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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더군 Jun 27. 2021

유럽 문화의 꽃 - 성당 II

#여행의인문 #기독교 #성상 #성화 #성당이해하기



성당에는 유럽 문화의 정수가 있다. 두 번째 이야기 성상, 성화를 이해하기


유럽의 도시와 마을을 걷다 보면 어느 사이에 성당이 있는 중심가를 만나게 된다. 중심가에는 백성들이 물을 떠마시던 분수가 있기 마련이고 누군지 모를 성상이 장식되어 있기 마련이다. 중심가의 한쪽에는 항상 성당이 있으며, 성당 안과 밖을 성상이 장식하고 있다. 


프라하 구원자 교회 - 위키피디아 



크로아티아 포레치 / 안토니오 비바리니 / 15세기 / 고딕 - 보더군 


수많은 성상이나 성화를 보면 대부분의 여행자들은 누가 누군지 구분도 안 가고 이름이 쓰여있더라도 라틴어나 그리스어로 쓰여있으며, 대부분의 성상은 이름조차 쓰여있지 않아, 여행의 초반이 지나면 성상은 무시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성상은 글을 모르는 문맹자들을 위해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꽤 많은 정보가 숨어 있고 알아보기 쉽다. 


사실 성상과 성화에 관한 이야기는 상당히 전문적인 학문으로 이 글은 여행자를 위해 최대한 가벼운 수준으로 설명한다. 











성상과 성화의 시작 

성화, 성상을 말하기 전 기독교적인 지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성상은 우상 숭배가 아닌 것이냐고 질문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 글은 종교적인 논란을 다루는 글이 아니기 때문에 성화와 성상의 시작부터 이야기한다.  기독교와 유대교 이슬람교는 구약성경의 아브라함, 모세, 솔로몬, 다윗을 공통적으로 인정하는 종교로 세 종교는 한뿌리에서 나왔으며, 중동 지역의 야훼를 하느님으로 생각하는 종교다. 


기독교 : 정교회 + 가톨릭 + 개신교를 합친 예수가 인간의 원죄를 구원했다고 믿는 종교 


세 종교에서 가장 중요한 예언자 중 한 명인 모세는 최초로 하느님에게 유대 민족들이 따라야 할 법을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모세가 시나산에서 십계명을 받고 산 밑으로 내려왔더니 그 사이에 유대인들은 금송아지를 숭배하고 있었으며, 화가 치밀은 모세는 십계명이 적힌 석판을 부숴버렸다. 구약의 이 부분은 이후 세 종교에서 아주 중요한 포인트가 된다.  


영화 십계 1956 - 구글 이미지 


여호와(야훼)를 하느님으로 믿는 세 종교에서 모세가 받은 십계명은 종교적으로 가장 중요한 율법 중 하나로 손꼽히지만 가톨릭, 개신교, 정교회, 유대교의 십계명은 조금씩 다르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우상숭배에 관한 두 번째 계명으로 로마 가톨릭과 타 종교는 크게 차이가 난다. 



이. 하느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마라. (가톨릭)        

이.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개신교, 예수회 장로교)        

이. 너는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든, 아래로 땅 위에 있는 것이든, 땅 아래로 물속에 있는 어떤 것이든 그 모습을 본뜬 어떤 신상도 만들어서는 안 된다. 너는 그것들을 경배하거나, 그것들을 섬기지 못한다. (정교회)        



원래 로마인들은 그리스 로마 신화를 믿으며, 필요할 때만 신전을 찾아 재물을 바치는 다신교를 종교의 기본으로 생각하며 종교보다 인간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는데, 로마가 점점 발전하고 사회가 복잡해지며 많은 사람들이 도시에 살기 시작하면서 로마 시민들은 선악의 잣대가 분명하여 자신의 행동에 위안을 받을 수 있는 일신교를 찾기 시작한다. 기독교 이전 로마인들이 유대교로 개종했다는 기록은 많이 남아있다.  



