해결하러 길을 나섰다.
포르투갈의 아침은 거창하지 않다.
에그타르트 2개와 에스프레소 한 잔이면 하루를 시작하기에 충분하다. 에그타르트 한 개에 1유로로 저렴한 포르투갈 물가는 나와 같은 배낭여행객에겐 안성맞춤이다. 한국에서는 맛보기 힘든 에그타르트 원조국가의 진정한 에그타르트의 맛으로 하루의 문을 연다. 바삭하면서도 안에는 커스타드 크림의 촉촉함을 맛본다. 그리고 에스프레소 한 모금에 달달하면서 고소하고 씁쓸한 향이 입안에서 맴돈채 넘어간다.
그게 포르투갈의 아침이었다.
포르투의 갈만한 관광지는 대게 몰려있기에 하루 정도면 충분히 볼 수 있다. 나 역시 포르투에서 가봐야 할 곳들은 이틀 동안 다녀봤기에, 포르투의 다른 곳을 가보려 했다. 포르투는 유럽에서 대서양과 가까운 도시 중 하나이기에 바다를 보러 가고 싶었다. 그래서 무작정 버스 하나를 타고선 종점까지 가본다.
상 벤투 역에서 500번 버스를 탔다. 마침 2층버스였는데 2층 앞자리에 앉아서 버스에 몸을 맡긴 채 다녔다. 2층버스의 앞자리는 그 어떤 관광버스보다도 훌륭하다. 개방된 창문으로 보이는 도시의 광경, 사람들의 모습, 날씨의 흐름을 오감으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바닷가쪽으로 향하는 500번 버스를 무작정 타고 간 오늘의 여행에서 포르투가 지닌 도시의 호흡을 같이 맛보고 간다. 버스는 히베이라 광장 길을 따라 도우루 강을 바라보며 바닷가로 향했다. 도시의 풍경에 푹 빠져있을 때 쯤, 중간에 가다 바닷가에 있는 한 정원이 예뻐보이길래 무작정 내렸다.
버스에서 내려 발딛은 바닷가에 있는 정원은 등대가 있는 정원이었다.
등대 쪽으로 가보니 바람이 심상치 않다. 심상치 않은 바람과 함께 성난 파도가 방파제에 달려와 부딪친다. 잔잔했던 지중해와는 다르게 대서양은 강한 파도가 휘몰아쳤다. 지중해가 대륙에 둘러쌓인 잔잔한 바다의 느낌이라면 대서양은 대양의 포스를 가득 지닌 바다였다.
등대 뒤로 파도가 성나게 친다.
무엇이 파도를 화나게 했는지는 모르겠건만, 오늘의 바다는 몹시도 성이 났다.
평소에는 보기 힘든 바다의 성난 모습이라 좀 더 다가가 사진 속에 그 모습을 담으려 했다. 등대 쪽으로 가다가 바닷바람에 따귀를 한 번, 바람에 불어온 바닷물에 따귀를 두 번 맞고선 뒤로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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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 왔던 500번 버스를 타고 다시 돌아가려했지만 배차시간이 길어 그냥 걸어갔다. 돌아가는 방향은 그냥 직진하기만 하면 된다. 그저 도우루 강을 바라보며 그저 걷는다. 걷다가 벤치가 보이면 잠시 쉬어가다 다시 걷기를 반복했다. 벤치에 앉아 도우루 강 풍경을 바라보고 잠시 휴식을 취한다. 늦게 돌아가도 누가 뭐라하지 않는 오늘 하루. 그저 발걸음 닿는 대로 천천히 걸음을 옮길 뿐이다. 맑은 날씨 덕분에 이마에는 땀이 송글송글 맺는다. 땀이 맺힐 때면 바람이 불어오니 걷는 것 자체는 힘들진 않았다.
중간에 잠시 마트에 들러 값싼 샌드위치와 음료수로 점심을 떼운다. 이어폰으로 들리는 음악 소리를 배경으로 멋진 풍경을 앞에 두고 나름 멋진 식사를 이어나간다. 식사의 가치를 매기는 데에 별 것 없다. 그저 내가 만족하기만 한다면 그걸로 멋진 식사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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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간이 넘게 걸린 돌아오는 길 끝에서 히베리아 광장에 도착했다. 히베리아 광장에서는 버스커가 거리 공연을 펼친다. 뒤에는 동 루이스 다리를 배경으로 버스킹 공연이 펼쳐지는 이곳은 ‘JTBC 비긴어게인’에도 나온 곳이었다. 잘 알지 못하는 포르투갈 노래를 부르고 있는 버스커의 음색을 들으려 이 때만큼은 이어폰을 빼고선 흘러나오는 노래에 귀를 기울였다.
버스커의 뒷 배경으로 보이는 동 루이스 다리는 포르투의 감성적인 면모를 불러일으킨다. 알아들을 수 없지만 왠지 마음 속으로는 해석이 될 것 같은 노랫말과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감정적인 버스커의 모습이 괜시리 센치해지게 만든다. 그녀의 노랫소리가 꽤 맘에 들었기에 한동안 노래를 들으며 막연히 도시의 풍경을 바라보는 데 시간을 한없이 보냈다.
해가 슬슬 넘어갈 시간이 되자 다리를 건너 언덕으로 향했다.
포르투 하늘을 수놓은 보랏빛 노을은 첫 날의 모습 그대로였다.
하늘은 보랏빛으로 물들고 해는 저편으로 넘어간다.
주황빛 지붕은 보랏빛에 비춰 더욱 진한 색을 내뿜는다.
강은 유유자적 흐르고 바람은 머리 위로 불어온다.
단순히 노을이 예쁘기에 포르투를 오는 건 아니다. 노을에 비춰진 포르투의 광경이 잊지 못하기에 사람들은 포르투를 찾는다.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보랏빛 하늘로 가득찬 서쪽 나라의 도시 풍경을 잊어버리기 쉽지 않기에 사람들은 포르투를 찾는다. 오늘의 BGM의 가사와 같이 잊어버리지마라고 말하지 않아도 잊을 수 없는 도시가 포르투였다.
보랏빛 광경을 눈에 담은 뒤에는 출출해진 뱃속을 문어밥으로 채웠다. 포르투의 전통요리인 문어밥은 얼큰한 해물탕에 밥을 말은 듯한 맛이었고, 부드러운 문어살은 세상 처음으로 맛봤다. 이 맛 역시 잊어버릴 수 없을 듯하다. 잊지 못한 기억들의 연속인 포르투의 마지막 밤을 보내고 내일은 리스본으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