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그리움에 살다 간 한 여인
기억과 감정은 축복일까 저주일까.
떨치기 힘들 땐 저주처럼 여겨지기도 하나, 삶의 의미를 갖게 하는 중요한 요소다.
그런 점에서 그리움은 여러 감정 중 가장 인간적이다. 과거에 묶여 미련하게 느껴져도 잊을 수 없다는. 인간 존재의 숙명적인 한계를 말하기에 애틋하고 아름답다.
그리움은 문학에서 다양하게 표현된다. 그리운 이를 꿈에서라도 만나고 싶다는 표현이 대표적이다.
조선시대 이옥봉의 한시 「자술(自述)」에도 ‘몽혼(夢魂)’이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워낙 유명하여 이 단어가 제목으로 잘못 알려져 있다. 몽혼은 말 그대로 꿈속 혼이다. 시는 아래와 같다.
근래의 안부는 어떠신지요.
사창에 달 떠오면 하도 그리워,
꿈속 넋 만약에 자취 있다면
문 앞 돌길 모래로 변하였으리.
近來安否問如何(근래안부문여하)
月到紗窓妾恨多(월도사창첩한다)
若使夢魂行有跡(약사몽혼행유적)
門前石路已成沙(문전석로이성사)
-이옥봉, <자술>
님을 만날 수 없어서 꿈속에서 매번 님이 있는 곳을 배회하는데, 꿈의 넋이 다녀갈 수 있다면 돌길은 모래가 될 정도로 닳아 없어졌을 것이다. 참신한 표현이기도 하고, 끈질긴 그리움을 느껴볼 수 있다.
사실 시보다 시인의 사연이 더 아프다. 이옥봉은 아버지는 왕족이지만 어머니는 종이라 서녀로 태어났다. 아버지에게 글을 배워 똑똑하고 시를 잘 지었다. 똑똑하고 감수성이 있어 나라 걱정도 하고 이를 시에 표현하기도 할 정도로 호방하고 남다른 면모를 지녔다.
그런 그녀는 남편도 자원해서 선택했다. 당시의 조원이라는 선비의 풍채와 문학적 재능을 흠모하여 자원하여 그의 첩이 되고자 했다. 신분의 한계 때문에 정식 처는 될 수 없었지만 당시 시대에 비추어 진보적이고 당당한 선택을 한 셈이다.
조원은 옥봉이 시짓는 것을 싫어해서 결혼 후에는 창작을 자제할 수밖에 없었는데, 어떤 날은 이웃이 소도둑으로 오인받아 끌려가는 일이 생겼다.
옥봉이 억울하게 끌려간 이웃 남자의 부인의 요청으로 관아에 진정서를 내며 글솜씨를 발휘해서 끝에 시를 지어 덧붙였다(내가 직녀가 아닌데 남편이 어찌 견우(소 모는 사람)이리 - 이런 내용의 시).
그런데 그만 그 시가 너무 유명해져 남편 조원의 귀에 들어가게 됐고, 조원은 화가 나 친정으로 옥봉을 내쫓은 것이다.
이후 옥봉은 다시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고 남편을 만날 수 없었다. 그리하다 위의 「자술(自述)」을 짓게 된 것이다.
「규한(閨恨)」이라는 시에도 쓸쓸하고 처연한 마음이 잘 드러나 있다.
平生離恨成身病 (평생리한성신병)
酒不能療藥不治 (주불능료약불치)
衾裏泣如氷下水 (금리읍여빙하수)
日夜長流人不知 (일야장류인불여)
평생 이별의 한, 몸의 병이 되어
술로도 약으로도 다스릴 수 없네
이불 속 눈물은 얼음 밑을 흐르는 물 같아
밤낮을 흘러도 사람들이 알지 못하네
이불 속에서 흘리는 눈물은 그녀의 외로움을 얼음 밑 차가운 물의 감각으로 느끼게 한다. 더욱 쓸쓸하고 처량한 감정을 만들어낸다.
무정한 남편때문에 그녀의 시 세계는 축소되었고,
30년 남짓 살다 그리움을 담은 한시들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연재를 마무리하려면 10회는 채워야 된다 그래서 이미 끝낸 연재를 다시 시작합니다. 이김에 10화보다 좀 더 많이 써볼까 해요. 고전소설에만 국한하지 않고 고전문학 전반의 인물들을 다뤄보겠습니다.