기독교는 로마 위정자들의 정치적인 목적과 상업 민족이었던 유대인에 의하여 위험한 종교로 취급받으며 박해를 받았는데, 우상숭배는 지양해야 하는 행동이지만 한때 로마와 유대인의 박해를 받아 백여 명의 신자밖에 남지 않았던 위기에 몰렸던 기독교가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공격적인 전도뿐이었고 기독교가 로마에서 인정받고 난 후에도 현재까지 기독교는 전도를 아주 중요시하는 종교가 되었다. 




라바룸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계시받은 문장 - 구글 이미지



특히 성상이나 성화는 글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기독교를 알리는데 유용했다. 기독교인들이 추앙하는 콘스탄티누스 황제(272-337)는 네 명의 황제 중 기독교인의 힘을 업고 세명의 황제를 물리치고 단독 황제가 되었는데, 막센티우스 황제와 전쟁 전날 꿈에 라바룸 마크를 보았고 "이 표시로 이기리라(In hoc signo vinces)"라는 계시를 받고 전쟁에 승리했다고 한다. 


이후 콘스탄티누스는 로마를 다스리기 위한 방법으로 기독교인들을 이용했고 니케아 공의회와 같은 회의를 통해 기독교의 교리를 정리하고 기독교를 장려한다. 그리고 성상, 성화를 이용해 이교도들에게 기독교를 전도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정작 콘스탄티누스 황제 본인은 임종에 이르러서야 세례를 받는다.  


시간이 지나 5세기 초 게르만족들이 훈족의 이동으로 서로마로 유입된다. 서로마는 그들을 받아들이기 위해 기독교를 전도하는데 로마의 기준으로 야만인에 가까운 게르만족에게는 눈에 보이는 증거가 필요했고 기독교에선 성상을 이용해 전도를 한다. 그리고 이후 성상 제작은 서로마 로마 대교구큰 자금원이 된다. 반면에 그리스인들과 교육받은 민족들이 위주였던 동로마는 성화를 위주로 종교 예술이 발전하는데, 예수와 마리아의 삶과 성인들의 삶을 그린 이콘이 유행한다. 


대교구 : 기독교에는 다섯 개의 중요한 대교구가 있었는데, 대교구는 로마, 콘스탄티노플, 시리아 안디옥, 예루살렘, 알렉산드리아다. 로마를 제외하곤 네 곳이 지중해 동쪽에 있다.



동방 정교회 스타일의 성화 이콘 한 그림에 여러 장면을 그린다. - 구글 이미지 



9세기 콘스탄티노플의 상상도 - 구글 이미지


 

330년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기존의 낡은 로마를 버리고 새로운 제국의 수도로 자신의 이름을 딴 콘스탄티노플(콘스탄티누스의 도시)를 동쪽의 잊혀진 도시인 비잔티온에 건설한다. 로마의 수도가 이동하면서 기독교의 총본산도 옮기게 되었으며, 로마는 대교구로서 남는다. 


4세기에는 실크로드와 중동과의 교역으로 인해 로마 제국의 서쪽보다 동쪽이 경제와 문화가 훨씬 발달되는데, 아예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는 거대한 로마 제국을 네 지역으로 분리시키고 자신이 동로마의 정식 황제가 됩니다. 그러면서 그리스어를 위주로 사용했던 동로마라틴어를 주로 사용했던 서로마는 지리적, 종교적, 경제적으로 점점 멀어진다. 


서로마는 5세기 말 게르만족에 의해서 멸망하고 동로마는 사실상 서로마 지역과 로마 대교구를 방치하고 버렸다. 이후 7세기 이슬람이 지중해의 동쪽 지역에서 시작되면서 그동안 당연했던 전도를 위해 허용한 성상과 성화가 논란이 되기 시작한다. 



