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운 여자, 열녀 춘향이를 아시나요?

춘향의 열(烈)과 오늘날의 민주주의

by bbj

1. <춘향전>을 아시나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고전소설 <춘향전>. 신분을 초월한 사랑, 잘못된 질서에 대한 저항. 두 개 축이 시대를 초월한 감동을 불러왔다.


<춘향전>은 끊임없이 개작되어 한국의 대중들과 울고 웃었다. 일제 강점기엔 창극으로, 이후 영화 드라마 웹툰까지 변신은 현재 진행형이다.

아쉬운 건 그 과정에서 작품에 내재된 저항정신이 축소되어 갔다는 점이다. 대찬 춘향의 저항과 외침은 일제강점기와 군사독재 등 암울한 시대를 지나오며 작아졌고. 대신 대중이 관심을 보일 만한 사랑 이야기에 집중되는 등 통속화 경향을 보인다.

춘향전(1955) 영화 포스터 - 네이버 지식백과




2. 300명의 다양한 춘향

춘향전의 이본(다른 버전)은 무려 300종이 넘는다. 300명의 다양한 춘향이 존재한다고 보면 된다. 드높은 절개로 성녀같은 춘향이 있는가 하면, 팜므파탈처럼 유혹하는 춘향, 몽룡의 재력과 외모를 따지는 계산적 춘향도 있다. 죽여달라 소리치는 매서운 춘향이 있는가 하면 차분하게 억울함을 말하는 정숙한 춘향도 있다.


춘향이 이와 같이 다양한 건 이 작품이 판소리계 소설이기 때문이다. 판소리는 청중지향적 문학이다. 소리 잘하는 광대가 소리하러 갔더니 남자 청중들이 많으면, 춘향이가 얼마나 매력적인지를 공을 들여 묘사할 테고. 여자가 많으면 이몽룡이 얼마나 잘났는지 차은우 뺨치더라 묘사하는, 그런 식일 것이다.

소리하는 곳이 양반가인지, 중하층 신분의 사람들이 모이는 시장터인지에 따라서도 내용이 달라질 것이다. 다소곳한 춘향과 적극적이고 저항적인 춘향이 공존했던 것은 그런 이유다.


3. 우리가 아는 춘향은 어떤 여자일까?

그 중에서도 한국 사람이 가장 많이 접한 춘향은 저항적 춘향이다. 지금까지 <춘향전>은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빠짐없이 교과서에 실려 왔는데


거의 예외없이 84장본 <열녀춘향수절가>를 원본으로 한다. 이 작품은 전주에서 목판으로 발행된 소설이며 전라도에서 흥했던 판소리의 색채를 가장 많이 갖고 있고, 전해지는 이본 중 가장 길며 문학성을 인정받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교과서에 실리는 장면은 끝부분인 이몽룡의 어사출두 장면이다. 이몽룡이 거지꼴로 나타나 변사또의 생일잔치에 말석으로 참여하고, 백성을 핍박하는 못된 정치를 비판하는 한시를 지어 올린다.

이를 시작으로 어사출두를 외치며 변사또를 포박하고 옥에 갇힌 춘향을 끌고와서 자기 정체를 숨기고 “내 수청도 거절할까?”회유하는 부분.

이에 춘향이가 “내려오는 관장마다 모두 명관이로다”라 하며 죽여 달라는 부분이 그것이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교과서에서 봐왔기에 익숙한데 사실 이 작품은 처음부터 춘향의 대차고 매서운 의지가 전편에 드러난다.


가장 백미는 수청을 들라는 변사또에게 저항하는 부분이다. “너같은 기생 무리에게 수절이 웬말이냐”라 할때 “충효열녀에 상하가 있소?”라 하며 춘향이 일갈한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지켜야 하는 충효열인데, 개인 욕망에 따라 윤리를 준수할 의무조차 박탈하는 지배질서의 허위성에 일갈을 가한다.


“나에게 두 남자를 섬기라니, 그럼 넌 두임금을 섬기겠구나?”


이 논리에 변사또는 할말이 없을 뿐더러 본인을 반역자에 비유했기에 크게 분노하는 것이다. 그러나 누구나 안다, 춘향이 승리했다는 것을.

퍼플렉시티 ai로 구성한 이미지

4. 춘향의 열과 우리의 민주주의


춘향이 외친 것은 그 시대에만 통하는 윤리라기보다, 시대를 초월한 인간다움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는 권리이자 책임. 너희가 만들어 갈 평화롭고 안전한 세상에 우리도 동참할 자격이 있다는 외침. 다 같이 잘 사는 세상에 높은 신분만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감히 한 개인이 그 질서를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누군가의 삶과 자유를 희생시킬 일이냐는 질문. <춘향전>의 이 질문은 평범한 일상의 고요와 소소한 행복을 뒤흔든 6개월 전 지난날의 사태에도 같은 의문을 제기한다.


너, 혹은 너희가 외치는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공동체의 안녕을 위한 원칙에 특정 개인과 집단의 안녕이 왜 우선되냐고. 그걸 위해 수많은 국민의 안녕은 희생되어도 되는 거냐고.


시대를 뛰어넘어 전하는 춘향의 외침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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