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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디 Apr 29. 2024

아플 때 꺼내는 약

우리는 가끔 민간요법에 매달리기도 한다.

나는 허약했다.

어른들이 쑥덕쑥덕하는 이야기를 듣고 그 뜻을 알게 되었다. ‘나 같은 애를 허약하다고 하는구나’라고 인지하게 되었는데, 지금 돌이켜 보면 내가 정말 허약하다고 판명이 난 건지 아니면 얼굴이 유독 하얘서 허약하다고 생각하신 건지 사실 의구심이 든다. 왜냐하면 어렸을 적부터 지금까지 병원에 입원한 기억이 아예 없고, 남들 다 앓는 홍역 정도가 가장 크게 아팠던 기억이다. 아무튼 부모님은 언니, 오빠보다 말랐고 하얀 아이라서 허약하다로 판단하신 것 같다. 마른 것은 지독한 편식쟁이일 뿐 어디 아픈 것은 아니었다.

고역은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사탕과는 다른 미묘한 맛을 가진 때로는 역하기도 한 딱딱한 비타민을 매일 먹어야 했다. 나름 비싸게 사셨을 수도 있는데 철없는 나는 먹기가 싫었고 등교하는 길에 친구에게 나의 몫을 대신 먹어 달라고 한 적이 많다.

아침에는 늘 베지밀을 먹어야 했고 또 어디서 구하셨는지 모르겠는 시뻘건 생간을 기름에 콕 찍어  먹어야 한다며 온 가족이 둘러서 내가 먹는 것을 구경했다. (나만 먹는 건가?) 생간이라니… 초등학생인 나에게 귀한 것이라며 몸에 좋은 것이라며 주기적으로 사 오셨다. 코를 막고 먹기도 하고 이건 맛있는 과일이다 스스로를 세뇌하며 먹기도 했다. 부모님은 내가 빈혈이 있다고 생각하신 것 같다.(한 번도 빈혈로 쓰러진 적이 없다. 교장 선생님 훈화 말씀 시간에도 쓰러진 적이 없단 말이다.) 집안 누구도 얼굴이 창백한 사람이 없는데 유독 나만 얼굴이 창백했으니 말이다.

이런저런 부모님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나는 살이 찌지 않았다. 결혼하고 첫 아이를 낳을 때까지 저 체중이었다(그렇다고 불편함은 없었다. 주변에서 불쌍하게 보는 시선과 살 좀 찌라는 잔소리만 없다면 말이다.)

출산을 하니 자연스레 살이 10킬로가 쪘다.

“아니 이런 거였어? 살이 찌는 기분이 생각보다 좋네” (이해하시라. 평생 말라깽이로 자라서 살이 찐다는 것이 무엇인지 모를 때의 발언이니)

둘째를 낳고 나니 출산 전 몸무게 기준으로 20킬로이나 불어났다.

“이제 살도 쪄봤으니까 됐다. 다시 첫 아이 낳았을 때 몸무게로 되돌려줬으면 좋겠는데…. 거의 마법이 필요한 수준! “






살면서 엉뚱한 마법의 순간이 필요할 때가 있지 않은가.

시간을 되돌리고 싶거나, 그때(바로 그때)로 다시 돌아가고 싶거나… 무엇을 없애거나 무엇이 생기게 하거나, 이불킥의 순간을 잊고 싶거나 등등등…

우리의 소원을 들어주는 약을 구할 수는 없지만, 환장의 마법 약을 조제해 볼 수 있는 경험을 해볼 수는 있다.

바로 ‘크베들린부르크의 돌팔이 약장수’ 게임 속으로 들어오기만 하면 된다.


‘크베들린부르크의 돌팔이 약장수’ 게임을 생각하다 보면 부모님의 ‘생간’이 떠오른다. 도통 먹을 수 없는 생간이지만 숨을 참고 먹었던 기억. 이것이 내게 도움이 될 것이라는 믿음으로 먹었던 그때.

지금은 부모님께 이런저런 약들을 사서 안겨드린다. 이것도 드셔야 하고 저것도 드셔야 한다면서 말이다.

먹기 괴롭다고 생각했던 비타민, 생간, 콩밥, 가지. 모두 사랑의 표현이었구나.


무 자격자의 무서움을 알게 되는 게임! 약장수인데 돌팔이가 되어야 하는 게임. 

약사가 아닌 돌팔이 약장수가 되어서 가치가 높은 약을 만들어 내는 게임이다. 그 이름이 살짝 어려운데 코리아보드게임즈 2018년에 출시된 ‘크베들린부르크의 돌팔이 약장수‘(이하 약장수로 쓰겠다)다.


실제로 이 게임을 개발한 사람은 오스트리아 출신의 볼프강 바르쉬인로 암을 연구하는 연구자(참조:코리아보드게임즈 블로그)라고 하니 본업과 부업의 일치라고 볼 수도 있겠다.  내가 관심 갖고 있는 분야와 내가 잘하고 있는 분야를 발판 삼아  다른 새로운 일이 탄생하는 것을 보니 평소 관찰과 사고의 확장이 얼마나 우리의 삶을 넓혀주는지 알게 된다.  새삼 그 능력이 부럽다. 이분의 게임이 다른 것도 몇 개 있는데 ‘마인드’, ‘영리한 여우’가 있다. (아니 모두 재밌는 게임들이잖아!)

약장수 게임으로 2018년 올해의 게임 상을 수상하는 등 보드게임 상들은 거의 다 휩쓴 것 같다. 실제 독일의 저 마을 이름도 어려운 크베들린부르크에 내가 가보리라 마음먹게 한 게임이다.

실제 중세 시대 독일의 크레들린부르크라는 곳에서 정치 경제 종교적인 축제가 자주 일어났고 중세 이후 번성한 무역 도시로 잘 알려져 있다.


이 게임은 크레들린부르크 시장에서 9일장이 이루어지는 동안 돌팔이 약장수들은 주머니에 들어 있는 약재를 사서 솥단지에 적당히 넣고 약을 만들어야 내는 한다. 돌팔이기에 적절한 약재를 넣는 것이 아닌 이상한 약재들도(호박, 거미, 유령, ) 넣기도 하고 솥단지에 너무 많이 넣어서 솥이 폭발하기도 한다. 스스로 밸런스를 잘 조절해야 되는데 주변에서 자꾸 약재를 더 넣으라고 부추기는데 그걸 듣고 홀랑 더 넣었다가 득이 될지 실이 될지는 알 수가 없다.  운에 맡겨야 한다.


게임을 펼쳐 놓고 보면 일러스트에 한 번 반하고 게임의 재미 요소 때문에 두 번 반하게 된다. 보드게임이 3D 위주로 제작되고 있는 요즘(3D가 나쁘거나 싫다는 것이 아님)에 비해 두꺼운 종이로 납작하게 만들어 놓은 솥단지와 각종 약재 서적들, 약재 토큰, 물병들을 보고 있으면 보드게임의 맛이 이런 것이구나 하고 느낄 수 있게 된다. 


내가 이 게임을 모임에 가져가는 타이밍이 있는데 적당하게 보드게임 모임에 재미를 느낄 때쯤. ‘짜잔’ 하고 가져가는 게임이 바로 약장수 게임이다. 이제 멤버들은 모임에 충성? 하게 되는 이상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약장수 마법에 걸린 것이다. ^^;; 발을 뺄 수 없다. 


약장수들의 모습 또한 범상치 않다. 


개인에게 주어지는 개인 판인데, 솥단지 모양을 하고 있다. 


약재 같은 않은 약재 같은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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