이슬람교에서는 신의 얼굴과 예언자인 무함마드의 얼굴을 그리지 않는다 - 구글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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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서를 공유하는 이슬람교의 입장에서 기독교는 뿌리가 같지만 가는 길이 다른 종교였다. 비교적 후발 주자였던 이슬람교는 기독교에 대해서 큰 적대감은 없었지만 이슬람은 기독교의 성상, 성화를 비난하기 시작했고 기독교 내부에서도 논란이 되기 시작한다. 결국 우상숭배 문제는 정치와 종교가 부딪치며 큰 사건으로 커진다. 


8세기 이슬람의 지적과 동로마의 식자층에서 시작된 기독교의 성상파괴 운동은 콘스탄티노플 대교구와 종종 파워 게임을 벌였던 황제에 의해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결국 60년에 걸쳐 수많은 성상이 파괴되었고 이후에도 다시 한번 대대적인 성상 파괴가 벌어지게 된다. 황제는 세금을 내지 않는 수도원과 교회를 압박해 세금 제도를 개혁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두 차례의 성상파괴 운동은. 서로마의 성상 제작 중단을 명령했던 동로마 황제와 로마 대교구의 갈등의 시작이었다. 로마를 제외한 네 곳의 대교구는 동로마 황제의 세력권이었고 명령에 따라야 했지만 성상으로 벌어들이는 막대한 돈을 포기할 수 없었던 로마 대교구 교황 그레고리오 2세는 이탈리아 북부의 강국 롬바르드를 이용해 동로마 황제의 명령을 거부한다. 


역사상 최초의 동서 교회의 분열이었다. 이후 서로마 지역이었던 유럽은 로마 대교구의 영향으로 성상을 중요시하게 되고, 성상 파괴 운동이 끝난 동로마 지역에서는 다시 성상과 성화를 제작하게 되었지만 성상보다는 교리를 더 잘 전달하는 성화 위주로 발전하게 된다. 



죽어가는 헨리 8세 새로운 왕 에드워드 6세를 가리킨다 오른쪽 성상을 파괴하는 자들 - 런던 국립 초상화 미술관 - 위키피디아



성상으로 인해 로마 가톨릭은 십계명의 두 번째 항목을 수정하게 된다. 이로 인해 일부 개신교에서 가톨릭은 성모 마리아 상을 세우고 신으로서 믿는다라고 말하는 경우가 있으나 가톨릭에서는 성모가 예수에게 기도를 전달해주는 메신저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시에나 대성당 / 두치오 작 / 마에스타(장엄) / 고딕 - 구글 이미지 


 


성인들을 구분하기


기독교에는 숫자를 세기 어려울 정도로 수많은 성인들이 있다. 가톨릭의 역사가 짧은 대한민국에도 103명의 순교 성인이 있으니 전 세계를 통틀어 수천 명이 넘는데, 모든 성인들을 구분한다는 것은 전문가라도 쉽지 않다, 하지만 인기 있는 성인들은 어느 정도 범위가 정해져 있으며, 여행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주요 성인들의 성화나 성상을 구분하는 방법은 어렵지 않다. 




이스탄불 코라 성당 / 사도 바울(좌), 베드로(우) - 보더군 


 

유럽 성당을 방문하였을 때 가장 자주 볼 수 있는 성상은 바로 예수의 첫 번째 제자인 베드로와 거의 사멸해가던 기독교를 세워 조직한 사도 바울이다. 베드로는 예수의 첫 번째 제자였으며, 예수가 승천할 때 베드로에게 천국의 문을 맡겼다고 한다 그래서 베드로는 한 손에 천국의 열쇠를 들고 있다. 


로마 가톨릭의 교황은 천국의 열쇠를 들고 있는 베드로의 정식 후계자라고 한다. 그래서 가톨릭은 면죄부를 공공연하게 팔았을 정도로 부패하게 되고 결국 개신교가 분리된다. 



