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과 열정 사이, <옥루몽>의 이상적 사랑

고전소설 속 소울메이트, 지기(知己)

by bbj


친구 혹은 연인, 친한 사이끼리 ‘마음까지 통하길’ 누구나 꿈꾼다. 이를 소울메이트라 하는데 한국 고전소설 속에 지기(知己)라는 단어가 이와 비슷하다. ‘속마음을 참되게 알아주는 친구’란 뜻으로 지금도 쓰이는 단어다.


<옥루몽>이라는 고전소설에는 남녀 간 사랑을 표현한 장면에서 빠짐없이 이 단어가 등장해 흥미롭다. 그들은 친구같은 사랑을 꿈꾼 걸까. ‘지기’가 될 수 있느냐를 서로에게 물어보며, 그것을 확인한 후에야 진정한 사랑으로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옥루몽>은 <구운몽>의 영향을 많이 받은, 현실-꿈-현실의 환몽구조를 가진 고전소설이다. 둘 다 천상계의 인물이 꿈을 통해 인간의 삶 속 부귀영화를 진진하게 체험하고 다시 천상계로 돌아온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구운몽>은 인간이 욕망을 통제하고 현실과 꿈을 구분없이 여겨야 한다는 공(空)사상을 전한다면, <옥루몽>은 꿈 속도 꿈 밖도 무한 행복이니 꿈에서 실컷 즐기고 놀만큼 놀고 오라하며 독자의 숨통을 더 트이게 만들었다.


<옥루몽>에서 꿈을 꾸는 이는 한 남자 신선과 다섯 선녀다. 이들은 동시에 인간으로 환생하는 꿈을 꾸며, 하나의 꿈을 공유하면서 꿈속에서 차례대로 사랑하는 사이로 결합한다.


<옥루몽> 속 지기의 실현


남자 신선은 양창곡이라는 남성 인물로 환생하여 인간으로 환생한 다섯 선녀들을 차례로 만나 2처 3첩을 거느리고 살아간다. 겉에서 보면 그저 일부다처제의 실현일 뿐인데, 그들이 각자 한 남자를 중심으로 만족스런 사랑의 관계를 맺고 또 여성들끼리도 화목한 관계를 맺는 것은 그들이 서로의 마음까지 알아주는 ‘지기’이기 때문이다.

양창곡이 처음 만나는 여성은 강남홍이다. 이름 높은 기생이지만 늘 ‘지기’를 만나 진정한 사랑을 할 것을 맹세했다가, 시도 잘 짓고 풍채도 좋은 양창곡을 우연히 만나 자신이 기다린 짝임을 직감한다. 그러나 속마음을 다 알지 못한다고 생각해서 사랑을 맹세하기 전 지기임을 알아보기 위해 남장을 한 채 그에게 접근하여 여러 문답을 나눈다.


마침내 지기라 판단한 강남홍은 평생 양창곡을 자신의 유일한 짝으로 사랑할 것임을 다짐한다. 그후 강남홍은 양창곡을 전쟁터와 유배지까지 따라다니며 생사고락을 함께하고, 그가 입신양명하는 데에 큰 조력자가 되어 준다.


지기(知己)의 전통과 확대


두 인물뿐 아니라 다른 여성과 결합할 때도, 양창곡이나 다른 여성들의 입에서 ‘우리는 지기이니까 이 정도 고생을 할 수 있다’ 혹은 ‘나를 지기로 생각해서 이러는 건가요’ 하는 질문이 빈번하게 등장한다.

<옥루몽>은 19세기에 등장한 소설인데, 그 당시 우리나라에서도 진정한 남녀 간 사랑의 조건을 이러한 ‘마음까지 알아주는 친구’ 개념으로 생각했던 것으로 추측한다.


사실 이러한 사랑은 천년 전부터 우리나라에 존재해 온 고전소설에도 있었다. 전기(傳奇)라는 장르로, 산 사람과 영혼의 만남과 사랑을 주로 하는 소설이다. 김시습의 <금오신화>가 대표적이다. 귀신이라도, 서로의 마음까지 알아주는 친구 같은 사이라면 그 사랑을 쉽게 포기할 수 없다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전기소설은 한문으로 쓰여졌고 극소수의 지식인들만 읽었으므로 그런 사랑이란 이상적 형태로 극소수만 꿈꾸거나 허용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문자도 모르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남녀 간 사랑’은 농업사회의 노동력 벌충의 수단으로나 여기지 않았을지(너무 비참한가). 그들이 남긴 생각이나 기록이 거의 없으니 알기 힘들다.

그러나 19세기쯤 오면 한글도 비교적 넓게 보급되었고 한글로 된 소설도 많이 지어져서 읽혔으니 더 많은 사람들이 소설을 향유하며 함께 그런 사랑을 꿈꾸지 않았을까 한다.


-이미지: 한국톨스토이 동화책 <옥루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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