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는 누구를 위해 하는가

용서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by bbj

생각해보면 분노는 흔해도,

용서는 기회조차 갖지 못할 때가 많았다.


실수로 뭘 묻혔다거나 늦게 도착했다거나. 그런 일로 내게 직접 사과했던 이들은 대체로 눈에 보이는 사소한 것들에 대해 말했다.

사실 그런 일들은 실수기 때문에 용서가 꼭 필요치 않았다. 그저 ‘내가 당신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가’의 다른 표현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진정으로 내게 사과해야 했던 이들 중에서는별로 잘못한 게 없다는 투도 많았다.


대체 뭐가 문제야? 그런 넌 얼마나 깨끗해?

이거 하나 가지고 겨우 그래?

그 당당함은 내 분노와 용서의 탄생도 부정했다.


분노를 올곧게 간직하고, 치열하게 방법을 찾아 용서해야 했다. 사랑까지는 못하겠고 내가 살아가야 하니까. 그러면서 용서하라고 가르치는 모든 존재들을 한번씩 더 미워했다. 멱살잡고 싶을 때도 있었다.


갈 곳을 잃은 용서들이 내 안의 텅빈 공간하나를 떠돌아다닌다. 때론 자기들끼리 부딪치고 독방에 갇혀 무한히 반복하다 잊힌다. 그 마지막 순간이 허무해서 또한번 얇게 화가 나지만 끝내 안도한다. 지긋지긋한 용서 하나가 드디어 끝을 보았다고.


내게 용서는 아름다운 과정이 아니다. 타인에게 일방적으로 시혜적인 것도 아니다. 그건 가벼운 매너같은 용서를 말할 뿐이다.

실제 용서는 아주 치열하고, 내 안에서 온갖 생각을 마주해야 하고 처리해야 하는 행위다.

외로운 사투처럼 살기 위해 하는 것이다.


그래서 용서를 아름다운 것이라 이야기하는 게 늘 와닿지 않았다. 아직 수양이 덜 돼서 그런지.

용서해서 내가 편안해지면 주변도 편안해지고, 미움의 무한 사슬 하나를 내 안에서 없애는 거니까.

그래서 타인을 위한 용서가 가능해지는 건가 생각한다. 용서가 아름다워지기 위해서는 돌고 돌아 아주 멀리 가야 하는 것이다.


특별한 경험이 있다기보다, 이 글은 육개월 전 우리나라의 혼란스럽던 시국을 많이 생각하며 썼던 글이다. 그때는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국민들을 편가르기하고 반성없던 세력들이 참 미웠다. 일차로 정리된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면 글쎄, 그마저도 진정함 용서가 가능한 일일까.


끝내 어려운 일도 결국은 날 파괴할 정도로 중요한 건 없다고 생각하며 해야 한다.

분노와 끝없는 억울함 앞에서 끝내 챙겨야 할

나 자신을 생각을 해야 하는 것이다.

용서가 아름다워지는 일. 마지막은 희망사항이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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