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의 패러디, 한국의 <적벽가> 속 군사설움 대목
고전소설로 학생들을 가르치다보면 종종 삼국지 덕후들을 만난다. 정확히는 <삼국지연의>라는 중국의 소설.
유비 관우 장비가 의형제를 맺고, 왕위를 찬탈한 조조에 대항해서 싸워나가며 한나라 왕실을 회복하려는 전쟁 이야기다. 위촉오 삼국의 패권다툼 속에서 수많은 영웅들과 지혜로운 모사들의 활약상을 다루고 있어 동아시아 전역에서 인기를 끌었던 소설이다. 지금도 영화 드라마 등을 통해 끊임없이 재생산되며 현대독자들과 만나고 있다.
나관중이 지은 이 소설은 이후 모종강에 의해 개작되었고, 그 작품이 조선후기 우리나라에 들어와 큰 인기를 끌었다. 이는 그때 존재한 판소리와 결합하여 <적벽가>로 패러디, 개작되었다.
흔히 판소리 혹은 판소리계 소설하면 춘향전 심청전 토끼전 흥부전은 알아도. 중국소설 삼국지연의를 개작한 적벽가가 있는 줄은 잘 모른다. 대학 와서 처음 들었다는 학생들도 많다.
적벽가는 삼국지연의의 긴 내용 중, 유비가 제갈량을 삼고초려해서 얻은 후 오나라와 연합해서 적은 병력으로 화공(火攻, 불공격)으로 대승을 거두는 적벽대전을 중심으로 개작한 판소리이다. 제갈량의 영웅적인 활약이 가장 두드러지는 부분이며 조조가 가장 처참하게 망하는 부분이라. 촉나라를 응원했던 많은 독자들이 가장 열광하는 대목이 되어 우리나라에서 판소리로 개작되었다.
적벽가는 비록 다른 작품들과 달리 외국 소설을 원작으로 했지만. 비교문학적 측면에서 탁월한 개작으로 평가할 수 있다.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다.
삼국지연의는 수많은 장수들과 모사들이 나와 전쟁 중 활약한 영웅들 이야기를 하기에도 벅차다. 그러나 전쟁에 끌려 나온 이름 모를 병사들은 무슨 죄랴. 원작에 등장하진 않지만, 영웅을 받쳐주는 이름모를 병사들의 존재는 분명하다. 그들은 원하지 않는 전쟁에 이리저리 끌려다니며 전투 직전까지 고향에 두고 온 가족들을 애타게 그리워했다.
한국에서 개작된 적벽가는 그들의 설움을 직접 다루고 있다. ‘군사설움대목’이 그것이다. 그들은 차례로 부모, 자식, 아내, 형제들을 그리워하며 그들과 관련된 소중한 추억을 회상하며 운다.
마지막 사연이 가장 안타까운데, 첫날밤을 치르다 끌려 온 병사 이야기다. 선정적이고 비속한 내용을 말하며 천하에 가장 불쌍한 이는 자신이라 한탄하는데 독자 입장에선 그저 웃기다. 더 어이없는 건, 그의 한탄을 듣는 좌중 모두 ‘그래 니가 제일 불쌍한 놈이네’하며 인정한다는 사실이다.
가족을 다시 만날 거란 그들의 소망과 울분은 이후 벌어진 적벽대전 속 불에 한줌 재로, 혹은 물에 빠지며 덧없이 사라질 뿐이었다.
전쟁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황제를 참칭하건 왕실의 정통성을 회복하건. 영웅들이 내세운 명분 아래. 가족과 함께 단란한 삶을 일구고자 했던 소박한 꿈들은 죄없이 수없이 뭉개져 왔을 것이다.
중국의 <삼국지연의>를 개작한 한국의 <적벽가>는, 영웅들의 거대서사에 가려진 이름모를 군사들의 미시서사를 살려내며. 당시 억압받는 민중들에게 폭넓은 인기와 지지를 받았다.
이후 군사설움대목은 일제강점기까지 인기가 이어졌고. 어두운 시대에 가족을 잃은 수많은 이들의 한을 대신하는 노래가 되어 따로 음반으로 발매되기도 했다.
+전쟁은 인간이란 존재의 야만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다. 인간은 자연도 우주도 운명도 아닌 인간이란 존재의 비정함 앞에서 한없이 절망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인간 사회 또한 수없이 많이 벌어진 역사 속 전쟁의 재 위에서 탄생했다.
그럼에도 인간이란 존재에게서 전쟁만 지우는 방법은 없을까. 역사가 발전한다는 건 착각임을 요즘 들어 또다시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