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터면 결혼 못할 뻔했다.

말하지 않으면 몰라요. 사랑은 표현하는 자의 것

by 밥이누나

한 달 전 결혼을 했다. 봄날의 야외웨딩이었다. 흐드러지게 핀 벚꽃과 순백의 웨딩아치, 파스텔톤으로 세련되게 꾸며진 결혼식장이 지금도 하나의 사진처럼 머릿속에 남아있다. 아름다운 풍경에 울컥할 만큼 감동을 받았건만, 막상 결혼식이 끝나니 마음속 가장 기억에 남은 것은 남편이 낭독한 편지의 내용이었다. 우리는 주례대신 서로에게 쓴 편지로 혼인서약을 했는데 편지의 내용은 결혼식 당일 그 순간에 공개하기로 한터라, 007 첩보작전처럼 철저히 비밀에 부쳐졌다. 기다리던 편지낭독 시간, 남편은 회사와 집 그리고 취미라고는 운동하는 것뿐인 자신의 회색빛 같던 삶에 내가 알록달록 다채로운 색을 칠해준 사람이라는 말을 해주었다.

회사 출근하는 길에 총천연색 장미꽃길이 있는데, 그 꽃을 볼 때마다 남편이 내게 낭독한 편지의 내용이 자꾸 생각난다. 피식 웃음이 나면서 왠지 모르게 알록달록한 것들이 더 좋아지는 마음까지 든다.



결혼까지 하게 된 과정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뭐니 뭐니 해도 남편이 나에게 결혼하자고 프러포즈를 한 날이다. 결혼준비 중 하나의 통과의례처럼 프러포즈 이벤트를 하는 것이 아닌, 진짜 생짜로 결혼할 거냐는 의사를 물어보는 프러포즈를 받았다. 프러포즈받은 날은 햇볕이 쨍쨍 드는 어느 여름날이었는데, 회사에 일이 있어 주말에 출근한 날이었다. 퇴근하고 집에 가서 씻고 적당히 누워있다 치킨이나 시킬 생각이었는데, 자꾸 남자친구가 집에서 같이 저녁을 먹자고 했다. 어찌어찌 남자친구와 집까지 같이 가게 됐는데 문을 여는 순간! 예쁜 꽃들과 풍선, 은은한 음악과 조명이 있는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처음에는 내가 문을 잘못연건가? 도둑 든 건가?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너무 당황해서 한 10초간을 우두커니 서 있었더니 결혼하자는 문구와 남자친구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나랑 결혼해 줄래?”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눈으로, 용기 내 꺼낸 한마디를 듣는 순간. 평소 무덤덤한 성격이라 자부했던 나도 저항 없이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돌이켜보면 난 내심으로 이 사람과 결혼해도 괜찮겠다 생각했던 것 같은데, 결혼에 대한 생각자체가 엄청 강하지는 않았던 터라 그냥 좋은 순간들을 보내고 있던 것 같다. 하지만 나와는 다르게 남자친구는 오랜 시간 프러포즈의 형태를 띤 사랑의 표현을 준비하고 있었다.



늘 그랬다. 사귀자고 고백했던 그날, 결혼하자는 말, 사랑한다는 말. 남편의 용기 있는 표현이 아니었다면 나는 끝내 결혼하지 못할 뻔했다. 사랑은 결국 ‘표현’이라는 다리를 건너야 상대방에게 닿을 수 있다. 말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나도 널 좋아하고 있었는데” “나도 그런 아이디어가 있었는데”

남편보다 한 발짝 느린 나는 평소 이런 말을 종종 하곤 한다. 남편이 낭독한 결혼식장에서의 편지, 결혼하자는 고백이 이토록 마음속에 오래 남는 걸 보면 생각으로만 남은 저런 말들은 딱히 힘이 없어 보인다. 반면에 ‘표현’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표현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내 마음을 꺼내 보인다는 것은 엄청난 용기와 노력을 필요로 한다. 생각을 어떤 방식으로든 표현하는 순간, 보이지 않았던 마음이 비로소 보이게 된다. 인간의 사상 또는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이 저작물인 것처럼, 표현하는 순간 생각은 비로소 이름표가 붙여져 상대방의 마음에 내려앉는다.



표현하지 않은 마음은 사랑이 아니다. 건네지 못하고 입술 끝에만 남은 생각은 그 누구도 보호해 줄 수 없다. 표현은 용기이자 존재의 선언이기에 앞으로는 내가 더 많이, 아낌없이 사랑을 표현하며 살고 싶다.



말하지 않으면 몰라요. 사랑도 창작도 모두 표현하는 자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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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 나를 피식 웃게하는 알록달록 장미꽃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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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낭독하다가 눈물이 날 것 같아 간신히 참았다!



DSC01376.jpg 부케 던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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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러포즈 한 날. 결혼하자고 말해줘서 고마워. 늘 먼저 표현해 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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