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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배리 Jul 26. 2023

나를 움직이는 것

2013.07.06

돈 나올 구멍이 없다는 것을 알자 소리소문 없이 사라진 마을 이장님을 보며,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무엇일까에 대해 하루 종일 생각해 봤다. 밥을 안치며, 쑤꾸마 위키를 삶으며, 며칠째 꾸륵거리는 장을 달래며. 이장님을 움직이는 건 돈이었겠지. 그럼 나를 움직이는 건 뭔가, 이 순간.


아이들을 위한 일을 하고 싶다, 한 이삼 년간. 아프리카나 남미나 동남아 어디든 좋다, 먹여주고 재워주기만 한다면. 건축 관련된 일이면 더더욱 좋고. 아이들 도서관이나 학교를 짓는 일이면 더더욱 좋겠다. 그런 마음으로 이 일에 지원했는데, 나도 모르게 낚여서 소치기 소녀가 되어 있다. 참 희한한 건 싫지가 않다는 거다. 재밌다, 사실.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낚였다고 본부에 태태지기고 싶지만.


지금 나를 움직이는 건 소인가? 모두에게 몇 번이고 말했지, 소는 먹어만 봤지 키운 적은 없다고. 그럼 동네 아이들인가? 동네 아이들한테 장난 걸다 울리기만 하지. 하나 분명한 건 이 일을 하면서 가슴이 뛴다는 거다. 특히 가축사업 참여자 아주머니께서 계란 세 알 고이 까만 비닐봉지에 담아 쫓아 나오실 때, 그 굳은살 박힌 맨발을 보면 저 뱃속 깊은 곳에서 무언가 뜨거운 것이 올라온다. 사업 점검을 하러 갔을 때 지부장님과 내게 고맙다며 노래와 함께 우리에게 박수를 탁! 탁! 쳐줄 때, 오줄없이 솟구치는 눈물을 감추며 괜스레 현지어로 농담을 해본다. 전등 하나 달랑 달린 교실에서 교육을 할 때, 거진 육십 다 된 아저씨들께서 이글이글한 눈빛으로 필기를 하는 모습을 본다거나 그럴 때 감동적이다. 가슴이 뛰고, 눈물이 왈칵 난다.


그럼 지금 나를 움직이는 것은 뭔가.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만 친구로 사귀고, 내가 좋아하는 곳에서만 살고, 내가 좋아하는 공부만 하고, 내가 좋아하는 일만 하며 살아온 나는 누가 뭐라 해도 축복받았고, 동시에 이기적이다. 어머니도 말씀하셨지, 넌 이기적이라고. 이기적으로 살아도 되게 해 준 가족들에게 고마울 따름이다. 부양해야 하는 형제자매 부모 남편 아이 없이, 내 한 몸만 건사하면 되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른 채 오만 방자하게 지껄여 댔던 적이 있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라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 수 있는 여건이 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사람들은 모두 어느 정도는 포기를 하며 산다. 한 친구는 아내와 태어날 아기를 위해 복근을 포기하며 살다가 쿨가이 대회에 나가며 가슴이 뛰는 듯하다. 동네에서 찔락거리며 현지어 몇 마디 건네는 것으로 사랑받기 위해, 나는 유학 다녀와 금의환향해 대기업 샤삭 들어가 돈다발을 부모님 앞에 촤락 뿌려주는 그런 효도를 포기했다. 그 잠수 타신 이장님도 돈 꼬물꼬물 챙겨 내 새끼들 배불리 먹일 때 가슴이 뛰시겠지. 한비야 씨도, 그분이 만났던 의사도 가슴 뛰는 일을 하라며 부추기는데, 그 가슴 뛰는 일이란 것이, 과연 성스럽고, 희생적이고, 착하기만 해야 하는 것인가는 잘 모르겠다. 신나게 노래하고 춤추며 가슴 뛰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급등하는 주식 그래프를 보며 가슴 뛰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상사한테 오지게 치이다 집에 돌아와 자고 있는 자식새끼 볼때기 꼬집으며 가슴 뛰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그렇다고 가슴이 뛰는 일을 하면 그게 다 옳은 일인가, 뭐 그런 생각도 든다. 한 밤 중에 잠긴 은행 금고를  따며 가슴이 뛰니 난 그 일을 하겠소, 하면, 그래, 넌 대도이니 전지현과 함께 줄을 타라, 할 수는 없는 일일 테니까. 그저 내가 가슴 뛸 때, 잠시 내 몸에서 샤락 벗어나 공중에 한 2미터 떠서 가슴 뛰고 있는 내 모습을 봤을 때, 그 모습을 내 스스로 좋아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오늘 하루종일 밥 먹고 일하고 똥 때리고 청소하고 마실 가고 회의하면서 계속해봤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 여기서 나를 움직이는 것이 무엇인가는 어스름하게는 알겠지만, 확실하게는 잘 모르겠다.


똥 마렵다. 똥이나 때리자. 가슴 뛰게.



쑤꾸마 위키 (sukuma wiki): ‘케일’의 스와힐리어
태태지기다: ‘투덜거리다’의 경상도 사투리
찔락거리다: ‘들쑤시며 다니다’의 경상도 사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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