사도 바울은 기독교가 로마와 유대인들에게 박해받아 백명도 남지 않았을 시절 기적을 체험하고 기독교인으로 돌변해, 기독교를 널리 전도하였다. 예수의 직전 제자는 아니었지만 기독교를 재정립하고, 신약성서의 상당수를 기록하였다. 사도바울은 성령의 칼은 하느님의 말씀이란 말과 수많은 편지로 기독교인들을 독려하였다. 바울의 상징은 칼과 편지이다. 



보통 베드로와 바울, 신약성서의 복음사가인 요한, 마태오, 마르코, 루가의 네 명이 포함된 예수의 열두 제자와 기독교에서 인기 있었던 치유의 열네 성인들, 지역별로 유명했던 성인들이 성상으로 제작되었는데, 당시의 황제와 왕, 대주교, 교황들도 성상으로 만들어진다. 성상은 대부분이 문맹이었던 일반 신자들을 위해, 성상의 모자, 옷, 지팡이, 손에 들고 있는 물건이나 동물들로 성인들을 구분한다. 


프랑스 아를 성 트로핌 성당 - 구글 이미지 


가운데 앉은 예수는 세 손가락으로 삼위일체를 나머지 두 개의 손가락으로는 예수는 인간이며, 신의 아들이라는 양성론을 나타낸다. 예수가 앉은 뒤쪽의 타원형은 천국의 문을 뜻하며, 예수를 통해서만 천국에 갈 수 있다는 뜻, 신약 복음을 적은 네 명의 복음사가의 상징인 성경을 들고 있는 독수리(요한), 천사(마태오), 사자(마르코), 소(루가)






대주교의 지팡이들 - 구글 이미지 



성 이스트반 / 부다페스트 - 구글 이미지 


머리 위의 후광(성인), 십자가가 있는 왕관(신에게 인정받은 왕권), 한 손에는 칼(군주), 한 손에는 대주교의 지팡이(로마 교황에게 받은 대주교) = 기독교를 받아들인 헝가리의 첫 번째 왕이자 성인인 이스트반 1세




주요 성인들의 상징 - 보더군 


성상의 손에 성당이나, 성곽, 도시를 들고 있는 사람은 손에 들고 있는 것을 예수에게 봉헌한다는 의미이며, 성인이 아닌 경우도 있다. 보통은 상징으로 구분이 가능하지만 지역의 대주교나 교황, 황제들은 구분하기 어렵다. 십자가 위에 가로 막대가 하나 더 있으면 대주교의 십자가, 세 개가 교차하면 교황을 의미한다. 칼을 들고 십자가가 달린 왕관을 쓴 사람들은 보통 기독교를 받아들이거나 기독교에 영향을 끼친 왕이나 황제. 





비투스 / 광대, 댄서, 간질병의 수호성인 - 구글 이미지



허브(풀), 약병, 호리병을 가지고 있는 성인들은 보통 치유의 수호성인이다. 그중 인기가 높은, 비투스(Vitus), 바르바라(Barbara), 블라이세(Blaise), 카탈리나(Catherine Of Alexadria) 등은 환자들에게 인기가 많아 그들의 이름을 딴 많은 교회가 세워졌다. 유명한 성인의 유골이 보관되어 있던 성당에 방문하는 것은 중세 사람들에게 인기있는 여행 코스였다. 


대표적인 예로 베네치아 마르코 성당에 있는 성 마르코의 유해는 원래 이슬람이 지배하던 알렉산드리아에 있었는데, 베네치아의 상인들은 마르코의 유해를 훔친후 이슬람인들이 싫어하는 돼지고기 사이에 넣어 밀수했다고 한다. 


기독교인들에게 예수의 제자이자 신약성서를 썼던 마르코의 유해를 보고 만지는 것은 성지순례와 같은 의미로 수많은 기독교인들은 멀고 이슬람에게 위협받는 예루살렘보다 베네치아로 몰려들었고 물의 도시 베네치아를 대도시로 발전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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